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식구
세상의 모든 신비는 우연히 일어난다
세상 모든 만남도 우연히 일어난다
벚꽃 잎이 흙 위로 몸을 눕히고
새들이 하늘에 푸른 길을 낼 때
집 한 채 등에 지고 달팽이는
느릿한 과거 속을정진(精進)하고 있다
나이먹은 악사처럼 귀먹은 소리 내는
처마 끝의 풍경들이 우연히 바람을 만나고
떠내려가는 강물이 우연히 나룻배를 만나고
저물어가는 내 인생이 우연히 누군가와 마주칠 때
만남이 끌어당긴 이별 또한 우연히 잉태된다
별에 살며 또 다른 별로 옮겨 가는
별의 식구들인 우리에게
하루가 더하면 하루가 더하는 만큼
지구의 중력에 몸뚱이 의탁한 채
바닥에 몸을 앉힌 콩새는 우연히 지저귄다
콩새의 문법을 알기위해 콩새의 과거를 알 이유는 없다
과거, 현재, 미래가 겹쳐져 공회전하는
우주의 문법을 알기 위해 우주의 나이를 알 이유도 없다
우연히 만난 그대가 버리려 애태우는 기억을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살구색 콩새가 산란하는 오월에
콩새가 지저귀듯 우연은 지저귄다
지저귀며 쌓인다
숲 속의 모든 활엽수는 그 자리에 서서 나이 먹고
세상의 모든 별은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빛을 내는데
세상 모든 우연은 우연히 만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된다
지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이로운
우연히 그대를 만나 내 가슴 두근거릴 때
긴 꼬리 그어놓고 사라져가는
별똥별의 신비를 내 눈이 따라갈 때
우연히 끌어당긴 만남이
또 하나의 이별을 만들어내며 눈물 뿌릴 때...
김재진 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