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야단법석] 생명 나눔의 실천

淸潭 2008. 3. 2. 22:37

생명 나눔의 실천

 

부처님께서 범망경(梵網經)에 이르시기를 “만일 불자가 일체 병인(病人)을 보거든 항상 공양하되 부처님께 하듯 할 것이니 여덟 복전 가운데 병든 이를 간호하는 것이 제일 복전이 되느니라. 만일 부모나 스승이나 스님이나 제자가 병이 들어 팔다리가 온전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병으로 고뇌하거든 이를 다 공양하여 낫게 해야 하느니라(不看病苦戒).”라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팔복전(八福田)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삼보(불·법·승)를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요, 셋째는 병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요, 넷째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길 옆에 샘물을 파서 대중에게 베푸는 것이요, 여섯째는 개울에 다리를 놓아서 사람들이 편하게 건너게 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험한 길을 고르게 닦아 다른 사람들이 잘 다니도록 해주는 것이요, 여덟째는 법회를 열어서 차별없이 법문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숭상하는 바로서 보살계를 잘 지켜 나가는 불자들은 예로부터 간병의 공덕을 많이 지어왔습니다. 90년대 초 세계는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일컫는 장기이식술(臟器移植術)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인간의 병고와 생명에 새로운 희망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교계에서도 장기기증단체를 설립하여 그 이름을 생명공양실천본부(生命供養實踐本部)라 칭하고 대중의 뜻을 받들어 여러 모로 부족한 제가 이사장 소임을 맞고 그 뜻을 같이하는 몇 분의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중심이 되어 여러 해를 지내오면서 오늘날에는 교계를 대표하는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회로 명칭을 바꾸어 거듭 태어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장기기증’이라는 말 자체도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초창기에 몇 분 안 되는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전국의 승가대학과 선원을 낱낱이 찾아다니면서 회원가입을 권하며 헌혈 및 장기기증 서약을 받고 기부금을 모으러 다니던 일과 젊은 계층이 모이는 각종 단체와 법회를 찾아다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법회, 음악회 등을 열었고 그럴 때마다 격려하여 주시고 도와주시던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본 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서 그 활동의 영역에도 변화가 왔으니 전문적인 면으로 방향을 돌려 학술회와 출판 수련회를 통해서 홍보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높였고, 전국지회도 설립되었고, 재정적으로도 많이 탄탄해져서 영세환자를 위한 수술비 지원 및 장기이식에 대한 업무대행은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확충으로 무료간병 및 대국민을 상대로 한 재난구호활동도 활발히 실행하여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국토가 묘지로 잠식되어 가는 심각한 상황에서 장묘문화(葬墓文化)를 화장문화(火葬文化)로 이끌어 가는 데도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공덕이 회원 여러분들의 선행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보배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탑은 처음에 단순히 장기기증본부로 시작해서 이제는 모든 중생이 병고로부터 해탈하여 건강한 몸으로 정진하게 하며, 편안한 임종과 사후 화장을 통한 인간 삶 전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보배탑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상으로 본 회의 발전 상황과 회원님들께 인사의 말씀을 거두고 간병의 공덕에 대하여 현장 스님(玄    法師)의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현장 스님께서는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을 배워서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조국(중국)에 없는 반야부경전을 구하여 번역하겠다는 원을 세우시고 제자 40명과 중앙아시아와 사막을 거쳐 인도로 가시던 중 계빈국에 다다르자 오직 스님 혼자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스님께서 폐허가 다 된 고찰에서 묵게 되었는데 방에서 신음소리가 나서 가보시니 문둥병을 심하게 앓고 계신 노비구가 계셨습니다.
현장 스님께서 홀로 계신 사연을 여쭈니 노비구께서는 “이 절에는 본래 대중스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내가 문둥병을 앓게 되자 한 스님 두 스님 모두 다 떠나시고 병든 저만 남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현장 스님께서는 목숨을 건 구법(求法)의 길에 나서긴 했지만 병이 깊으신 노비구를 외면하고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직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입으로 상처의 고름을 일일이 빨아내면서 정성껏 간병을 하셨습니다. 얼마 후 노비구는 문둥병이 완쾌되시자 현장 스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범본 반야심경(般若心經) 한 권을 선물하셨는데 훗날 이 경을 노비구께서 주셨다 하여 신승전수범본심경(神僧傳授梵本心經)이라고도 합니다.
