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탄지고(塗炭之苦)
그러나 그는 곧 후진의 군사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후진왕은 부견에게 옥쇄를 내놓도록 교섭을 벌였으나 이것을 거부하여 부견은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부견의 아들 부비가 황제의 자리에 앉은 후 그는 왕영을 좌승상에 임명하고 前秦의 각지에 다음과 같은 격문을 보내 무력을 규합하여 後燕과 後秦을 응징하자고 주장했다. |
'글,문학 > 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리무중(五里霧中) (0) | 2013.04.10 |
---|---|
우도할계(牛刀割鷄) (0) | 2013.04.10 |
오손공주(烏孫公主) (0) | 2013.04.09 |
단사표음 (簞食瓢飮) (0) | 2013.04.09 |
대의멸친(大義滅親) (0) | 2013.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