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18회 <14.이상적멸분>-2
지금 종합주가지수가 1500 넘는다. 경제는 크게 설비투자와 경제성장율 2가지다. 경제성장율 지난 분기 대비 좀 올랐기 때문에 1500까지 왔지만 설비투자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한계가 있다. 1500 넘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14분 하기 전에 지난 번 했던 내용 다시 한 번 정리한다. 금강경은 相 空이란 몇 개 글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금강경의 제일 중요한 가르침은 발심이다. 발보리심 발보살심. 보살은 재가자다. 자기가 사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발사장심자기가 우등생이 되고 싶은 사람은 발우등생심 자기가 천억 부자 되고 싶으면 발천억부자심이다.
결국 우리가 空도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얻나? 먼저 반야를 안 다음 무아를 체득하고 空도리를 아는 것이다. 반야 13분에서 나왔다. 반야 나왔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쭉 하다 보면 아 이게 지금 내가 업노름 하고 있는 것이구나 알게 된다. 업식이 멸한 상태란 업식이 저절로 없어졌다는 소멸이 아니라 박멸이다. 자기가 자기 욕심을 박멸시켜버리는 것이다. 아이고! 이 놈아 너 또 욕심 내지 또 바보 같은 짓 하지 그러면서 자기가 박멸시켜버리는 것이다. 업식이 멸한 상태가 반야인데 반야는 자꾸 내가 남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不二다.
지난 번 백성욱 박사님 책에도 이런 말 나온다. 사람은 꿈에라도 고맙다는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꿈에라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인간들은 안 한다. 그러니 반야로 돌아가서 항상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라는 것이다. 나도 하루에 고맙습니다를 3천 번 한다. 20분 걸린다. 염불이론이다. 하루에 3천 번만 고맙다고 하면 엄청 받는다. 그게 반야를 실천하는 길이다. 누가 나한테 잘하면 당연하다 생각하지 꿈에라도 남에게 우린 고맙다는 생각 안 한다. 그런데 고맙습니다 혼자 해보면 고마운 일 엄청 생긴다. 반야는 자꾸 남이 되어 보는 것이고 그래서 무아임을 아는 것이다.
無我임을 아는 것이 금강경 14분에 집중적으로 나오고 14 15 16 17에도 계속 나온다. 17분에 무아를 통달하게 되면 18분부터는 일체 동관의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부터 무아를 자꾸 체득해야 하는데 무아 역시 반야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남이 되는 공부를 자꾸 해야 한다. 나 기분 나쁜 것 남한테 안 하고 남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심지어 내 자식이 잘 되는 것이나 남의 자식이 잘 되는 것이나 느끼는 감정이 똑같을 때까지 훈련해야 한다. 우리 부모님 돌아가신 거나 모르는 부모님 돌아가신 거나 슬픈 감정이 똑같을 때가 사실은 완전한 무아다. 그렇게 되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 힘들다. 그러나 목표는 그렇게 잡고 가야 한다. 그게 무아다.
금강경의 가르침<발ㅇㅇㅇ심>
반야를 알고 無我를 체득한 후 空 도리를 알아라!
반야 – 업식이 멸한 상태 – 내가 남이 되어 보는 것 – 그래서 無我임을 아는 것
무 – 1.2.3.4.5.6.7.8.9 절대 무와 무량할 무
공 – 반야에 의해 드러나는 세계의 참 모습 – 모든 존재의 실상
공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반야에 의해 드러나는 세계의 참모습 반야에 의해 나타나는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그래서 공은 말로도 글로도 할 수 없고 자신이 몸으로 얻을 수밖에 없다. 조금씩 느끼게 될 텐데 그게 공이다. 무는 반야심경에 많이 나온다. 조주스님 無 자 화두 유명하다. 인도에서 만든 0. 절대 없음 0이다. 하나도 없음 Nothing도 0이다. 반면 1부터 9까지 표시할 수 없는 나머지 모두 다 0이다. 0/0은 부정이라 말한 적 있다. Undefinable 셀 수 없이 무지무지 많은 것도 0이다.
무가애 무유공포 또 무수상행식. 공 속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고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네가 네 생각으로 알고 있는 너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조리 들어가 있는 것이 반야심경에 나오는 無다. 그러니 네 생각으로 너를 판단하지 마라. 결국 생각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 느끼는 것이 공이다. 그러니 화두에서의 無는 없을 무가 아니라 1부터 9를 표현할 수 없는 나머지 모두가 무다. 기본적으로 개념을 이렇게 잡고 들어가면 겸손해진다. 이때부터 경안이 조금 열린다.
