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인물초대석

나노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로저스 편집장

淸潭 2010. 2. 20. 15:12

[초대석]나노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로저스 편집장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의 피터 로저스 편집장은 “나노기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에게 유익한 것(good for everything)’”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노 연구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야기하겠지만 결국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나노 신소재 그래핀, 전자산업 패러다임 바꿀것”



“나노기술이 위험하고 재앙을 부른다고 보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나노 연구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미국인도 그렇게 생각하죠. 자전거를 타거나 전자레인지를 쓰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지난달 19일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난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의 피터 로저스 편집장은 “나노기술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걱정 반 기대 반”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38년 전통의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인 이 저널은 창간된 지 겨우 1년 된 신생 학술지다. 10억분의 1m(nm·나노미터) 세계를 연구하는 각국의 과학자들이 보고한 최신 성과를 두루 소개한다.

그는 네이처로 자리를 옮기기 전 영국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 연구원과 물리학 전문지 피직스 월드의 편집장을 거친 베테랑 과학 기자. 이날 만남은 KIST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나노기술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로 연설을 막 마친 뒤였다.

로저스 편집장은 ‘나노기술의 현주소’를 설명하며 지난해 12월 5일자 저널에 실린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미국인 503명을 대상으로 나노기술을 포함해 일상에서 자주 쓰는 44개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한 것이다.

“반응이 재미있어요. 사람들은 나노기술이 생명공학이나 원자력, 유전자조작농산물(GMO) 석면(石綿) 인간게놈 연구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전자레인지 오븐 같은 가전제품을 사용하거나 기차를 타는 일, 컴퓨터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보다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수돗물을 불소로 소독하는 것보다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가 될 듯 말 듯합니다. 유용성 면에서 아직 저평가되고 있어요.”

그는 이런 상황이 과학자와 일반인의 의사소통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나노기술 연구자들에게 사회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해 초 미국 학생 1014명에게 나노기술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겨우 27%만 조금 들어 봤거나 안다고 답했어요. 나노 연구에 계속 투자가 이뤄지려면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인 국민과 최종 구매자인 소비자의 생각을 읽어야 합니다. 항상 뒤에 위험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GMO와 같은 꼴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그래서인지 최신 연구 성과와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균형 있게 다루는 이 저널에 거는 과학자들의 기대는 크다.

지난 1년간 투고된 논문이 1500편에 이른다는 통계만 봐도 쉽게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도 현재 논문 많이 내는 나라 6위에 올라 있다. 이런 약진에 힘입어 네이처도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와 ‘네이처 케미스트리’ 등 다른 자매지의 추가 창간을 서두를 정도다.

최근 이 저널은 ‘그래핀(graphene)’이라는 소재에 주목한다. 그래핀이란 탄소원자들이 철망처럼 얽혀 있는 얇은 막 형태의 새로운 나노 소재. 탄소원자들이 관 모양으로 연결된 형태의 탄소나노튜브와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나노기술의 응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탄소나노튜브라고 한 번쯤 들어봤지요? 사람들이 이제는 탄소나노튜브라고 하면 ‘아 나노기술이구나’하고 어느 정도는 압니다. 탄소나노튜브는 이제 나노시대를 상징하는 일종의 코드,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뒤를 잇는 걸 찾는다면 그래핀이 유력합니다. 그래핀이야말로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히트 상품이 될 겁니다.”

로저스 편집장은 이런 나노 연구가 인지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도전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나노기술 탄생의 배경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이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한 연설이라고 꼽아요. 당시 파인먼은 백과사전에 담긴 정보를 핀에 담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지요. 그러나 그건 ‘영감(靈感)’을 준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원동력을 꼽으라면 전자현미경과 원자현미경 같은 정밀 측정기기의 발전입니다. 이들 과학 장비가 인식의 지평을 원자와 분자 세계로 확장시켰고 결국 우리 삶에 끌어들였지요.”

그러면서 그는 “원자현미경을 국산화해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에 공급하는 한국의 파크시스템스 같은 기업과 개발자들이야말로 나노 시대를 연 숨은 공로자 중 하나”라고 했다.



:나노기술(Nano-technology):

분자나 원자를 분석하고 제어하는 과학기술. 1nm(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전자현미경이나 원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크기다.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2000년 국가나노기술계획(NNI)을 발표한 이후 세계적으로 나노 연구 붐이 일었다. 화학물질의 일부 구조를 조작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거나, 원자나 분자 크기의 모터, 생물체와 무생물을 결합한 신개념의 전자소자 개발에 활용된다. 몸 안을 돌아다니며 병균을 사냥하는 초소형 치료 로봇도 이 기술로 만든다.



:피터 로저스:

△1962년 영국 출생 △1984년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물리학 석사 △1988년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 물리학 박사 △1988∼1990년 영국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 연구원 △1990년 IOPP(Institute Of Physics Publishing)사 입사 △1995년∼2005년 IOPP 발행 물리학 잡지 피직스월드 편집장 △2005년∼현재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편집장 △2006년 10월 4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창간 △주요 연구: 레이저 양자 광학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