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야단법석] 화장 서약서

淸潭 2008. 3. 2. 22:38

화장 서약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관습(慣習)과 문화는 개인의 힘으로 한 순간에 고치기 어려운 문제로 때로는 법률(法律)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커다란 힘으로 사회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관습이라는 것이 꼭 진리를 깨달은 분들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이 판단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지역의 환경과 사상에 의해 이루어진 경향이 짙으므로 보다 향상된 미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흐르는 물처럼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의식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너무 개인의 삶과 업적에 집착하지 말고 인생이라는 것이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서 잠깐 다녀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되도록 욕망에서 벗어나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멋지게 살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조용히 후회 없이 떠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상제의식(喪祭義式)에 있어서는 승속(僧俗)에 상관없이 망인(亡人)의 생전의 신념이나 종교적 이상보다는 상주(喪主)의 사회적 위치에 따른 여건에 맞추게 되는데 상주 또한 개인적 의지보다는 보편적인 사회관습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후에 자신의 바람을 보다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 앞에 발표하고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화장 서약서(火葬誓約書)를 대중과 함께 작성하고 사회운동으로 확대시켜나가는 것 또한 사후에 우리의 몸이 꼭 화장법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나라의 장묘문화(葬墓文化)가 화장이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만천하에 명백히 밝히고자 함입니다.
제가 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의 소임을 맞고 있다 보니 우리 불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화장법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회의 회원을 중심으로 서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묘지에 잠식되어가는 국토를 걱정하셨을 겁니다. 그 많은 묘지 중에 무연고(無緣故) 묘지가 40%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해마다 여의도 넓이의 땅이 묘지화되는 것을 온 국민이 깊이 인식해야 할 때가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국토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서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있어야겠습니다.
화장문화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살펴볼 때 불교의 영향권인 일본이 99%, 태국이 90%의 화장률로 높은 편이며 유럽의 스위스 67%, 영국 60%, 스웨덴 65 수중 중생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행)이나 임장(林葬; 숲 속의 중생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행) 천장(遷葬; 조류에게 육신을 보시하는 행)을 하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화장으로 적멸에 드셨습니다.
수행력이 부족한 일반인들의 화장이 성현들께서 스스로 몸에서 빛을 내어서 다비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법신이나 육신을 깨끗이 마무리하여서 사리와 재로 이 세상의 마지막 형상으로 남긴다는 점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현을 믿고 따르는 것은 어느 한 부분만 따르는 것이 아니요,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따르는 것이니 불자님들께서는 특히 화장에 임하여 줄 것을 당부 말씀 드립니다.
제가 며칠 전에도 강남의 모 사찰에서 설법을 하고 화장 서약서를 보여드리며 동참을 권하고 도량에 잠시 서 있으니 평생을 절에 다니셨다는 노보살님께서 가만히 다가오시어 하시는 말씀이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저도 화장을 하고 싶은데 혹시 뜨겁지 않을까요? 또 화장을 하면 두 번 죽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아닌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우리 교단의 교육 현실을 절감하면서 높은 장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로 배우지 못한 이 노보살님보다 정성껏 가르치지 않은 우리 스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면서 “노보살님, 고기나 생선을 불에 구워서 잡수어 보셨지요? 그 때 고기와 죽은 생선이 뜨겁다면서 저절로 뒤집히는 것 보았습니까?” 하니 노보살님께서는 “아이고 그렇네요. 스님 공연히 걱정했습니다.” 하시더군요.
그래도 한마디 더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신을 땅에 묻으면 시신이 안 썩어서 다시 살아나옵니까?” 하니 “죽으면 썩기 마련이지요.” 하시기에 제가 “땅 속에서 썩는 것은 괜찮고 불에 타는 것만 두 번씩 죽는다는 것은 억지입니다.” 하면서 “죽은 사람이 불이 뜨거운 줄 알아서 싫어한다면 땅 속에 묻혀도 갑갑하고 흙이 무겁다고 느끼고 꺼내 달라고 해야 옳습니다. 육신이란 영혼이 떠나면 주인 떠난 빈 집과 같아서 언제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드렸습니다.
그제서야 그 노보살께서는 “스님, 그럼 저도 서약서에 도장 찍겠습니다.” 하시면서 숙제를 다 마친 어린아이처럼 밝고 가벼운 모습으로 법당으로 가셨습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영혼과 육신이 함께 붙어있기에 손 끝의 가시가 큰 고통이지 영혼이 떠나고 나면 가슴의 창도 아무 고통이 없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진리를 알기에 사후에 장기기증도 권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임종을 맞으신 분은 평생 만물의 은혜로 지탱한 이 몸을 좋은 데 베풀고 공덕 짓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가는 것이 가장 숭고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세의 먼 길을 가는 것은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 영혼이 가는 것이지 육신이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생은 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는 뜻)의 원리를 벗어나지 못하니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의 만물은 항상 변하여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을 깨달아서 자신에 대한 애착도 끊고 후대도 위하는 마음으로 화장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서고 죽어서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세상을 넓게 누비게 되는 것이지 땅을 넓게 차지했다고 넓게 사는 것이 아니요, 생전에 선한 업을 잘 지어서 영혼이 좋은 천상세계에 나야 사후에 좋은 세계에 있는 것이지 묘지가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진 곳에 묻힌다고 해도 그것이 사후에 좋은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금 당부의 말씀을 드리니 아직 용기가 안 나서 화장 서약서를 작성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참고하시어 부디 무량한 공덕을 지을 수 있는 화장문화의 정착을 위하여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 아미타불
                
- 화장서약운동 자원홍보요원법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