경안 – 불경을 볼 만한 안목. 즉 경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그 다음 공부할 때 중요한 말이 하나 있다. 불입색성향미촉법 할 때 入이다. 들 入이다. 相을 서로 상으로 아는 것처럼 당연히 옥편 찾아보는 사람 없을 것이다. 相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 相이다. 入은 받아들이다 라는 뜻이 있다. 금강경에서 入은 들이다 보다 받아들이다가 훨씬 많다. 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 한글 이상적멸분이다. 생각을 떠난 열반 한글이 더 어렵다.
그때 수보리가 이 경 설하심을 듣고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까지 얻은 혜안으로는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깊이 있는 경전 설하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궁극적인 지혜가 일어날 것이니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운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궁극적 지혜란 것은 궁극적 지혜가 아닌 까닭에 여래께서는 궁극적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같은 경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고 지니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 5백년 뒤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고 지닌다면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울 것입니다.
한글로 해도 되고 한문으로 독송해도 된다. 금강경으로 신통력 얻으신 어떤 분 말씀드린다. 제가 32가지 경제지표로 하는 금강경 강의 약속한 뒤 잘 할 수 있을까 겁이 나 영어 금강경을 100일간 읽었다. 금강경은 영어 제목이 Diamond sutra 이다. 다 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분 영어를 전혀 모르시는 분인데 알파벳만 읽고도 금강경 열렸다. 생각 없이 읽는데 그렇게 열리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지리산에서 몸수행 하신 분이라 했지만 기도 안 찼다. 도대체 안다는 것이 뭔가? 경에 이런 것이 있나? 그런 생각했다. 그 분 영어로 하면 내용 하나도 모르는데 어디 하는 줄 다 안다. 그러니까 불교가 생각을 떠난 자리에 있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참 맞는 말이다. 한문본으로 한 번 보자.
○ 離相寂滅分 第十四 생각을 떠난 열반
爾時 須菩提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世尊 若復有人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나=몸+마음<업식+반야>
수보리 존자는 자신이 혜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반야를 몰라 보살행을 못하고 염불을 못해도 혜안까지는 얻는다. 이게 금강경 18분의 육안 혜안 천안의 혜안이다. 반야를 알게 되면 모든 존재의 실상인 법안을 알게 되는 것이다.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할 때 제법부동본래적 부처의 법이나 중생의 법이나 증권회사 다니는 사람의 법이나 라면 가게 하는 사람의 법이나 먹고 사는 법은 본래 적하다는 말이다. 제법이 본래 적하다는 말이 반야다. 그래서 저울도 보여드리고 부동심 평상심 말한 것이다. 업식까지는 사주팔자 못 벗어난다. 반야부터 벗어난다. 최고의 수행을 했다는 수보리 존자가 얻은 경지도 혜안이다.
옛날 스님들 법문 좋다. 나도 목사님 책 많이 읽는다. 1940년대 50년대 스님들 법문 보면 그때는 온 국민이 가난했다. 절도 가난했다. 신도들 부자로 만들어줘야 했다. 그러니 그런 법문들 많이 했다. 장사는 이렇게 하면 잘 된다. 술장사 회집 해도 부처님 법을 따르려면 이렇게 해라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은 그냥 횟집 하지 마 할 수 있지만 예전엔 그게 안 됐다. 그런 장사하면서도 부처님 법 따를 수 있는 방법 특히 일타스님 책 보면 많이 나온다. 옛날 스님들은 어떻게 하면 중생들을 부자로 당당하고 지혜롭게 만들어 부처님 제자들로 키운 다음에 보살이라고 이름 붙일까 생각 많이 했다. 재가 여성불자들을 보살이라 말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요즘은 스님들이 우리 모두 등 따스고 배부르고 잘 사는 줄 안다. 안 가르쳐준다. 혹시 모르는 것이 아닐까 의심도 든다. 그런데 옛날 스님들은 그 점 많이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기도처 명당처 얘기도 많이 했다. 기도방법도 옛날 것이 훨씬 재미 있다. 복이 없어 제가 그런 스님들 친견을 못해 그렀지 만 원짜리 한 장에 그런 분들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것 굉장한 행운이다. 불교란 종교 가진 것 엄청난 행복이다. 기독교나 타 종교는 다른 종교 책 공부 못하게 한다. 그런데 불교는 기독교 책도 보고 이슬람 책도 보고 다 봐도 뭐라 그러는 사람 아무도 없다. 각각이 다 상황이 틀리다. 내 상황에 따라 목사님 말씀도 신부님 말씀도 스님 말씀도 취할 수 있다.
