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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山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淸潭 2015. 3. 24. 10:28


	만물상 일러스트

         

다산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다산 정약용은 15세때(1776) 222(음력) 복사꽃이 만발하였을 때

풍산홍씨 홍화보라는 분의 딸, 자기보다 한살 많은 홍씨와 결혼하였다.

 

아들 여섯 딸 셋 아홉 명의 자녀를 낳아서

여섯 명을 잃고 아들 둘 딸 하나 만을 키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1836년 봄 결혼 당시처럼

복사꽃 망울이 피어나려던 음력 222일 회혼일에

그는 75세로 고단한 육신을 내려놓고 이승을 떠났다고 한다.

 

그 동안 어린자식 42녀를

땅에 묻어야 하였던 비운의 아버지였고

1801 227큰 아들 학연의 나이 18

둘째 아들 학유는 15살 딸은 8살 때 집을 떠나

경상도 장기현으로 잠시 유배되었으나 곧 돌아왔다.

 

가난한 선비였던 다산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순조원년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유되어

큰형은 사약을 받고 둘째 형도 귀양을 가고

자기도 귀양살이가 다시 시작된다.

 

폐족이 되어 집안사정이 말이 아니였다.

열여섯 살에 다산과 결혼한 부인홍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폐족의 집을 꾸리며 살았다.

 

아끼던 소중한 책을 팔아 쓰기도 하고

대대로 내려오던 철 투호를 팔아서 아이들과 살았고

4개월이 넘도록 옷 한 벌로 보낸 남편의 귀양살이

바라지도 하지 못했는 그 마음이 어떠했으랴.

 

  imagesA8OAZTYY.jpg

 

너무나 가난하여 큰아들이 귀양 생활하시는 아버지를

5년이 지난 후에 마늘농사가 잘되어서

그것을 팔아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다산은 아들을 본 기쁨도 잠시 아들을 먹고 재울 곳이 없어서

강진읍 우이산 보은산방 스님에게 숙식을 구걸하기도 하였다.

 

둘째는 8년이지난 후에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을 보고

아래와 같이 자기마음을 나타낸 글이 있다.

 

모습은 내 아들이 분명한데

수염이나서 다른 사람 같구나

집 소식 비록 가지고 왔으나

오히려 믿지 못하겠네.’

 

하며 곁에서 돌봐 주지 못한 못난 아비의 심정을 읊었다.

그러나 그는 수시로 아들과 딸에게 폐족이 된 집이기에

남들보다 더욱 더 노력하여야 한다고

자식 교육 때문에 편지를써서 보낸다.

 

18년의 귀양 생활을 마치고 귀가하여

죽기 3일전에 다음과 같은 회혼시를 지었다.

 

육십년 세월

잠간 사이 흘러가

복숭아나무 봄빛 신혼 때와 같구나

생이별이나 사별은

모두 늙음을 재촉케 하니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네

 

이밤

목란사 소리 더욱 다정하고

지난 유배시절 님의 치마폭에

쓴 먹 흔적 남아 있네

헤어졌다 다시 만난

우리 부부가 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 주노라.’

 

  매조도.jpg

  

 

이 시에서

지난 유배시절 님의 치마폭에 쓴 먹 흔적 남아있네라는

사연을 읽고 나는 감격하여 눈가가 젖었다.

다산 부부의 슬프고 눈물겨운 사랑이야기가 들어있다.

 

부인 홍씨는 시집올 때 입고 온 분홍색

이제는 빛이 바랜 치마를 강진에서

귀양살이 하는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일구월심 님 생각에 보낸 한 여인의 한 맺힌 치마다.

다산은 아내가 보내준 그 치마를 소중히 지니고

밤마다 아내를 얼마나 그리워 했을까?

 

오래 지니고 간직하다가 정성스럽게 잘라서

한지를 보태서 그가 저술한 책의 표지로 사용하고

두 아들에게 삶의 지혜를 담은 글을 적어 보내고

딸에게는 매조도를 그려 주었다.

 

부인의 헌 치마로 저서를 감싸는 표지로해서 후세에 남기고

사랑의 결실인 아들에게 일생 동안 살아갈 지혜를 담은

유훈을 남겨주고 하였는데

결혼 60주년 회혼일 삼일 전에 그것을 꺼내서

파란 많았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였다.

 

부인의 빛이 바랜 치마는 아이 들에게 남겨주는 사랑과 학문,

효도, 재물, 음식, 등의 세심한 충고가든

하피첩(霞巾+皮帖)이라는 가족을 위한 상징물로 다시 태어났다.

 

 

 

 

딸에게 준 매조도(梅鳥圖)는 유배생활 도중에

시집간 딸에게 혼례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아버지의 미안함이 담긴 선물일 것이다.

딸이 결혼한 일년 후에 주었다고 한다.

 

거기엔 아비의 심정을 읊은 아래와 같은 시가 있다.

 

훨헐 새가 가볍게 날아

내 뜰에 매화나무에 앉아 쉬네

매화향기 진하니 좋아서 찾아왔네

이제 여기 머물러 살며

즐겁게 네 집을 삼아라

꽃이 만발하고 무성하니

그 열매도 많단다.

 

가경 18년 계유년(1813)714열수옹은 다산 동암에서 쓰다.

 

내가 강진에 귀양 온지 수년이 지났을 때

홍씨 부인이 헌 치마 여섯폭을 부쳐왔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바랬다.

오려서 4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에게 준다

 

이 매조도는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상단에 매화가 만발했고

한 쌍의 참새가 사이 좋게 나란히 앉아있다고 하였다.

 

딸의 부부가 이 새처럼 화목하기를 바라고

그림아래

꽃이 만발하고 무성하니 그 열매가 많다.’ 는 말은

딸이 자녀를 많이 낳아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먼데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한 다산은

아내와 자식과 생 이별을 하여 살면서도

자식들에게 폐족의 자식이니 남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극진히 돌보도록

주야로 걱정하고 최선을 다했다.

 

 

 

 

요즈음에야 한나절 거리도 않되고

남과 여의 구별도 없는 세상이지만

그 시절에 양반집 부인이 아무리 보고싶다 한들

수 백리 귀양살이하는 남편에게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절이었다.

 

1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생 이별이 되어

산 그분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머엉하다.

 

다산의 일생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가 살아온 나날은 질곡과 같은 나날이었으나

 

 

 

후세 사람들은 추앙하며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남긴 유산은 다산학이라는 한 장르의 학문으로

연구 하고 추앙 받는 사람이다.

 

 by/우서b

                 

장 사익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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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당(幽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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