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떠난 빈둥지, 이제야 남편이 보이는데
부부란...
구명보트 하나로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 두 조난자와 같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살아서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서로 경쟁하고 싸우고 의심할 수밖에 없죠.
심지어 서로를 잡아먹을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 무사히 상륙해서 안전해지고 나면
그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동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그 누가 바다를 건너온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겠습니까?
함께 바다를 건너온 동지만이 말 안 해도 다 알아주죠.
오늘의 손님은 바로 그 동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지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자식들 떠나가고 텅 빈 둥지.
이제야 남편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제 나이 어느덧 50.
부모님 밑에서 철없이 살던 시간 25년에, 결혼해서 억지로 철이 들어야했던 시간이 또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을 잘 버텨온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실수와 오판도 많았습니다.
제 나이 삼십대 중반이던 때에,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았었지요.
남편 하나만 알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복 많은 여인인 줄만 알고 살아가던 그 시절에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그 바람이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내 가정과 영혼까지 뿌리뽑아버릴 만큼
거센 태풍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남자가 다 어떻다 해도, 지금 내 곁의 이 남자만큼은 끄덕 없다고 믿고 산 어리석음에
나 자신이 싫어질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시간을 달라고 했었습니다.
가정을 지킬 생각이고, 가정으로 돌아올 생각이니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여자를 단칼에 끊어내지는 못하더군요.
저는 그저 이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능력도 없고,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지만, 이혼을 안 하고는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지요.
문서상의 부부가 무슨 소용인가요.
제가 생각했던 제 가정은 서로 믿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었지요.
그러나 저는 차마 이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참은 것도 아니고, 혼자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제일 걸렸던 것은 아이들이었지요.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딸에게 부모의 이혼을 겪어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 발목을 잡은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습니다.
이혼이라는 꼬리표에 따라붙을 안 좋은 시선, 억울한 오명, 그리고 등 뒤의 비웃음을 참아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이삼년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그 시간동안 마음 속에서 남편을 몰아내고, 남편의 자리를 박박 지워버리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취미생활에 몰두하고, 연락 끊겼던 친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남편은 아마도... 본인이 말하는 정리작업에 들어갔던가 봅니다.
외도에 빠지면서부터 남편 눈에 생기가 돌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다시 멍한 눈으로 맥빠져 있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더군요.
아이들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습니다.
엄마 아빠가 예전처럼 사이가 좋지 못하고, 그 원인은 단순한 성격차이가 아니라는 것을요.
엄마 아빠 사이에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고 불안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차라리 속시원히 설명을 해주고, 이혼은 절대 안 할 테니 걱정마라고 할까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곧 아이들 입시가 닥쳐왔고, 공부 잘 하는 딸과, 공부 못하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제 사십대는 잘도 흘러갔습니다.
저는 애들 학원 실어나르고 입시설명회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냈고
남편은 학원비 벌어다주는 사람으로 전락했죠.
그나마 애들과 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남편은 벌 서는 사람처럼 집안에서의 위치가 뚜렷치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했죠.
가정을 팽개치고 자기 욕망대로 즐긴 대가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또 흘렀고 이제는 우리 가족의 풍경이 다시 한 번 바뀌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딸은 스물 다섯 살의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청년백수 시대에 장하게도 취직이 됐습니다.
잔소리 할 일 없는 딸, 그런데 그 야무진 모습이 저는 가끔 서운하게 느껴져요.
딸은 엄마편이라던데... 우리 딸은 누구 편 할 것 없이 본인 일만 알아서 잘 합니다.
한마디로 아들 같은 딸이에요.
그리고 우리 막둥이 아들은, 대학 2학년 마치고 지금 군대 갔습니다.
공부는 잘 못했어도, 한 번씩 엄마를 꼭 안아주던 덩치 큰 아들인데...
점점 더 바깥 생활에 관심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집을 떠나버렸습니다.
제대하고 돌아온다 해도 더 이상 제 품안의 막둥이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집이 텅 빈 것 같습니다.
남은 건 저와 남편인데.......
서로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애들 키워내고 속이 다 빠져 버린 빈 몸만 남았고, 남편은 집안에서 늘 어색하게 빙빙 떠돕니다.
올 겨울 들어 부쩍 남편의 초라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십 오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나 나나, 애들한테 다 빼주고 텅 비었어...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기분이랄까... 전쟁터 폐허에서 마주친 적병들 같아요.
적은 적인데, 동지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뭐라고 말을 건네고 싶어도 말이 안 나와요.
너무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막상 말을 걸었다가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도 두렵습니다.
제 자존심마저 무너지고 말까봐, 그것도 두렵고요.
내 마음 속에서, 가족의 행복한 풍경 속에서 남편을 몰아내는데 십오년이 걸렸는데
이제 와서 다시 남편을 그 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것....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은 삼십년 내내 점점더 고독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남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오랜 친구,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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