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후진타오 2기 전망’ 中문제 전문가 이홍영 석좌교수
이홍영 교수가 25일 연세대 ‘위당 정인보 기념관’ 연구실에서 17차 중국 당 대회 이후의 중국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
“中 커갈수록 한국은 美-日관계 더 중시해야”
15∼21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통해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됐다. 공산당의 중추인 중앙위원과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도 상당수가 교체됐다.
중국 공산당은 이번에 처음으로 ‘후계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한편 성장 일변도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처방을 기본으로 하는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을 당장(黨章)에 넣었다.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나타난 중국 공산당의 변화와 앞으로의 전망을 중국 문제 전문가인 이홍영(68·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 연세대 석좌교수에게 들었다.
―17차 당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무엇인가.
“‘권력의 제도화’다. 최고 지도자든 누구든 크고 작은 정책을 수립, 집행하거나 높고 낮은 자리의 사람을 뽑는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견지’나 ‘공산당 우위의 원칙’ 등 큰 틀은 놓아둔 채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중국보다 더 ‘권력의 개인화(personalized)’가 심한 것 같다.”
―중국에서 민주화가 싹터 가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나.
“거대 중국의 민주화 진전 여부는 모두의 관심사다. 그러나 다당제 민주화는 아직 요원하다. 그 대신 공산당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어 정책을 집행하는 ‘중국식 당내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 중앙위원과 정치국에 들어온 5세대 지도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과거처럼 이공계 출신이 압도적이던 때와는 달라지고 있다. 당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흡수함으로써 13억 인구의 대국을 관리하는 데 안정과 지속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직선을 통해 최고 지도자나 국회의원을 뽑는 식의 민주화는 아니지만 ‘중국식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350여 명의 16대 중앙위원과 후보위원들에게 17대 정치국원 후보를 추천해 보라고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의 추천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50대 초반의 시진핑(習近平) 상하이 시 당서기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 성 서기를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켜 5년 후에 각각 총서기와 총리로 키운다는 구상인데….
“두 사람은 지금까지 각각 당과 정부에서 일해 시 서기가 총서기, 리 서기가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쟁은 이제부터다. 앞으로 5년간 누가 어떤 능력과 실적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은 최근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국제 사회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반면 부패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 과제도 적지 않다. 집권 2기 후 주석의 과제는 무엇인가.
“‘문제가 없으면 중국이 아니다’ ‘중국 문제가 해결되면 세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은 줄곧 이런 저런 과제와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중국은 어떤 문제가 됐든 그 문제를 푸는 데 (과거) 150년 내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중국 지도부가 안으로는 국민의 눈을 의식하고 밖으로는 세계의 눈을 지금처럼 의식한 적도 없다. 이는 30년 개혁개방의 효과이자 중국이 세계 질서에 편입된 데 따른 것이다. 과제 해결에 필요한 정치적 경제적 자원도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국민이 지지하며, 돈이 필요하다면 돈도 여유가 있다.”
―바로 이웃에서 커 가는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큰 시장이 생기는 기회도 있지만 ‘도전’ 요소가 없는지를 잘 살펴 대응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중국이 정치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됐을 때 한국은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24일 중국이 달 탐사 위성을 쏘아 올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일본과 싸우며 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으로 혼란하던 1930년대도 범중국계 인재들의 이공계 박사가 800여 명이나 있었다. 반면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은 11명에 불과했다는 통계도 있다. 더욱이 18세기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중국의 과학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다만 과학이 ‘조직적인 학문’이 된 후에 서방 국가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 이후 100여 년간 움츠렸다가 다시 (과거에 잃어버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홍영 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석·박사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장(1991∼2001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교수(현) △연세대 용재석좌교수(2007년 3월) △주요 저서 ‘중국 문화대혁명의 정치’ ‘중국 정치 엘리트의 혁명 간부로부터 기술 관료로의 변화’ 등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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