한국불교가 세계 최고라는 데 뭐가 최고란 말인가? 금강경의 수보리 존자와 부처님이 알면서 중생들 위해 쑈한다 그랬다. 특히 청담스님이 그랬다. 옛날 스님들 다 알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셨다. 그런데 모른다. 수보리 존자는 저 반야를 모른다. 계속 몰라 계속 혼나는 것이다. 그런데 14분에서 알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다. 내가 지혜는 얻었는데 복덕이 없구나! 복덕이 있으려면 보살행을 닦아야 하는 구나! 그것이 금강경 9분과 10분이다. 9분에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나오고 자신이 무쟁삼매를 얻었고 아란나행을 즐긴다고 쭉 나온다. 무쟁삼매는 번뇌와 싸우지 않는다는 소리다. 번뇌가 다 다운 되서 지혜가 생겼다는 소리다. 그래서 적정하고 즐거운 아란나행을 즐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부인 안 한다. 그래 맞다 그러나 수보리야! 내가 불국토를 장엄하게 한 적이 있느냐?
아란나행 – 수행하기 좋은 조용한 장소에서 일체의 욕심과 번뇌를 버리고 무쟁삼매를 수행하는 일
그 다음 나오는 것이 그 유명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그래서 네가 한 것이 뭔데? 보살행을 안 했다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는 아는데 쑈를 한 것이 아니라 모른 것이다. 남방불교의 율전에 따른다면 왜 스님이 신도들에게 돈을 받나? 왜 스님들이 돈을 내나 스님들은 걸사비구 아니냐? 받기만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도대체 스님들이 양노원을 왜 하냐? 그렇게 많이 공격한다. 그것은 남방불교 입장이고 한국불교 입장은 그렇지 않다. 금강경에 충실하다. 그래 너 비구 맞아. 복 져! 너도 보살행 해! 금강경 바로 그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No.1 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우리 불교 해방 이후 얼마 안 돼 티벳불교 일본불교 이런 불교 보고 스님들 굉장히 폄하하는데 금강경 입장에서 보면 아니다. 물론 공부 안 하는 스님들도 많다. 학생이라고 다 공부하나? 학생도 개기기도 하고 그러다 정신차려 공부하기도 하는 것이지. 한국불교는 금강경에 제일 충실하다. 거기다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 신중기도 나오는 것은 또 화엄사상이다. 백성욱 박사님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만 해서 타심통 얻었다고 노스님한테 들었다. 화엄경은 불교 최고 경전이다. 화엄사상은 세계일화다. 나도 꽃이고 너도 꽃이다. <世界一花 – 온 세상은 한 송이 꽃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 그렇게 잘 난 사람들이 많다. 그 점 인정 안 해서 그렇지 한국사람들은 남을 깔고 보는 것이 없다. 다 세계일화다. 그래서 금강경의 사상으로 무아를 체득한 다음 상대방이 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한국불교 금강경을 기반으로 화엄경을 지향하는 한국불교는 아직 그 꽃을 피우지 못했을 뿐이지 세계 최고다 말씀하시는 옛날 노스님들 말씀 맞다. 아! 나도 보살행을 해야 부처님처럼 저렇게 상호도 구족하고 법도 널리 펴는데 아! 내가 이것을 몰랐구나 하고서 주루룩 우시는 것이다. 아직 혜안까지 밖에 안 열렸다. 업식으로 아는 것이다. 실상은 지난 시간 말한 진실과 사실이다. 진실은 절대로 말로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자기가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世尊 我今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卽爲第一希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처음 금강경 강의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금강경 강의 다 끝나면 도반이 만명만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했다. 기독교에도 금강경과 비슷한 경전이 있다. Gospel of Thomas 바로 도마복음이다. 여기 보면 우리 선불교와 굉장히 비슷한 것이 많다. 기독교 경전은 사실 위주의 경전이다. 불교는 진실 위주의 경전이다. 누가 누구를 낳고 전부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것 없다. 무시 언제인지도 몰라! 여시아문 아가 누구라고 설명도 안 한다. 불교는 진실을 추구하는 종교고 기독교는 사실을 추구하는 종교다.
