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1136명 친필 그대로 … 600년 서예사 집대성 『근묵』출간

淸潭 2009. 6. 30. 12:24

1136명 친필 그대로 … 600년 서예사 집대성 『근묵』출간

 

한국사 600년에 걸친 문인·학자 1136명의 친필 서예작품이 실물 그대로 영인, 번역돼 나왔다. 서예사의 집대성이라고 일컫는 『근묵(槿墨)』이 처음으로 완역된 것이다. 『근묵』은 한국 미술사학계의 대부인 위창 오세창(1864~1953)이 1943년 평생 수집한 서예작품 진본을 엮은 서첩이다.

고산 윤선도가 1654년 정월에 지인에게 보낸 안부 편지다. 편지지엔 세로줄이 구획돼 있고 여백엔 토끼 그림 등 장식도 보인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시나 편지를 써보낼 때 ‘시전지(詩箋紙)’라는 ‘개인 편지지’를 썼다. 취향에 맞는 문양 등을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은 뒤 글을 쓴 것이다. [성균관대 박물관 제공]

예로부터 ‘근역(槿域·무궁화가 피는 곳)’이라 불린 우리나라의 묵적(墨蹟)이란 뜻에서 ‘근묵(槿墨)’이란 제목을 달았다. 성균관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근묵』 유일본이 6년 간의 영인·번역·주해 작업 끝에 5권의 책으로 29일 출간됐다.

작품집은 ▶정몽주(1337~92) ▶정도전(1342~98) ▶성삼문(1418~56) 등 고려 말, 조선 전기 문인에서부터 ▶퇴계 이황(1501~70) ▶고산 윤선도(1587~1671) ▶추사 김정희(1786~1856)를 거쳐 ▶이준(1859~1907) 열사 ▶손병희(1861~1922) 등 애국지사에 이르기까지 1136명의 글 1편 씩을 담고 있다. 정조·순조 등 조선 역대 임금의 글에서부터 중인·승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계층을 망라한다.

『근묵』은 1981년에도 영인된 바 있지만, 당시엔 흑백필름으로 촬영해 일부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해상도가 떨어진다. 또 알아보기 힘든 초서를 정자체로 옮겨 놓은 탈초 작업만 하고 한글로 번역하지 않아 일부 전문가 외에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성균관대출판부가 내놓은 영인·번역본은 비싼 가격(5권 전질 100만원)이지만, 진본의 종이 질감과 얼룩까지 그대로 살리고 원작 크기 그대로 영인해 놓아 소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번역은 고전 전문가인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맡았다. 서예사적 가치로만 평가돼 온 『근묵』의 내용 연구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책에 담긴 내용과 가치는=조선시대 궁에서 담배농사도 지었다는 사실을 이번 서첩에서 알 수 있다. 22대 임금 정조가 창덕궁 내원에서 담배를 재배해 친척에게 선물로 보내며 편지글을 남긴 것. 애연가였던 정조는 궁에서 키운 담배 맛이 좋다며 자랑까지 보탰다. 추사 김정희는 부인을 잃은 지인을 위로하며 글을 보낸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을 삭이는 데는,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의 경치를 보고 강물 소리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추사 자신도 일찍이 부인을 잃은 경험이 있어 하는 조언이다.

김채식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사는 “책에 담긴 작품들은 지난 600년 간 문화사·사회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생활사의 보고일 뿐 아니라 고인들의 필적 진위를 가늠할 기준도 된다”고 평가했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수결(手決·오늘날 서명에 해당)이나 인장, 편지지 형식 등도 지난 600년 간의 ‘문자 문화’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근묵』 출간 기념으로 성균관대 박물관(관장 조선미)은 진본 전시회를 다음달 29일까지 연다. 무료. 02-760-1216~7.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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