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故事成語

矯枉過直(교왕과직)

淸潭 2013. 7. 12. 10:15

矯枉過直(교왕과직)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우왕(武王)은 하(夏)와 은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거울삼아 제후에게 작위와 토지를 주어 800여국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 왕족인 자가 50여명이나 있어 강력한 울타리로서 주 왕실을 떠받쳤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제후들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여 내란이 게속되었다. 그 결과 주나라는 유왕(幽王),평왕(平王)이후 차츰 쇠하여 난왕에 이르러 유명무실해 지고 말았다.

 
이러한 때 관중(關中)에 위치하고 있던 진(秦)나라는 지키기는 쉽고 공략하기에는 어려운 지세의 이점을 얻어 제후들의 싸움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리고 부국 강병의 실속을 차려 잇달아 다른 나라를 공략했다. 드디어 천하를 통일하여 기원전 221년에 진 왕조를 세웠다.


시황제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폈다. 그러나 그 전제정치에 백성들이 반발하여 2대 황제에 이르러 진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한(漢)나라의 고조는 진나라가 멸망한 원인이 군현제를 실시하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봉건제를 부활시켜 공신들에게 토지를 주어 왕으로 봉했다. 이때 왕에 봉해진 자들은 태반이 고조와의 혈연관계가 없었다.

 
후에 이 왕들의 반란이 잇달았기 때문에 고조는 생각을 고쳐 혈족들을 왕후에 봉했다. 그 중에는 영토가 몇 주(州),몇 군(郡)에 걸치고 수십개의 성을 가져 궁실이나 제도가 중앙이나 진배없는 곳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황실과 혈족인 것을 기화로 차츰 교만해 지고, 황제의 자리를 넘보는 자 까지 생겼다. 봉건제의 부활은 굽은 것을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굽히고 만 것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추은령(推恩令)을 반포하고, 큰 왕국은 자손에게 나누어 주어 몇 개의 소국으로 만드는 방법을 취했다. 그 결과 제후들의 권세는 줄어 들었고, 그 후로는 제후들의 반란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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