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23 16:24 | 수정 : 2013.08.24 11:52
지난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한국불교지도자 신년하례법회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참석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8월 1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한국불교지도자 신년하례법회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참석자들이 합장하고 있다. photo 연합](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308/23/2013082302127_0.jpg)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이냐, 반(反)자승 세력의 종권 탈환이냐”를 두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주요 종책모임(계파)들이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화엄회, 무량회, 무차회, 보림회 등 조계종단 내 주요 계파는 지난해 ‘백양사 도박파문’ 등 이른바 ‘승풍(僧風) 실추’ 사건을 겪으며 계파 해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4년 임기의 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약 40일(10월 10일) 앞으로 다가온 요즘 각 계파는 다시 세를 규합하며 세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종단 내 예산 집행과 인사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불교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그동안 총무원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싸움은 세속의 대통령 선거만큼이나 치열했다. 자승 총무원장(33대)이 선출된 2009년을 제외하고 그 이전 선거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정대(30대)·법장(31대) 총무원장은 양자 또는 다자구도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돈과 폭력으로 얼룩진 선거를 치렀다. 그 결과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 선거후유증으로 인한 종단 분열 치유에 매달려 임기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과거 때문에 조계종의 주요 지도자는 이번 34대 총무원장 선거를 ‘추대 형식’으로 치르고자 했다. 총무원장 선거 자체는 유지하면서 각 계파가 사전에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 대결 없이 새 총무원장을 선출하자는 데 합의했다. 지난 6월 말 종단 주요 계파인 화엄회, 무량회, 무차회, 보림회 등 각 계파 대표자가 모여 만든 초계파 모임인 ‘불교광장’(공동대표 성문·지홍·법보·성직 스님)은 이런 취지에서 출범했다.
그러나 총무원장 후보 등록일(9월 18일)을 두 달가량 남겨둔 지난 7월 말 ‘불교광장’에 균열이 생겼다. 먼저 무량회가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무량회 소속의 장명 스님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불교광장 출범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현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 포기였다. 자승 원장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지 상태에서 총무원장 후보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승 원장이 재출마를 하려고 한다. 자승 원장이 8월 26일까지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무량회는 불교광장에서 탈퇴하고 독자 후보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량회는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법등 스님을 밀었다. 무량회는 이번에는 화엄회의 양보를 받아내 자파 소속인 법등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총무원장 선거 당시 화엄회에 양보했던 만큼 이번에는 자파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현 자승 총무원장은 화엄회 소속이고, 무량회는 화엄회와 당시 협력했었다.
그런데 지난 8월 12일 조계종 전체에서 유력한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던 법등 스님이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교계 안팎에서는 현 총무원장 측이 법등 스님에게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익명을 요구한 불교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무량회 측 일부 스님들은 총무원장 측에서 법등 스님에게 출마포기를 종용했다고 보고 있다. 법등 스님이 존경받는 승려이긴 하지만 과거 신도와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법등 스님이 유력후보로 떠오르니까 총무원장 쪽에서 사람을 보내 과거 사건을 거론하며 출마의지를 꺾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화엄회는 오히려 계파 간 대립의 원인이 무량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화엄회 측은 “무량회에서 독자 후보를 관철하려다가 잘 안 되니까, 대화도 하지 않고 먼저 불교광장 탈퇴를 운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엄회는 또 지난해 백양사 도박파문에 이어 최근 불거진 오어사 전 주지 장주 스님의 도박폭로의 배후에 무량회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장주 스님은 지난 7월 8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유명 사찰의 주지급 스님들이 억대 상습도박판을 벌인 적이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장주 스님 측은 함께 도박을 했던 승려 16명의 명단도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현 조계종 총무원의 핵심인사 다수가 포함돼 파문이 일었다.
장주 스님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자승과 억대 판돈이 걸린 도박을 같이 한 적이 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 직전에는 호텔과 사찰에서 도박판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도박판에서 돈을 뿌리며 원장이 된 자승이 다시 연임을 위해 출마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구 팔공산 선본사(갓바위) 주지 덕문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최측근이다. 그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장주 스님의) 폭로는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장주 스님이 폭로를 전후한 시기에 무량회 소속 승려를 만난 사실을 우리 쪽에서 확인했다. 더욱이 폭로된 명단에는 화엄회를 이끌 대표적인 인사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화엄회에서 총무원장 후보를 내지 못하게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번 폭로가 자행된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무량회 대표인 법등 스님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자승 총무원장 측은 폭로에 가담하거나 이를 지원한 세력들이 종단 내부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덕문 스님은 “도박이라는 소재를 갖고 언론에 등장한 분들은 성호·장주·명진 스님 등이다. 이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폭로에 관여한 스님들은 종단 내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계 최대 계파인 화엄회와 무량회가 사실상 결별을 선언함에 따라 이번 총무원장 선거는 현 집권파와 비집권파의 경쟁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집권세력인 화엄회는 최근 불거진 도박파문에 자파의 유력인사가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권력을 잃을 경우 계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스스로 권력을 재창출하지 못한다면 도박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받는 화엄회 핵심인사들의 향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화엄회의 응집력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화엄회 측이 현 자승 총무원장의 재출마를 부인하지 않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직과 자금력에서 앞서 있는 자승 총무원장이 출마선언을 할 경우 대세론이 굳어지며 선거에서 필승할 수 있다고 화엄회 측은 보고 있다.
