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야단법석] 위정자의 보살행

淸潭 2008. 3. 2. 22:40

위정자의 보살행

 

저 푸른 산은 붓 한번 대지 않았어도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며, 흐르는 계곡 물은 악기 하나 더하지 않아도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입니까? 대자연의 천연(天然)스러운 경계가 그대로 멋의 극치요, 우리의 본래 성품입니다.
이 아름다움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착, 애착, 아집으로 찌든 중생병(衆生病) 때문에 본연의 멋을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 욕망의 덫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걸려들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여기는 독선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는 고통의 가시덩굴 속을 헤매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고통의 삶 속에서도 고통의 근본과 자신의 존재, 존재의 실상에 대해서는 고뇌하지 않고 눈병은 고치지 않고 허공의 꽃만 탓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자신 속에 내재된 지혜의 불꽃과 덕성의 향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등한시하면서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남 앞에 서서 대중을 이끌어 가려고만 하는 오만한 생각은 장님이 길잡이를 하려고 하는 것처럼 위태롭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누가 설하고, 누가 듣고,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함께 의논하고, 함께 고쳐가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싶기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이 아무리 급하게 변화된다고 자신을 잃고 남의 정신에 놀아나며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기쁨보다는 오욕(五欲; 재물욕, 이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을 찾아서 채워가는 기쁨에만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나의 삶이 오욕의 불을 찾아다니다 오욕에 휩싸이는 불나방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세계가 청정하고 국토가 청정하려면 우선 우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해져야 하고 세계인이 편하고 국민이 편하기 위해서도 우선 우리 각자의 마음이 편안해져야 합니다. 나 자신은 불결하고 불안하면서 남을 청정 편안하게 해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청록의 계절에 당(黨)의 지도부에 계신 거사님들께서 제가 머물고 있는 산중까지 몇 번씩 찾아오셔서 “어떻게 해야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되며 신뢰받는 정당이 될 수 있는지 당 지도부 연수회에 꼭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하시기에 몇 번이나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저의 단문천식(短文淺識)한 것만 내세워 초청에 응하지 않는 것도 세상의 인정과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오늘에서야 만나뵙게 되었습니다만, 저는 정치학 분야에는 배운 바도 아는 바도 없는지라 개인의 자격으로는 별로 드릴 말씀이 없고, 단지 출가 승려로서 부처님법에 의지하여 본생경(本生經)에서 올바른 왕이 되는 길에 대하여 시왕법(十王法)을 설하신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오늘날의 위정자는 예전의 왕처럼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위치는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그 역할을 분담하여 나라와 국민을 부강하고 편안하게 발전시키려는 목적은 같으므로 이제부터 말씀드리는 왕에 대한 가르침을 위정자에 대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하리라 생각합니다.
시왕법에서 왕이 행할 열 가지란,
“첫째는 보시(布施)이니 왕은 재물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한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지계(持戒)이니 왕은 스스로 오계(五戒; 살생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성에 관해서 문란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술을 마시지 말 것)를 지켜 선업을 쌓고 지혜를 닦아 자비롭고 청정한 존재로서 국민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영사(永捨)이니 왕은 국민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개인적인 향락과 권력을 떠나고 때로는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희생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넷째는 정직(正直)이니 왕은 국민을 속이지 않으며 소신을 가지고 의무를 당당히 수행하며 자신의 업적을 진실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유화(柔和)이니 왕은 항상 친절하고 온화하며 부드러운 태도로 국민을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여섯째는 고행(苦行)이니 왕은 스스로 선업(善業)을 지으며 악업(惡業)을 짓지 않기 위해서 행하기 어려운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며,
일곱째는 무분(無忿)이니 왕은 국민 모두에게 차별 없이 분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여덟째는 무해(無害)이니 왕은 국민을 해쳐서는 안 되며 국민이 재난과 재해를 당하지 않게 국민을 지킨다는 것이며,
아홉째는 인욕(忍辱)이니 왕은 참기 어려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능히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며,
열째는 불상위(不相違)니 왕은 국민의 뜻을 거슬리지 말아야 하며 항상 국민의 화합을 주도하고 민의(民意)에 의하여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천이 불가능할 것 같은 아득함을 느낄 수도 있는 가르침이지만 국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확실한 의지만 있다면 우선 힘이 되는 대로 실천하기 쉬운 가르침부터 차례로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모두 다 이루어서 온 국민에게 존경받고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위정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평등한 인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보면 권력도 재물도 없이 살아가는 힘 없는 개인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그 개인의 삶과 좁은 영역에 피해를 주지만 힘있는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개인의 삶은 물론 그 힘이 미치는 넓은 영역만큼 넓은 분야에 피해를 주어서 그 병폐가 실로 큽니다.
힘이란 결국 세상을 살리는 양약도 될 수 있지만 세상을 죽이는 독약도 되는 것입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권력이라는 것도 칼과 같아서 가진 자에 따라서 의사의 칼처럼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강도의 칼처럼 생명을 죽일 수도 있으니 세상의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리에 있는 위정자들은 오직 스스로 피나는 수행을 하여야만 그 결과 모든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위대한 위정자의 삶이라는 것은 성인 군자의 삶과 같이 남을 위한 숭고한 정신을 실천하는 삶이니 존경받는 위정자가 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야말로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처럼 희유한 일입니다.
저 중국 역사에 최고의 성군으로 뽑히는 순치황제(順治皇帝)라는 분이 18년을 황제로 지내다 출가를 하면서 지은 시가 있는데 일부를 소개하자면

