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獨헤센평화문제연구소 하랄트 뮐러 소장
독일의 국제안보전문가 하랄트 뮐러 헤센평화문제연구소장은 “통일 후 남북한 간의 문화적 갈등은 경제 개발과 교육 시스템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한 세대 이상 오래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쓴 ‘문명의 충돌’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권 사이의 갈등이 세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독일의 대표적 국제안보전문기관인 헤센평화문제연구소의 하랄트 뮐러(프랑크푸르트대 교수) 소장은 헌팅턴의 이론에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국제관계학 전문가다. 그는 “문명 간 차이점을 강조하며 경계를 긋는 헌팅턴 식 ‘편 가르기’는 간편하고 이해하기 쉬울 뿐”이라며 “인류에게 절실하고 유용한 것은 여러 문명의 공통점과 공감대를 찾는 대화와 협력”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뮐러 소장을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6자회담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중심의 다국 협상 프레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방한 기간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국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등을 만나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하랄트 뮐러 | |
△19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 △1981년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 박사 △1996년∼ 독일 헤센평화문제연구소장, 외교부 평화 및 분쟁연구팀장, 유엔사무총장 군축문제 자문위원 △1999년∼ 프랑크푸르트대 교수·국제관계학 △저서: ‘협력의 기회, 국제관계 속의 정권들’(1993) ‘문명의 공존’(1998) 등 |
―6자회담의 효용에 대한 회의론도 있는데….
“아주 오랫동안 동아시아에는 안보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국가 간 대화의 장이 없었다. 평화를 위한 협상의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저런 난항을 겪으면서도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회담에서 약속한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치적 통일을 이룬다 해도 문화적 차이에 의한 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예상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 경험으로 볼 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그 충돌은 해결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경제적 균형이다. 경제적인 만족도가 높아지면 심리적 갈등은 빠르게 가라앉는다. 두 번째는 교육 시스템이다. 현재 북한의 교육은 국민에게 국경 밖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오해를 심었을 것이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 인내심이다. 오랜 세월 벌어진 문화적 간극을 좁히려면 적어도 한 세대, 어쩌면 두 세대 이상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인내심은 때때로 가장 큰 지혜다.”
―통일 후 독일에서 문화적 충돌은 어땠나.
“옛 동독 출신과 옛 서독 출신 사이에는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옛 동독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교육 시스템이 변화하면서 갈등은 빠르게 해소됐다. 통일 이후에 초등교육부터 받은 젊은 세대 간에는 출신 지역에 따른 문화적 특징은 있어도 그로 인한 갈등은 없다.”
―저서인 ‘문명의 공존’에서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을 비판했는데….
“헌팅턴 교수는 문명 간 차이점에만 주목한 나머지 공통점을 간과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슬람 신도는 다른 문화권 사람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외지 문화에 쉽게 동화한다. 터키 국민의 약 4분의 3, 사우디아라비아 국민 대다수의 생활방식은 서구화된 지 오래다. 서방세계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은 상대적 소수다. 사회적 다수의 성향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세계 정세에 대해 헌팅턴이 제시한 해석에 공감한 독자가 적지 않은데….
“문명 충돌론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인간은 복잡한 것에 질색하고 단순한 설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식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나치의 ‘아리안과 비아리안’ 이분법도 마찬가지였다. 복잡다단한 현실에 골치 아파하기 싫어하고 단순한 세계관으로 정리하기 좋아하는 심리적 경향이 인간에게 분명히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나라 간 개방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와 지금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이질적인 것’은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엮여 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문제나 에너지 위기를 한 나라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나? 문명 충돌에 대한 걱정은 구태의연하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대륙별 경제공동체가 갈수록 활성화되는 것은 또 다른 문명 충돌의 전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구성원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국가나 경제공동체는 당연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기주의에는 어리석은 이기주의와 현명한 이기주의가 있다. 차이는 장기적 안목의 유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야기했던 극단적 이기주의는 모든 방면에서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한 현대사회에서는 다시 나타나기 어렵다. 국제금융기관, 유엔 등 적절한 안전판을 활용해 전 세계가 최적의 균형을 이루며 현명한 이기주의를 구현하리라 믿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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