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 100억 달러 돌파를 보도한 1977년 12월 23일자 조선일보.
-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 불을 돌파했습니다."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977년 12월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였다. 온 나라가 흥분에 빠졌다. 100억 달러! 쉽게 믿기지 않을 숫자였다.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던 1962년의 수출액은 5000만 달러였고, 1964년에야 1억 달러를 달성했었다. 10억 달러를 넘은 것은 1970년의 일이었다.
100억 달러 돌파는 '한강의 기적'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는 상징과도 같았지만 대통령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국민 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소산이며, 일하고 또 일하면서 살아 온 우리 세대의 땀에 젖은 발자취로 빛날 것입니다." 박정희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10억 불에서 100억 불이 되는 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렸다. 우리는 불과 7년이 걸렸다.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 새로운 각오와 의욕과 자신을 가지고 힘차게 새 전진을 다짐하자.'
1970년대 한국의 국가적 목표는 "10월 유신, 100억 불 수출, 1000불 소득"이란 정부의 구호로 표현됐다. 일부에선 공허한 선전이라고 여겼으나 수출과 1인당 국민소득 모두 목표보다 4년이 앞당겨진 1977년에 성취됐다. 오일쇼크와 통상 마찰의 장벽을 넘어섰고, 중동 진출과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철강·전자·선박·금속·기계 제품의 수출을 늘린 결과였다. 그해 6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한국인들이 몰려온다'는 커버스토리를 실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 1977년 12월 광화문 네거리 대형 아치에 붙은‘100억불 수출의 날’표지판. /조선일보 DB
- 수출 제일주의에는 빛과 그늘이 함께 존재했다. 산업간·지역간 격차와 자원 배분의 왜곡, 상대적 저임금, 특정 기업의 금융 혜택 같은 것들은 오랫동안 한국 경제의 부정적인 요소들로 남았다. 고성장이 없었더라면 불거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문제들이었다. 박정희는 그날 장충체육관의 연설에서 "80년대에는 꼭 고도산업사회를 건설하자"면서 이런 당부를 잊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도 생활에 다소 여유가 생겼다 해서 행여 무절제하고 낭비하는 생활,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에 흐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07년 한국의 총수출액은 3714억 달러였다.
-
- 1977년 12월 2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0억불 수출의 날 기념식. '박정희 대통령 1977년 동정' 영상물의 일부분. /유석재 기자
'참고실 > 역사의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38] 12·12 쿠데타 (0) | 2008.07.26 |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37] 10.26 사태 (0) | 2008.07.25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35] 유신체제의 위기 (0) | 2008.07.24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34] 통일벼와 식량 자급 (0) | 2008.07.24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33) 육영수 여사 피살 (0) | 2008.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