그런데 도마복음이 관련되면서 선불교와 굉장히 비슷한 말과 글을 떠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이 서양사람들에게 확산되면 불교의 영향이 서양에서 급격히 줄어들 수도 있고 굉장히 Contents가 많은 동양으로 넘어올 수도 있다. 실제로 오강남 교수 도올 김용옥 선생님 같은 분들만 도마복음에 대해 말씀들 하시는데 거기 보면 예수님은 이것을 알아 듣는 사람은 천 명에 한 명이거나 만 명에 2명 혹은 3명 정도 될 것이다 하셨다. 정말 참 희유한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불교신자가 2천만 명으로 보고 천 명에 한 명 정도라면 금강경을 딱 받아 신해수지하실 만한 분들이 토탈 2만 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2만 명만 되면 한국불교 전세계 쓸어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희유한 법을 공부하고 있고 아직 머리 속에 개념은 잘 안 잡히지만 자꾸 몸이 끌려가는 것은 수보리 존자가 말씀하신 대로 신해수지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은 我相 나라는 생각도 없고 人相 남이라는 생각도 없고 무리 지어 태어나고 우르르 몰려 다니는 衆生相이란 생각도 없고 이번 한 목숨 끝나면 이 생에 복이나 닦고 다음 생애에 참선 공부하지 뭐 하는 한 生이라 생각하는 壽者相도 없다. 단판승부다. 여기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요? 이런 일체 모든 相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부처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相이란?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인터넷 보면 댓글 달고 공격하는 사람들 많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자기 마음 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만큼의 재앙이 남아 있는 것이다. 백성욱 박사님 책 보면 찔끔한다. 나도 아직 미운 사람 많다. 그러나 이 마음을 없애지 않으면 이 마음으로 인한 재앙은 내가 받을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것도 相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참 약한데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은 지독하고 강렬하다. 그래서 相 하나 버리면 모두가 부처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想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반야 空 무아 그래 부처님 말씀이 맞아 당연한 거야 그러면 희유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꾸 의심이 생긴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어 맞네 맞네 자꾸 들어가진다. 탁 터지지 않아 그렇지 많이 엷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믿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불경불포불외 하는 사람들은 참 희유한 사람인 것이다. 현각스님 불경불포불외 설명하면서 재미 있게 표현하신다. 여래가 말한 바 첫 번째 바라밀은 첫 번째 바라밀이 나니라 이름이 첫 번째 바라밀이니라.
제방의 많은 스님들이 이 바라밀은 보시 바라밀이라 말하는데 내 생각은 반야 바라밀 같다. 6바라밀 하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러니까 제1은 보시라 생각하는데 그냥 하나가 다라 생각하면 반야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야는 반야가 아니다 단지 그 이름이 반야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반야로 뭘 행할 때는 무심해야 한다.
그렇다 그렇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경이로운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여래는 최고의 바라밀을 최고의 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최고의 바라밀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인욕 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온 몸을 마디마디 잘렸을 때 나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옛날 마디마디 사지가 사지가 잘렸을 때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있었다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과거 5백생 동안 인욕수행자였는데 그때 자아가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개아가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중생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관념을 떠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내어야 한다.
과거 부처님이 인욕선인이었을 때 누가 와서 코를 자르고 입을 잘랐지만 천신이 와 몸이 도로 붙었다. 여기 나오는 인욕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도 꽝이다. 나는 이 인욕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자신이 없다. 나도 한 성질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보리행론의 인욕편을 하루에 한 번씩 읽는다. 134구밖에 안 된다. 入보리행론 보리행 보리심 다 같은 말이다. 보리행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34구까지 다 읽지는 못하고 일부만 읽어 드리겠다. 정말 부탁인데 이 인욕의 고비를 넘어가지 못하면 부처님을 만날 수 없다. 만날 것 같다 못 만난다. 대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고리도 못 잡은 채 담장만 도는 일이 생긴다. 모든 공덕을 불태워버리는 것이 화다. 이 인욕에 대해 누구에게 말로 듣는 것보다 제일 좋은 것이 입보리행론 책이다. 원래 한문본은 없다. 영어로 읽어도 좋다. 법구경처럼 재미 있다.
입보리행론 – 인도 불교학자 산티데바<Santideva> 저술. 보리행의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
몇 천 겁 동안 쌓아 온 보시와 부처님께 올린 공양 등 어떠한 선행 그 모든 것도 단 한 번의 성내는 마음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분노보다 더한 죄악은 없고 인욕보다 더 어려운 고행은 없다. 이에 진지하게 인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습해야 된다. 화내는 마음의 고통을 지니면 마음은 고요한 평안함을 경험할 수 없으며 기쁨과 안락을 얻지 못하여 잠이 오지 않고 불안하게 된다.