덕문 스님은 “독자 후보를 낸다면 아무래도 자승 총무원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원로 스님들과 개혁 성향의 젊은 스님 모두 현 총무원장이 4년 더 총무원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은 8월 말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출마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무량회 등 비집권세력은 현 총무원장에 맞서기 위해 연대가 불가피해졌다. 종단 내 최대 계파인 화엄회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무차회, 보림회 등 다른 계파와 힘을 합쳐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구도다. 무량회 입장에서 보면 반(反)자승 연대가 불가피하다. 최근 무차회 소속으로 총무원장 출마설이 나오는 보선 스님이 보림회 소속의 영담 스님 등을 접촉하며 반자승 노선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은 무량회 입장에서 그나마 고무적이다. 무차회와 보림회 측이 무량회 대표인 법등 스님과 교감을 나누게 되면 화엄회를 상대로 한번 붙어볼 만한 세력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승 대 반자승 구도로 선거를 치를 경우 양측은 모두 승산이 있다고 말하지만 결과는 예단키 어렵다. 현 구도대로 선거가 치러질 경우 승패의 열쇠는 교구 본찰과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파가 쥐게 된다. 총무원장 선거는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 방식으로 치러진다. 총무원장 선거인단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 본찰이 각각 선정한 10인의 대표자 240명을 합해 총 321명으로 구성된다.
조계종단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의원은 소속 계파가 비교적 명확하다. 최대 계파인 화엄회가 전체의 25%를 차지하고 무량회 20%, 무차회 15%, 보림회가 5% 정도다. 나머지 35%는 비구니회와 무당파로 분류된다. 비구니회와 무당파는 과거 대세를 장악한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도 무량-무차-보림회의 연대가 성사되면 반자승 연대 측이 결코 불리한 구도는 아니다.
문제는 24개 교구본찰의 지지 성향이다. 조계종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24개 본찰 가운데 약 절반가량이 무당파이거나 각 계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한다. 각 계파는 3~4개 정도의 교구본찰을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 화엄회는 경북 경주의 불국사, 경기도 남양주의 봉선사, 경기도 화성의 용주사를 계파의 기반으로 관리한다. 무량회 직속에는 경북 김천의 직지사, 경북 의성의 고운사가 있다. 전남 해남의 대흥사와 전남 장성의 백양사는 무차회, 경남 합천의 해인사와 경남 하동의 쌍계사 등의 본찰은 보림회를 지지한다. 나머지 교구본찰은 선거 때마다 후보를 달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화엄회와 무량회가 잇따라 자파 행사를 개최했을 때 교구본찰 주지들은 양측 행사에 대부분 참여하기도 했다. 올 초 화엄회가 명칭을 화엄광장으로 바꾸고 행사를 개최했을 당시 전국 20개 교구본찰 주지들이 참석했다. 그 뒤 무량회 측이 청와대 불자모임 회장을 맡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식사모임을 주선한 자리에는 전국 16개 교구 주지가 동참하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구본찰이 총무원장 선거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동안 집권세력은 물론이고 종단 내 각 계파가 본찰 주지 선거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교구본찰 주지는 또 말사의 인사권을 갖고 있어서 계파 소속의 승려들을 관리하려면 본찰 주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자승 원장이 선거를 염두에 두고 교구본찰 주지 선거에 지나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전국 24개 교구본찰 가운데 자승 총무원장이 자기 사람을 심은 본찰이 총 9개나 된다는 주장도 있다.
경북 포항 자장암 주지인 적광 스님은 주간조선과 만나 “자승 총무원장은 연임을 위해 교구본찰 주지 선거에 깊숙이 개입했다. 백양사, 은해사, 법주사 등 주요 사찰의 주지에 자신의 측근이 당선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교구본찰 가운데 일부는 주지직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곳도 있다. 교구본찰 중 하나인 충남 공주 마곡사의 경우 기존 주지와 친자승 성향의 주지가 충돌,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현 총무원장 측은 종단 내 갈등의 원인을 자승 원장의 개혁에 대한 반발로 규정하기도 한다.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4년 동안 종단 개혁을 위한 몇 가지 과제를 실행에 옮겼는데, 이에 대해 기득권 스님들의 반발이 상당했다고 했다. 자승 총무원장 측의 설명이다. “지난 4년 동안 자승 총무원장은 종단 개혁과 발전을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내놨다. 1000개의 직할사찰을 상대로 인사고과제를 실시해 능력이 없는 주지를 교체했고 모든 스님에게 유서를 작성하게 해 입적 이후 재산권을 종단에 귀속토록 했다. 또 청규(淸規)를 만들어 배기량이 큰 차량을 타거나 고급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자 일부 스님들이 ‘지금 혁명을 하겠다는 거냐’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현 총무원장을 흔들기 위해 도박폭로 등이 이어지는 것 같다.”
자승 총무원장 측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일각에서는 자승 원장이 벌인 지난 4년간의 종무행정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상당하다. 우선, 자승 총무원장이 연임을 염두에 두고 각 계파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정치 행정’에 몰두했다는 비판이 있다. 사건사고에 연루된 승려에 대해 총무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종단의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반자승 세력은 특히 “상습도박과 룸살롱 출입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스님들이 총무원의 중책을 맡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자승 총무원장 측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총무원장 측은 도박파문과 관련 “1990년대 초까지 승가에서 맥주 한잔하며 가볍게 포커게임을 하는 일은 있었다.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당시 사회의 문화가 그랬다. 그 이후에는 이런 문화가 사라졌다. 일부 스님이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번 도박폭로에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는 한 스님은 룸살롱 출입을 가장 자주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계종단 내에서는 무차별적 폭로와 의혹 제기에 대해 우려감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석상에서 총무원장 후보 청문회 등을 개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인 진관 스님은 “대중 여론에 따라 총무원장이 정해지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원장에 출마한 후보와 관련해서 청문회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의혹 제기나 이에 대한 해명이 모두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