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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원자력기구 방사성 폐기물 국장 한스 리오테

淸潭 2010. 2. 19. 15:15

[초대석]OECD 원자력기구 방사성 폐기물 국장 한스 리오테




한스 리오테 국장은 “고준위 폐기물 보관 시설 건설과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국민 참여와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방폐장 건설은 사회적 합의 필요한 국가적 문제”
최근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 공간이 70%가량 차면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건설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원자력발전소들은 수용 능력을 늘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2016년경이면 저장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고준위 폐기물을 안전하게 영구 보관할 시설을 짓자는 원자력계와 맹목적인 원자력발전 대세론에 제동을 건 시민환경단체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장기간 난항 끝에 가까스로 결정된 경주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건설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정부는 그보다 더 민감한 고준위 폐기물 처리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5일 한스 리오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 방사능방호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국장이 한국수력원자력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NEA는 OECD 30개 회원국들이 원자력을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각국의 방사성 폐기물(방폐물)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리오테 국장을 만나 최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건설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OECD가 권장하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 방법은 뭔가.

“언제나 안전성은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OECD는 회원국들에 지하 수백 m에 굴을 뚫고 폐기물을 저장하는 방식인 지층 처분을 권장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나온 핵연료의 반감기(방사성 물질의 질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는 1000년 이상으로 길다. 이처럼 긴 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효과적인 방법은 폐기물 처분장을 땅속 깊이 짓는 것이다.”

―그럼에도 방폐물 처분장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나온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는 ‘매우 중요한(very important)’ 절차다. 기술의 우수성을 내세운 ‘밀어붙이기 식’ 정책은 더는 실현하기 어렵다. 폐기물 처분장 건설은 의사 결정 과정이 단계별로 이뤄져야 한다. 먼저 처분장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와 기업은 국민과 지역사회라는 다른 주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OECD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원국이 참가하는 회의나 국제 조약은 대부분 원자력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국민 참여를 명시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뭔가.

“강제적이지 않지만 OECD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에 대한 권장안을 갖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주민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 내고, 해당 지역 사회의 삶의 질과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리오테 국장의 발언은 지역사회의 분열과 논란을 일부 야기한 한국의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건설 추진 과정과 비교해 볼 만하다. 그는 “폐기물 처분장 건설 문제는 한 지역 사회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국가적 문제”라고 했다. ‘정부 국민 지역주민 기업’이라는 4개 주체가 서로를 인정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잘 도출해 낸 나라를 든다면….

“스위스와 스웨덴, 핀란드가 좋은 예다. 이들 나라는 친환경 국가로 꼽히면서 핵폐기물처분장 문제를 가장 원만히 해결하고 있다. 5기의 원자로를 보유한 스위스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자력 발전을 계속할지 주민 투표에 부쳐 결정한다. 부결되면 5년의 기간에 걸쳐 차례로 원자로 가동을 정지시키고 폐기 처분에 들어가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그런 적은 없다. 2003년 환경단체들이 원전 폐기 문제를 투표에 부쳤지만 국민은 당분간 원자력 발전을 하자는 쪽의 손을 들어줬다.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물론 이런 지지는 모두가 투명한 의사 절차와 정보 공개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 과정에 대한 OECD 평가는….

“한국의 사례는 OECD에서도 이례적이고 흥미로운 사례에 속한다. 대다수 OECD 회원국은 인구밀도가 낮다. 폐기물 처분장 건설 지역 주민은 2000∼3000명이 고작이다. 반면 한국은 평균 20만∼30만 명의 주민들의 이해가 얽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해결 방법이 쉽게 도출되기 힘든 구조다.”

―이번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과 관련해 조언을 한다면….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는 자원 부족 때문에 원자력 발전을 선택한 모든 나라가 겪는 민감한 사안이다. 최근 에너지 고갈과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원자력 발전은 당분간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유럽연합(EU)도 70∼80% 국민이 지지한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듯 해결 방식도 다를 거라고 본다. 다만 얼마나 지역 사회와 국민의 의사를 더 많이 수렴해 반영하고, 지역주의에서 빨리 벗어나느냐가 문제다.”

:한스 리오테 국장:

△1947년생 △1973년 독일 쾰른대 졸업 △1978년 독일 쾰른대 핵물리학 박사 △1978∼1980년 독일 쾰른대 핵화학연구소 연구원 △1980∼1988년 독일원자로시설안전협회(GRS) 자문역 △1989년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 국장 △1994∼1998년 독일 BMBF 연구정책담당관 △1998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 방사능 방호 및 방사성 폐기물 관리국장

:방사성 폐기물:
원자력발전소나 병원, 연구소에서 나오는 원자력 부산물. 고준위와 중저준위 폐기물로 나뉜다. 중저준위 폐기물에는 방사능을 띤 기체나 방사능을 거르는 필터, 원자로에서 방사능을 흡착하는 이온교환수지, 청소에 사용된 종이와 걸레, 이를 소각해 생긴 재가 있다. 고준위 폐기물은 발전하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를 뜻한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