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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정기자의 음식탐방] 누들 (3)냉면

淸潭 2010. 6. 5. 15:46

[최세정기자의 음식탐방] 누들 (3)냉면


냉면 마니아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여름이 돌아왔다. 냉면 한 그릇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무는 메밀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냉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고기와 달걀이 들어간다.
 
메밀의 찬 성질을 완화시키기 위해 겨자를 풀고 살균을 위해 식초를 곁들여 먹는다. 하지만 냉면을 대하는 마니아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소위 ‘나이롱 냉면’이 판을 치고 최근 중국산 육수 농축액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기도 하는 등 제대로 된 냉면을 맛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냉면집이 명멸을 거듭한다. 냉면은 손맛을 타기 쉬운 음식이라, 미묘한 차이에도 손님들의 입소문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대구의 3대 냉면집으로 꼽히고 있는 부산안면옥`대동면옥`강산면옥을 찾았다.
 
◇부산안면옥(053-424-9389)
매년 4월 1일이 되면 냉면 마니아들의 발길은 부산안면옥으로 향한다. 이 냉면집은 4월 1일 문을 열어 추석 전날 문을 닫기 때문이다. 부산안면옥은 올해 개점 40주년이 되는 해. 방수영(79) 사장의 외가는 평양에서 냉면집 ‘안면옥’을 운영했다.
 
한국전쟁 후 그 큰 외삼촌 안목천은 부산에서 ‘부산안면옥’을 내고 작은 외삼촌 안차천은 대구 대동면옥을 운영했다. 방 사장은 부산 안면옥의 대구지점을 내고 냉면 명가로서 소문을 더해간다. 대동면옥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방 사장은 지금껏 평양냉면의 원조를 자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릴 때 평양에선 냉면 삶은 물이나 김칫국물을 육수로 사용했어요. 그래서 이북에서 냉면 맛을 본 사람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죠. 고기 육수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밋밋한 맛일 겁니다.” 부산안면옥은 뼈와 고기`인삼 등을 넣어 육수를 내는 모습을 고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24시간 끓여낸 부산안면옥 온육수는 쌉싸래한 인삼 향기가 감돈다.
 
아쉽게도 냉면집을 호령하는 방 사장의 모습은 올해까지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내년부터는 막내아들에게 가게를 모두 맡길 예정이다.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면 안 된다’는 방씨의 신조에 동의하는 나이 많은 단골들이 많다.
 
◇강산면옥(053-425-1199)
1958년 냉면장사를 시작한 원도일 할머니 일가의 냉면집이 강산면옥의 시초다. 1996년 체인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10여개의 체인망을 두고 있다. 강산면옥의 평양냉면 육수는 사골을 달여낸 진한 맛에 식초를 넉넉하게 넣어 새콤달콤한 것이 특징. 30여년간 한 장소에서 장사하고 있는 까닭에 추억을 찾아 오는 손님들이 많다.
 
강산면옥의 온육수는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강산면옥의 특징적 메뉴는 ‘김치마리’. 새콤하면서 산뜻한 맛의 김치마리는 냉면에다 깍두기 김칫국물을 붓고 여기다 밥 한 덩이를 말아낸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메뉴. 강산면옥 김재한 대표이사는 “이북에서 먹던 가정식을 상업화한 원조”라고 말했다. 강산면옥 본점 매장에는 역사를 보여주는 냉면 뽑는 틀 등을 전시해두고 있다.
 
◇ 대동면옥(053-255-4450)
대동면옥은 젊은 층과 나이 많은 냉면 마니아들의 사랑을 골고루 받고 있는 곳이다. 1988년부터 이옥자(54) 사장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대동면옥은 여름철이 되면 앉을 자리가 없어 손님들이 30~40분씩 기다리기 일쑤다. 그래도 손님들은 대동면옥의 냉면을 사랑한다.
 
냉면 마니아 손정우씨는 “이북 출신의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라 한겨울에도 이 집을 찾아 냉면을 먹는다”고 말했다. 대동면옥은 육수뿐만 아니라 면발까지도 매장에서 직접 뽑아낸다. 아무리 바빠도 주인 부부가 늘 주방을 지키는 것이 냉면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고춧가루, 사골 등 대부분의 재료는 국산을 사용한다.
 
요즘 메밀 값이 쌀 값의 두 배로 폭등해 여러모로 쉽지 않다. 맛의 비결에 관해 이 사장은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한데, 정확하고 정직하게 음식을 만드는 것밖엔 비결은 따로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정직한 재료와 손이 맛을 내는 집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지방제휴사 /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