현장 스님은 노비구와 헤어진 후 액난이 있을 때마다 반야심경을 외워 난을 이겨나가는 가피를 입으시게 되는데 한 예로 인도 항하(恒河; 갠지즈 강)를 통과할 무렵에 생긴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장 스님께서 강 가에 다다르니 그 곳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스님을 줄로 묶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너무도 억울해서 사람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왜 이렇게 결박하고 가두는가?” 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곳 사람들은 동정 어린 눈치로 “항하의 제물로 바치려고 하오.”라고 대답하면서 설명하기를 “이 곳 항하의 수신(水神)에게 해마다 제사를 올리며 제물로 사람을 한 명씩 바치는데 마침 오늘이 그 날이고 우리 생각에 같은 마을 사람을 강에 빠뜨려 죽이는 것보다는 모르는 외국인을 죽이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져서 스님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현장 스님은 지난날을 생각해 보니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이곳 인도 땅까지 와서 범본 경전 한 권도 구해보지 못하고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신세가 된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듯 어쩔 수 없는 신세가 된지라 죽음을 앞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사정해서 시간을 조금 얻어 계빈국 노비구에게 배운 반야심경을 큰 소리로 외웠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반야심경을 외우자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천지가 흔들리며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물이 뒤집히고 모래가 수십 리 이상 치솟아 오르고 천둥과 번개가 사납게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얼른 현장 스님을 풀어드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반야심경을 간절히 외운 공덕으로 현장 스님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서 무사히 나란타 대학에 도착하여 범본 경전을 연구하시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평생을 역경사업에 바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제일 먼저 반야심경을 번역하시어 널리 전하셨으며 일체 반야부 경전을 더욱 소중히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사연은 현장 스님께서 귀국길에 계빈국 노비구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일부러 찾아가셨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절이 있었던 그 자리도 흔적이 없고 노비구의 행방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훗날 현장 스님께서는 그 때를 회상하시며 “그 때 계빈국에서 만난 노비구는 관세음보살님이셨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중기에 보조 스님(普照國師)께서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지으셨는데 이 글에서 간병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병든 사람이 있거든 마땅히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켜주고 간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율섭(律攝)에는 “만일 병인이 극빈하여 약을 쓸 도리가 없다면 스승과 선배들이 재물을 베풀어서 치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신도 등에게 구하든지 사중(寺中)의 재물을 팔아서 병인을 간호하라.”고까지 간절히 이르셨습니다.
만일 병인을 보고도 구호하지 않으면 자심(慈心)을 잃어서 자비하고 공경하는 두 가지 복전(悲恭二田)을 잃는 것이며 혹 자신에게 병고가 있어도 간호인이 없는 과보를 만나게 되니 늘 싫어함 없이 간병의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제일의 복전을 일구는 간병에 대하여 당의 현수 스님(賢首法師)께서는 “보살은 대비(大悲)로써 체(體)를 삼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용(用)을 삼는데 어찌 병을 보고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중생의 몸이라는 것이 사대(四大)가 거짓으로 뭉쳐진 것이기에 늘 크고 작은 병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병고를 나와 남에 구별 없이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따라서 보다 큰 지혜와 복덕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병고는 탐욕을 제하는 약으로 받아들이고 이 몸이 허망함을 관하여 정진할 것이며, 남의 병고는 복의 씨앗을 가꿀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정성껏 간호해야겠습니다.
대승경전(大乘經典)인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보면 과거세에 유리광소여래(琉璃光昭如來)가 계셨습니다. 여래께서 멸도 후 일장 스님(日藏比丘)께서 출현하시어 여러 대중에게 대승의 평등대혜(平等大慧)를 설하셨습니다.
그 때 성수광 장자가 아우와 함께 설법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과실과 좋은 약으로 스님과 대중에게 공양을 바치고 대보리심(大菩提心)을 발하였는데, 그 장자가 지금의 약왕보살님이시며 그 아우는 약상보살님이시니 약왕보살님께서는 항상 대비(大悲)의 약으로 일체 중생의 혹업(惑業)을 치료하시고 즐거움을 주시는 데 자재를 얻으셨다고 합니다.
오늘 장기기증에 동참하신 분들과 뜻을 같이 하시어 그간 다방면의 사업에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께 다시금 머리 숙여 감사 드리며 끝으로 다 같이 약사여래부처님의 서원을 봉독하시겠습니다.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온갖 병을 다 없애고 신심이 안락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룩하겠습니다.(除一切衆生病令身心安樂證得無上菩提之願)”
나무 약사유리광여래불
              
- 생명나눔실천회 자원홍보요원 연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