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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威相濟 란?|

淸潭 2013. 7. 12. 10:07

德威相濟 란?|

일전 부산에사는 어떤 분이 내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어떤 사무실에 갔더니 거기에 붓글씨가 걸려 있는데, [德威相濟]란
뜻을 알려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뜻을 새겨보니 참 좋았다.
글자대로 풀면 “덕과 위엄으로 서로 건진다”가 된다.
다시 말해 덕은 위엄으로 건지고, 위엄은 덕으로 건진다는 말이다.
덕과 위엄은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윗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덕만 있으면 사람 좋다는 소리야 들을 수 있겠지만, 위엄이 서지 않는다.
아랫사람에게 속없이 잘해주니 나중엔
기어오르려 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위엄만 내세우고 덕이 없으면,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견뎌도 속으로는 반발한다.
나중에는 잔소리 없이는 되는 일이 없게 된다.
결국 바른 말 하는 사람은 떠나고 아첨 하는 사람만 남는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덕과 위엄을 조화롭게 갖춰야 한다.
넉넉한 품을 지녀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되,
바탕을 지키는 데서 오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얹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어서는 조직의 기강은 기대할 수가 없다.
쥐어짜고 억누르기만 하면 아랫사람은 눈치만 슬슬 보고 시키는 일만 한다.
그러니 덕과 위엄의 조화야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바탕이 된다.
앞서 ‘서로 건진다’는 말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보완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넉넉하고 푸근하지만 결코 만만하지는 않고,
위엄이 있으되 매섭지는 않은 그런 윗사람이 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글귀를 사무실에 써 붙여둔 그 사장님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군대의 장수를 구분할 때
지장(智將)과 덕장(德將)과 맹장(猛將)으로 나누었다.
이 셋을 설명하는 다른 말이 있다.
지장은 하도 똑똑해서 불가기(不可欺),
즉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장수다.
덕장은 불인기(不忍欺),
곧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못 속이는’ 장수다.
맹장은 불감기(不敢欺),
즉 무서워서 ‘감히 못 속이는’ 장수다.

아랫사람이 아무리 해도 속여넘길 수 없는 상관은 똑똑해서 좋지만 인간미가 없다.
사람만 좋아 차마 못 속이는 윗사람은 좋기는 해도 자못 민망한 구석이 있다.
감히 못 속이는 불같은 상관은 그 카리스마로 인해 아랫사람이 기를 펴기 힘들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능한 것이니 족히 말할 것도 없다.
지장과 맹장은 위엄은 있으되 덕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덕장은 위엄을 겸하기가 쉽지 않다.
덕장이 이끄는 조직은 인화를 바탕으로 원만한 성과를 이룬다.
문제는 오히려 지장과 맹장에게서 생긴다.
그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용력을 믿고 종종 아랫사람의 생각을 억압하고 무시한다.
큰 문제는 종종 이들이 이끄는 조직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고구려 차대왕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는 형인 태조대왕에게 힘으로 왕위를 선양받아 왕이 된 인물이다.
그는 지략이 있고 무용을 갖춘 걸출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랫사람을 포용하는 넉넉함이 없었다.
왕이 된 뒤 형을 별궁에 유폐하고 그 아들들을 죽였다.
한번은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흰 여우가 계속 따라왔다.
왕은 기분이 나빠 화살을 쏘았지만 맞힐 수가 없었다.
왕은 무당에게 무슨 징조냐고 물었다.
무당은 불길한 조짐이라고 대답했다.
하늘이 임금께서 두려워하여 덕을 닦아 스스로 새로워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렇게 하면 화가 변해 복이 되리라고 했다.
그러자 차대왕은 무당이 요사스런 말을 한다며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 버렸다.
이듬해 4월에는 일식이 일어났다.
5월에는 다섯 개의 별이 동쪽에 모이는 변괴가 잇달아 일어났다.
모두 왕권을 위협하는 불길한 조짐이었다.
천문을 맡은 관리는 앞서 바른 말 했다가 죽은 무당을 떠올렸다.
그래서 바르게 아뢰지 않고,
이야말로 임금의 덕과 나라의 복을 나타내는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속여 대답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해 겨울에는 얼음조차 얼지 않았다.
그래도 신하들은 임금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했다.
나라는 점점 더 어지럽게 되어
마침내 왕은 신하인 명립답부의 손에 시해되고 만다.
차대왕의 교훈은 아랫사람과 소통이 끊긴
윗사람이 결국 어떻게 되는 지 잘 보여준다.
자신이야 직책에서 물러나면 그뿐이지만,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으로 나라와 회사에 끼친 해악은
그대로 남으니 그것이 문제다.
명나라 여곤은 《신음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을 할 때는 네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결정해야 할 때는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니 멈칫대면 안 된다.
밀고 나가야 할 때는 굳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니 물러 터져서는 안 된다.
일을 처리함에는 깊고 면밀해야 하니 얄팍해서는 안 된다.
임기응변은 민첩해야 하니 더뎌서는 안 된다.

일을 맡은 사람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말이다.
일에도 단계가 있고, 그에 따라 취해야 할 바른 자세가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미적거리고 있다간 경쟁에서 낙오되고 만다.
용장의 결단력이 필요할 때다.
굳게 지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할 때 내리는
무모한 결단은 조직을 파멸로 이끈다.
덕장의 은근함이 돋보인다.
일처리는 꼼꼼하게,
임기응변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미봉책으로 그때그때 대충대충 넘어가려 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된다.
지장의 현명함이 요청된다.
덕과 지혜와 용기는 각기 훌륭한 덕목이지만,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지혜와 용기를 갖춘 덕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덕과 지혜, 혹은 덕과 용기, 아니면 지혜와 용기가 만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신립은 제 용력만 믿고 부하들을 탄금대로 몰아넣고
배수진을 쳐서 저만 죽지 않고 부하들까지 다 몰살당하고 말았다.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충무공은 명량해전에서 거북선 한 척 없이 단 12척의 배로
130척의 일본군을 물리쳤다.
용기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승리였다.
여곤은 이런 말도 했다.
“나를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사람이 스스로 망하지 않는데 누가 능히 그를 망하게 하겠는가?”
세상은 쉴 새 없이 바뀌고,
상황은 잠시도 낙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마음은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같지 않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은 경쟁자로 돌아선다.
눈앞의 성취는 훗날의 후회를 부르는 빌미가 된다.

덕위상제(德威相濟)!
그날 이후 나는 이 글씨가 내걸린 그 사무실 풍경이 자꾸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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