“곳곳이 총림(叢林; 승려들이 수행하는 곳)이요,
쌓인 것이 밥이어니
대장부 어데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가사(袈裟; 승복)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랴.

이 내 몸 중원천하(中原天下) 황제노릇 하건마는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항상 괴로워
인간의 백년살이 삼만 육천 날이
승가(僧家)의 한가로운 반 나절에 미칠손가.
(중략)
18년 지내간 일 자유라곤 없었도다.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더냐
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만 가지 근심걱정 관여할 바 없도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중원을 호령하던 황제조차도 늘 자신의 삶보다 백성의 삶을 걱정해야 했던 고통과 고뇌의 연속이었기에 훗날 출가하여 물긷고 나무하고 마당을 쓸면서도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비단 옷에 황금관을 쓰고 산해진미 진수성찬(山海珍味 珍羞盛饌)을 근심에 싸여서 먹기보다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거친 나물밥에 만족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도를 닦으며 생을 마쳤으니 초지일관(初志一貫)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때로는 칼끝에 발라진 꿀을 혀로 핥는 것과 같이 자신의 부와 명예만을 탐하는 위정자의 참담한 모습도 접하게 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위정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으로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왕에 위정자의 길을 가려면 신뢰받는 공인이 되어서 그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오늘날 정부에서는 사회 전반적인 개혁을 주도하며 언론에는 계속 제도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등을 외치지만 그 성과에 대하여 국민들의 평가는 천차만별입니다.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위정자의 뜻이 아무리 훌륭해도 제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결실을 맺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아 서로의 공존을 인정할 때 대립과 마찰은 사라지고 화합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신라시대 문무왕이 성을 쌓느라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때 의상 스님께서 왕에게 직언하시길 “왕의 다스림이 밝으면 비록 풀 언덕에다 땅금을 긋고서 성으로 삼아도 백성은 이를 넘지 아니할 것이요, 왕의 다스림이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을 쌓더라도 재앙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우산이 필요한 사정인데 왕은 부채를 나눠줄 연구를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러므로 위정자는 각자 지혜로워지기 위해서 항상 노력해야겠습니다.
끝으로 이 자리를 통해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정자들을 신뢰하는 마음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잘 안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는 정책이 세워져도 믿지 않으므로 실천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므로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위정자들을 시급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信賴回復)할 수 있도록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병은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알면 고칠 수 있습니다. 부디 국민들이 믿고 희망을 걸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하시길 부처님 전에 축원해 올리겠습니다. 바른 정치 속에 국민의 행복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 정당 지도부연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