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우리집에 오신 것은 결혼초 한
번을 빼면 처음이다.
청상과부이신 시어머니는 아들둘 모두 남의 밭일 논일을
하며 키우셨고, 농한기에는 읍내 식당일을 해가며 악착같
이 돈을 버셨다 고 한다.평생 그렇게 일만하시던 시어머니
는 아들 둘다 대학졸업 시키신 후에야 일을 줄이셨다고 한
다.
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차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그러
셨었다.
고생도 안해본 서울아가씨가 이런 집에 와보니 얼마나 심
란할꼬. 집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가진거 없는 우리 아랑
결혼해 준다고 해서 고맙다.
장남인 남편과 시동생은 지방에서도 알아주는 국립대를 나왔고, 군대시절을 빼고는 내내 과외아르바이트를 해가 며 등록금을 보태고 용돈을썼다고 했다.
주말이나 방학 에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연애
는 커녕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주변에 늘 좋다는 친구들 후배들이 줄줄 따른다.
둘다. 대학 졸업 후 남편은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를 만났다. 나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건
강하게 그을린 얼굴이 좋았다 .
건강하고 밝은 성격에 회사에서도 그는 늘 사람들 사이 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고, 내가 먼저 고백했
다.
그는 망설였다. 자기는 가진거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 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후였고, 삼고초려 끝에 그는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를 우리집에 데려갔 다. 그의 외모와 직업에 우리 부모님은 그를 반겨주었다. 집이 지방이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신다고 했을 때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가진거 라고는 월세 원룸보증금과 얼마간의 저축이 전부다 했을때 아빠가 담배를 피우셨다.
그가 말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 굴도 모르고 자랐지만, 허리한번 못 펴시고 우리 형제 위 해 평생을 밭에서 엎어져 살아온 어머니께 배운 덕분으로 어디가서도 영은이 굶겨죽이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공주처럼 고이 키우신 딸 고생문이 훤하다 걱정되시겠지 만, 그래도 영은이에 대한 저의 사랑, 열심히 당당하게 살
우리는 그렇게 결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주신 돈과 회사에서 받은 전세자금 대출로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와 내가 모은 얼마간의저축으로 혼수를 했다.
너무 행복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어버이날과 어머니 생신이 겹쳤다. 일부러 주말을 잡 아 내려갔다. 시동생도 오고 어머니와 마당평상에서 고기 도 구워먹고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먹는데 그 맛이 세상에 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이었다.
그날 밤 작은 방에 예단으로 보내드렸던 이불이 깔려있었 다.
어머니는 한번도 그이불을 쓰시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우리더러 그 방에 자라고 하신다.
싫다고 뿌리치는 어머니 손목을 끌어 작은방으로 모셨다 . 어머니하고 자고 싶어요. 신랑은 도련님하고 넓은 안방에 서 자라고 할거에요.
어머니랑 자고 싶어요. 어머니는 목욕도 며칠 못했고, 옷 도 못갈아입었다고 이불 더럽혀 지고 니가 불편해서 안된 다. 냄새나 안된다고 자꾸 도망가려 하셨다
그런 어머니께 소주마시고 싶다고 함께 소주를 먹었다. 어 머니가 찢어주시는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소주를 홀랑 홀 랑 비우고 취해 잠들어버렸다.
자다 목이 말라 깨어보니 나는 이불 한가운데 누워 자고 있고 어머니는 겨우 머리만 요에 얹으신 채로 방바닥에 쪼 그리고 주무시고.
슬쩍 팔을 잡아 요위에 끌어드렸다. 야야~ 고운 이불 더럽 혀 진다. 냄새밴대이............ 어머니에겐 냄새가 났다 정말. 울엄 마에게 나던 화장품 냄새를 닮은 엄마냄새가 아닌, 뭐락 말할수 없는 부뚜막 냄새 흙냄 같은 그 냄새가 좋아서 나 는 내려 갈때마다 어머니와 잔다.
이제는 손주와 주무시고 싶다며 나를 밀쳐 내시지만 악착 같이 어머니 한쪽 옆자리는 나다. 어떤 밤이던가 어머니 옆에 누워 조잘거리던 내게 니는 꼭 딸 낳아라.
이래서 사람들이 딸이 좋다 하는갑다. 니가 이래해주니 니 가 꼭 내 딸같다~ 뒷집이고 옆집이고 도시 며느리본 할망 구들 다 나 완젼 부러워 한다.며느리들이 차갑고 불편해해 서 와도 눈치보기 바쁘다 하드라. 뭐 당연하다.
내도 니가 첨 인사왔을때 어찌나 니가 불편 하진 않을까고 싫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지...
말도 못해. 근데 당연한거 아이가... 그러니 딸이 좋다 카는거지... 나는 니가 이래 딸처럼 대해주니 뭐 딸없어도 되지만 니 는 꼭 딸 낳아라...
진즉부터 혼자계시던 어머니가 걱정이었는데 결국 사단 이 났다.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시다 넘어지셔서 가뜩이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한 다리가 아예 부러지셨다 했다. 도련님이 있 는 대구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노인이라 뼈도 잘 안붙는다고 철심도 박고 수술하고 3개 월을 그렇게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퇴원을 하셨다.
어머니가 뭐라거나 말거나 그 사이 나는 내려가서 간단히 어머니 옷가지며 짐을 챙겨 우리집에 어머니 방을 꾸렸다. 아들녀석은 할머니가 오신다고 신이나 있고, 표현 할 줄 모르는 남편은 슬쩍슬쩍 그방을 한번씩 들여다 보며 웃는 것을 나도 안다. 당연히 우리집에 곱게 오실리가 없다.
어머니! 저 둘째 가져서 너무 힘들어요!! 우리 친정엄마 허 구헌날 노래교실에 뭐에 승민이도 잘 안봐주시고, 제가 회 사에 임신에 육아에 힘들어 죽겠어요! 와서 저도 도와주세 요. 임신하니까 어머니 음식이 그렇게 땡겨 죽겠단말이에 요!
어머니 김치 담아주세요~ 그말에 못이기는 척 어머니가 오셨다.
친구들이 말했다. 니가 모시고 살아봐야 힘든줄을 알지. 착한 며느리 노릇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래 맞다. 내가 안해봐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다.
어머니와 살면서 힘든일이 생기고 어쩌면 어머니가 미워 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럴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이렇게 글 을 쓰고 올린다.
여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증인이니, 혹여나 어머니가 미워 지고 싫어져도 나는 이제 어쩔수 없다. 그냥 이게 내 팔자 려니 열심히 지지고 볶고 하면서 같이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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