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학려(風聲鶴唳)
동진(東晉:317∼420)의 9대 효무제(孝武帝) 때인 태원(太元) 8년(383)의 일이다.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부堅:338∼385)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효무제는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인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석(謝石)과 조카인 전봉도독(前鋒都督) 사현(謝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우선 참모인 유로지(劉로之)가 5,000의 군사로 적의 선봉을 격파하여 서전을 장식했다.
이 때 중군을 이끌고 비수강변에 진을 치고 있던 부견은 휘하 제장(諸將)에게 이렇게 명했다.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하라."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前秦軍)은 반격은커녕 멈춰 설 수도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쳤다.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서로 밟고 밟혀 죽는 군사가 들을 덮고 강을 메웠다. 겨우 목숨을 건진 군사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唳]' 즉, 소리만 들어도 동진의 추격군이 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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