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박제가(朴齊家)
토령(土嶺)을 쳐다보니 5리쯤 되어 보인다.
잎이 진 단풍은 가시나무 같고
흘러내린 자갈은 길에 널려 있다.
뾰죽한 돌이 낙엽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발을 딛자 삐어져 나온다
미끄러져서 자빠질 뻔하다가 일어났다
손으로 진흙을 짚었는데
뒤따라오는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부끄러워 얼른 붉은 단풍잎 하나
주워 들고 그들을 기다렸다.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 젖히고
소매를 팔꿈치 위로 걷어 올렸다.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긋한 모래판에
내던진 후 둥글넓적한 바위에
엉덩이를 고이고 잔잔한 물을
앞에 두고 걸터앉았다
작은 나뭇잎 배는 잠길락 뜰락
배는 자줏빛,등은 노랗다.
돌을 싸고 엉킨 이끼는 곱기가 미역과 같다
발로 물을 쫙 베니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물을 뿜었더니 이빨 사이로 비가 쏟아진다.
두 손으로 물을 허우적거리니 물빛만 번뜩일 뿐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곱을 떼고 얼굴의 붉은 술기운도 씻었다
때마침 가을 구름 한 덩이가 물에 비치며
나의 정수리를 어루만진다
무릇 유람이란 아취(雅趣)가 중요하다.
날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데를 만나면 바로 멈추고
지기지우(知己之友)를 이끌고
회심처(會心處)를 찾아야 한다.
복잡하고 떠들썩거리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속된 사람들은 선방(禪房)에서
기생를 끼고 시냇물 가에서 풍악을 베푼다
이야말로 꽃 아래에서 향을 피우며
차 앞에 과자를 놓은 꼴이다
어떤 이는 와서
'산중에서 음악을 들으니 어떻던가?'하고 묻는다
나는
'나의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의 낙엽 밟는 소리만을 들었노라.'
고 대답했다.
옛날에도 가을철 단풍을 구경하는
인파로 북적이는 곳이 있었다.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경계선에
위치한 묘향산이 그랬단다.
정조때 시인이자 학자인 박제가는
묘향산 단풍 구경의 감격을
아름다운 기행문으로 살려 놓았다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가 그것이다.
패기만만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스무 살의 시인은 이 여행기에서
글솜씨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산수를 느끼고 묘사하는 산수기의 새로운
차원을 연 작품이라고 평가한단다
보고서처럼 무미건조하지 않고
감탄을 남발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산을 보는 안목이 없지도 않다
이 계절에 묘향산 단풍에 반한 그를 사모하며..
작성자/심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