季布一諾(계포일락)
초(楚)나라 사람 ‘계포(季布)’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義俠心)이 강한 사나이로 한번 '좋다'라고 약속한 이상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서초(西楚)의 패왕 항우가 한(漢)나라의 장수로서 몇 번이나 유방을 괴롭혔으나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천금(千金)의 현상금이 걸려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밀고(密告)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를 고조 유방이 받아들여 주도록 천거까지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사면이 되어 처음에는 낭중(郎中)이란 벼슬에 있다가 혜제(惠帝)때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흉노의 선우가 당시 전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여태후를 깔보는 편지를 조정에 보내온 적이 있었다. 진노한 여태후는 제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숙의했는데, 상장군 번쾌가 앞으로 나서며 "제가 10만 병력을 이끌고 흉노족을 혼내 주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여태후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제신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 때 "번쾌의 목을 자르라."하고 외친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바로 계포의 목소리였다.
"고종 황제도 40만 대군을 이끌고 가셨지만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 당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번쾌는 10만 군대로 흉노를 무찌르겠다고 하니 다른 사람 모두를 무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지난날 진나라가 망한 것도 오랑캐를 상대로 무모한 일을 벌인 때문에 진승(陳勝)등이 그 헛점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번쾌는 황제에게 아첨하여 천하의 동요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가."
모두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계포의 목숨도 이제 끝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태후는 회의를 끝내고는 두 번 다시 흉노 토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그 무렵 초나라에 ‘조구(曺丘)’라는 변론에 능하고 권세욕과 금전욕이 강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황제인 경제(景帝)의 외숙 뻘 되는 두장군(竇長君)의 집에도 자주 내왕하는 터였다.
이 소문을 들은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는 쓸모 없는 자이니 교제를 끊는 것이 좋겠소."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조구가 황제의 숙부인 두장군을 찾아가 계포에게 소개장을 써달라고 부탁하자 "계포는 자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라고 말렸으나 조구는 먼저 계포에게 편지를 보낸 다음 화가 머리끝가지 치밀어 있는 계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한마디 승낙[季布一諾]을 받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지셨습니까. 우리는 본래 동향이므로 당신의 얘기를 각처를 돌아다니며 퍼뜨리면 당신의 이름은 온 천하에 떨쳐질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계포는 마음이 흐뭇해져 조구를 몇 달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극진히 대접했는데 조구로 인해 계포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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