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로 설법하는 천불을 조성해 진리의 숲을 만들겠다는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본각 스님. 예술에 머물지 않고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부처님을 조성하겠다는 화가 이호신 씨. 두 원력 보살의 발원으로 시작된 본지연재 ‘세상의 부처와 진리의 말씀-천불만다라’가 지난 2월 10일 10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년 2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숨 가쁘게 달려온 두 주인공. 연재를 마치며 그들의 감회와 ‘천불만다라’ 불사의 회향 계획을 들어봤다.편집자
“이 시대와 소통 하는 도량 발원”
천불 봉안 금륜사 창건 본각 스님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마무리 한다는 소신으로 일생을 살아왔는데, 이 일 만큼은 처음부터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가르침을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전하는 도량이 되겠다는 발원이 이 대작 불사를 이끌어온 힘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부족한 자리에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 됐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꿈만 같습니다.”
수화로 설법하는 천불의 부처님 앞에서 본각 스님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획일적으로 생산되는 천불 봉안에서 벗어나 ‘누구나 부처요, 어디에나 부처가 계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구현한 천불을 봉안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하고 싶다는 발원이 대작 불사의 시작이었다.
본각 스님은 천불만다라가 조성되는 동안 각 작품의 주제가 된 『법구경』의 구절을 풀이해 ‘법보신문’에 게재했다. 각각의 구절이 설해진 배경과 계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 독자들에게 전하는 100번의 연재는 스님에게 간경 수행과 다를 바 없었다.
“100회를 연재하면서 『법구경』을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게 됐습니다. 수행자로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큰 수행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법구경』을 읽고 그 뜻을 새기면서 마음속에 헝클어져 있던 생각, 세상을 보는 관점, 느낌 등을 부처님 말씀과 가르침을 기준으로 모두 풀어낸 느낌이었습니다.”
2년여를 넘는 연재 기간 동안 부처님의 자비롭고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며 때로는 칼날 같이 예리한 관점으로 세간의 어리석음을 경책하기도 한 스님은 “현대사회가 불교의 겉모습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의 깊은 세계는 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갖고 불교를 재단하려 한다”며 안타까움을 밝힌 스님은 “부처님이 이 시대에 계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밝혔다.
천불만다라가 봉안될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의 새 도량 금륜사에도 그래서 ‘진리의 숲’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는 곳, 언제나 부처님의 진리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곳이 되고자하는 바람 때문이다.
천불만다라 조성과 발맞춰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금륜사 불사는 대지 500평, 연건평 300평의 법당에 천불만다라와 함께 세계의 부처님을 그린 50여 점의 불화가 봉안된다. 특히 세계의 부처님 불화는 파키스탄의 수행상으로 시작돼 석굴암 부처님 작품으로 마무리 된다. 수행의 시작과 마무리를 상징하는 구성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교회에 가는 기독교인들과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 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사찰에 오는 불자들을 비교해 보면 불자들이 너무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허물은 스님들에게 있습니다. 스님들이 수행에 매진하고 모범을 보이며 사찰을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도량이 되기 위해 본각 스님은 사찰 안에 청소년공부방, 도서관, 공연무대, 다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실도 만들고 천문학이나 수화 강좌도 개설할 예정이다. 이러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통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계획이다.
천불만다라 도량 금륜사는 오는 4월 11일 개원 예정이다. 설법하는 천불의 부처님과 세계의 부처님이 무한한 환희의 법석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불교 미술 새 장 개척 평생 보람”
‘진리의 숲 천불…’ 전시 이호신 화백
2004년 본각 스님으로부터 천불 조성의 원력을 들은 이호신 화백은 무거운 어깨로 짐을 꾸렸다. 획일적인 천불이 아닌 ‘누구나 부처이고 어디에나 계신 부처’란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화두의 돌파구를 찾아, 천불의 흔적을 찾아 3년여 동안 전 세계의 석굴과 회화를 찾아다닌 이 화백은 인도 아잔타 석굴의 천불도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는 획일적인 부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벽면을 가득 매운 부처님은 모두가 다른 수인을 하고 있었다. 수화로 설법하는 천불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천불만다라’ 속 부처님들은 백인이기도 하고 흑인이기도 하고, 어린이기도 하고 어른이기도 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천상에 머물기도 하고 지옥 불에 나투기도 한다. 그 모든 부처님은 수화를 통해 끊임없이 법을 설하고 계신다.
“천불만다라는 이전의 천불이 보여 왔던 반복성, 연속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한계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법구경』이라는 진리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습니다.”
『법구경』의 내용이 화폭의 구성과 소재, 표현 방법의 모티브가 되었다면 부처님의 수인을 대신할 수화는 청각장애인 신행 모임인 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이, 세계의 부처님 불화의 배경이 되어준 우주와 별자리는 천문학자 이시우 박사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밖에도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불교미술실 관계자 등 고마운 사람들을 손꼽는 것으로 이 화백은 소감을 대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채색 작품을 오래 보존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전문가들 말이 ‘작품이 좋으면 오래 간다’는 겁니다. 작품이 좋으면 종이나 물감이 좀 덜 좋더라도 후대 사람들이 복원하고 보존해서 오래 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더 좋은 종이, 더 좋은 물감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욕심대로 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적지 않았다. 대신 천년 이상 간다는 전통한지에 통풍이 잘된다는 전통 표구 방식을 고집했다.
이 화백은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그동안 조성한 천불의 부처님과 세계의 부처님을 한 자리에 모두 펼쳐보는 첫 번째 자리다. 천불만다라 100점에 세계의 부처님 불화까지 합치면 150여 점에 달하는 규모다 보니 작업을 마무리한 후 지금까지 작가 자신도 한 자리에서 모든 작품을 펼쳐본 적이 없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천불만다라 도량 금륜사가 완공되기에 앞서 봉안된 모습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더불어 예술작품으로, 감상의 대상으로, 작가가 품에 안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사찰이 완공되고 작품이 봉안되면 천불만다라는 성보이자 예배의 대상, 작가의 것이 아닌 모든 중생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화백은 “처음부터 내 작품이라는 생각보다는 모두가 함께 동참하는 불사로 생각했기 때문에 새삼 서운함은 없다”며 “천불을 그리며 매일 새로운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말씀,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빚어내는 진리의 오케스트라를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036호 [2010년 02월 18일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