모든 재물과 존경으로 그 은혜에 의지하는 사람들마저도 진심을 가진 그 주인에게 대들며 죽이려고 한다. 그의 친구나 친척도 실망하며 보시로 거두어 보지만 믿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진심을 일으켜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평생 잘해줘도 한 번만 잘 못하면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이 깨닫지 못한 중생들 삶이다. 14분에나오는 인욕은 각자 공부하기 바란다.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卽爲非住 是故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誑語者不異語者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須菩提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ㅁ먁삼보리심을 내야 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반야로 바라보는 존재의 실상을 아는 것이다. 나 아직 모른다. 여러분도 모른다. 말로 할 수도 없다. 17분부터 32분까지 쭉 나온다. 발보리심이 空으로 바라보는 세계의 실상이래 스님들이 말씀하신 공도리래 공을 체득한 것이래 라고만 아시면 다른 스님들 법문 하실 때 헷갈리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발심이 안 되면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가 붙질 못한다. 왜냐하면 발심이 된 사람만이 자기에게 空사상을 가르쳐줄 수 있고 불이문을 지나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만원짜리 주고 떡 공양 올린다고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가 불이문 통과할 수 있나? 아니다.
사홍서원이 뭔가?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모든 중생 제도하겠다고 서원하면 그 중생에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가 들어간다. 내가 너를 구해줄께 라고 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어떻게 구하는데? 발심한 사람은 구한다. 그래서 14분에서 발심이 딱 걸리면 15분부터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가 꽃을 뿌리며 탑을 돌듯이 그 사람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기도 들어가는 것이다. 14분의 발심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3분의 발심은 서론으로 그냥 설명한 것이고 여기가 진짜다. 그래서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한 군데도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다. 업식 생각 몸 절대 머무르면 안 된다. 반야에 머물러 반야에 의지해 응무소주이생기심 하고 응생무소주심 하라는 것이다.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심으로 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괘를 뽑을 때도 무심으로 해야 한다 그랬다. 무심이란? 의도한 바 없이 대가 없이 하라는 것이다. 이것도 연습하면 된다. 습득할 수 있는 기술에 불과하다. 대단한 것 아니다. 응생무소주심 약심유주 즉위비주 네가 어딘가 머문다면 이렇게 하면 되겠지 그것은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에서 인은 다른 사람 다른 존재라 했다. 불교인이 범하는 실수 많다. 기독교인도 그런 사람들 많다. 예수님한테만 부처님한테만 신장님한테만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님한테만 잘하고 자기 주변사람들에겐 안 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많다. 절 주차장 지키시는 분 절 사무국 계시는 분들 신도들에게 엄청 퉁명스럽게 하시는 분들 많다. 바로 천인에서 인을 빼먹은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데. 사람이기도 하고 나 아닌 남 다른 존재다. 중생 없다. 다 똑같다. 평등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도 반야가 있고 나도 반야가 있다. 사람들 아직 반야를 듣도 보도 못한 것인데 우리는 금강경 공부한 복덕으로 아! 반야란 것이 있구나 라고 해서 정과 사의 기준이 선 것다. 그러니 개도 불성이 있는 것이다. 수보리야! 나 쓸데 없는 얘기 미친 소리 딴 소리 하는 것 아니다. 진짜 있는 그대로 하는 말이다. 뭐 얻고자 할 것도 없고 헛된 것도 아니다. 무실무허 무지 중요한 말이다. 만약 보살이 어떤 법에 머물러 보시를 하게 되면 깜깜한 방에 들어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대가 바라고 이것만 그러면 안 된다.
반면 마음이 어떤 법에도 머무르지 않고 보시하게 되면 마치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빛나고 가지가지 색깔과 모습을 다 볼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제가 하도 남의 돈 많이 깨 먹어 월정사 적멸보궁 밑 용안수로 눈도 씻어 보고 제발 눈 좀 밝아져 남 피해 좀 안 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정말 좋아했다. 5년 지났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한다면 부처님은 우리가 엄청난 복덕 공덕 받고 성취하는 것을 다 알고 다 보고 계신다. 부처님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중생들<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 끼리 인연을 맺어 서로 주고받는 것을 내가 아주 즐겁게 보겠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하면 우리가 받는 것이다.
18회. 우승택 금강경<이상적멸분2>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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