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짓을 하지 말라
게으름을 피우며 건들거리지 말라
그릇된 견해에 따르지 말라
이 세상의 근심거리를 만들지 말라
- 『법구경』
걸식하러 나갔던 젊은 비구가 여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 화근이 되어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젊은 여인으로부터 ‘까까머리’라고 비하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격분한 젊은 비구는 수행자의 본분을 잃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 부처님께서 비구를 깨우치기 위해서 설하신 것이 이 『법구경』 167번 게송이다.
출가 수행자인 승려의 외형적인 특성을 삭발염의(削髮 染衣), 즉 ‘머리를 깎고 옷을 물들여 입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삭발이라는 말은 한역 율장에 의하면 체발(剃髮)이라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고, 제발(除髮), 락발(落髮)도 같은 뜻이다. 그리고 이는 범어 muana (혹은 mua, muaka)의 번역어임을 알 수 있다. 『법구경』 264偈에서의 제발(除髮)은 沙門을 말하고 393, 394의 결발(結髮), 혹은 식발(飾髮)은 바라문을 의미하며, 범어 ja의 번역 어 이다. 『숫타니파타』 249번 게송에서 삭발한 사문과 머리를 묶은 바라문을 특징짓는 용어가 체발(剃髮)과 결발(結髮)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제1장 7의 「천한 사람」에서도 걸식에 나선 석존을 보고, 바아라드바아자는 “체발(剃髮)자여 멈추라, 거짓 도인이여, 천한 자여 거기에 멈추라”라고 하는 데에서도 석존을 체발자(剃髮者)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야사의 출가나 라후라의 출가에 있어서도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입는 것이 곧 사문의 모습을 갖추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다.
사소한 행동도 쉽게 주목받아
석존의 전기에 의하면 출가 전 동서남북의 4문에서 노인과 병자와 시체와 체발한 출가 사문을 만났다고 한다.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태자가 날카로운 칼로 스스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으면서 모든 번뇌와 나쁜 습기(習氣)가 함께 끊어 지이다.”라고 서원 하는 석존의 출가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화엄경』 정행품에서도 역시 체발함과 동시에 번뇌의 제거를 발원한다. 그런가 하면, 『비니모경』이나 『대지도론』에서 체발은 교만심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미린다왕문경』에서는 머리의 장식이나 관리는 수행 생활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체발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따라서 체발은 석존에 의해서 창시된 것은 아니지만 출가 사문의 정형으로서 제도화 된 것만은 사실이다.
석존의 체발에 대해서 『율장』과 『본생경』에서는 서로 상반된 기록을 볼 수 있다. 먼저 『본생경』에서는 석존이 처음 체발하고 출가한 이래 더 이상 머리카락은 길지 않고 항상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같은 길이로 유지되었다고 하며(남전, 제28/138), 『사분율』 『마하승기율』등에서는 석존의 체발에 대하여 「잡건도품」에 기록하고 있다.
『사분율』 잡건도에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은, 당시 모든 제자들이 석존을 공경하는 까닭에 아무도 감히 삭발해 드리지 못하는데, 마침 우파리라고 하는 한 어린아이가 부모의 지시를 받으면서 부처님 머리를 깎아 드리고 제4선정을 증득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때 아난존자는 새 그릇에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받아 담고 부처님의 지시에 의해서 머리카락탑(髮塔)을 부처님 생전에 세웠다고 한다(22/957). 그리고 전장에 나아가는 왕자에게 부처님 머리카락을 지니게 하니 모든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며, 성도 초에 만난 두 상인에게도 꿀물 공양을 받으신 뒤에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주어서 지니게 하였다고 한다. 『마하승기율』에서는 부처님은 4월에 한 번 체발을 하시는데 그때는 재가자가 여러 가지 떡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공양을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체발의 시기에 대해서는 두 달에 한 번 손가락 두마디정도(사분율), 네 달에 한 번(승기율), 길이가 2촌에 이르면(십송율), 반월에 한번(오분율) 체발하라고 하고 있다.
삭발은 교만 없애는 수행 과정
체발하는 방법과 장소에 대해서는 『오분율』에 의하면 한 곳에서 하고, 노약자를 위해서는 따듯한 방에서 하되 바쁜 사람이 먼저 하고 체발한 뒤에는 깨끗이 청소하고 머리카락은 물, 불, 땅에 묻어 처리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체발사가 없을 경우에는 비구 스스로 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음을 보아서 전문 체발사가 있은 듯하며, 비구니는 모여서 체발하라고 하고 있다. 『사분율행사초』「사미별행편」에는 사미가 수계할 때, 머리카락을 세 가닥 내지 다섯 가닥 남겨서 화상 앞에 나아가 그것을 제거함으로서 완전한 삭발을 하고 가사를 받는 절차를 설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경전이나 율장에서 체발은 사문의 특징이며 결발은 바라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문이 체발하는 뜻은 번뇌와 교만심을 없애고 수도에 장애 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특별하고 어려운 삭발을 한 수행자는 모든 교만심과 번뇌의 습기를 제거해 버린 숭고함과 맑음의 상징을 삭발한 모습에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삭발한 수행자가 천박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에는 가차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부처님은 경계하신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삭발한 사문의 모습은 바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처절하게 걸어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971호 [2008년 10월 28일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