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故事成語

起死回生(기사회생)

淸潭 2013. 6. 25. 10:42

起死回生(기사회생)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국어(國語)》〈오어(吳語)〉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월(越)나라 구천(句踐)은 아버지 윤상(允常) 때에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 후 보위를 이어받은 구천은 합려의 아들 부차와 한판 승부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월왕 구천이 합려의 공격을 받자 능란한 작전을 펼쳐 오왕 합려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러한 전과를 올린 것은 모두가 3열의 자살 부대 덕분이었다. 오나라 진영에 투입된 자살 부대는 오나라 진영 앞에서 갑자기 제 목을 찔러 분수처럼 피를 쏟으며 넘어졌다.

오나라 진영에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물밀듯이 월나라 군사들이 내쳐 와 승리를 낚아 챈 것이다.

이때에 부상을 입은 합려는 태자인 부차를 앉혀 놓고 물었다.


"너는 월나라의 구천이 아비를 죽인 것을 잊을 터이냐?"
부차가 대답했다.


"어찌 잊겠습니까. 3년 안에 반드시 복수를 하겠습니다."
합려는 그 말을 듣고 편안히 눈을 감았다.

이때로부터 부차는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부친의 원한을 생각했다. 밖으로 군비를 정돈하고 내정을 단단히 한 다음 복수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기원전 494년. 오왕 부차는 정병을 이끌고 월나라를 공격했다.

부초산에서 크게 월나라 병사들을 깨트리자 구천은 5천의 정병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시일이 흐를수록 대세가 그른 것을 알자,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종(種)은 구천에게 오(吳)나라에 화약(和約)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대부 제계영(諸稽영)에게 오나라로 가서 화평(和平)을 청하도록 했다.


구천 자신은 오왕의 신하가 되고 그의 부인은 오왕의 첩으로 바치겠다는 굴욕적인 항복이었다.

그러자 오자서가 반대했다.


"반드시 나중에 화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물리치고 구천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러자 구천이 말했다.

"대왕께서 신을 살려주신 것은 마치 죽은 사람에게 살을 입혀 일으켜 세운 것과 같습니다(起死人而肉白骨也기사인이육백골야). 그러니 그 깊은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부차는 백골에 살을 붙여 살리듯이 구천의 목숨을 회생시켜 준 것이다.

한편,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시켜 편록(編錄)한 《여씨춘추(呂氏春秋)》〈별류(別類)〉편에, “노나라 사람 공손작(公孫綽)이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노인공손작왈 아가활사인야)].’ 사람들이 방법을 물어보니,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 있다[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인문기방 아가치반신불수)].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배로 늘리면 그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치반신불수지약배증 이시기사회생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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