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정기 품은 산에 철탑을 박다니…” | |||||||||||
서산 가야산 송전탑 공사 반대하는 선광 스님
그는 오직 참선만 해온 선승이다. 국내 최고의 목조 불상과 목조 건물 등 보물이 즐비하고, 근대 선(禪)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가 깨달은 뒤 처음으로 대중들을 상대로 법회를 열었던 가야산 개심사가 바로 그의 수행 터이자 삶터다. 선광 스님은 개심사 뒤 산중턱에 보현선원을 지어 25년 간 경허 선풍을 되살리는 일에만 매진해왔다. 그는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서울 화계사 주지)과는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동자승 때부터 함께 뒹군 도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경 스님이 선방을 나가 환경운동에 나서자, ‘제발 속히 선방으로 돌아오라’고 채근하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억장이 무너진다”며 가슴을 부여잡고 선방을 나와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그가 10명의 선승들과 선방에서 동안거를 나던 지난해 12월이었다. 선승들은 식후엔 선방 뒤쪽 오솔길을 따라 400~500미터 거리인 보현봉까지 포행(걸으며 하는 수행)했다. 그런 어느 날 보현봉 정상에 오른 그와 도반들은 망부석처럼 굳어져버렸다. 처녀림으로 가득차 있던 정상 1천여평이 민둥산으로 변하고,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한국전력이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공사를 했던 것이었다. 또 그즈음 선원 아래 거북이 모양의 산머리도 송전탑을 세우기 위한 벌목으로 고목들이 깎여 나신이 드러났다. “처음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더군요. 백제, 신라시대부터 고승들이 산의 혈을 보고 터를 잡은 절이 있는 바로 뒷산 머리에 철탑을 세우다니요. 영산의 정기를 끊겠다고 일제가 정상에 몰래 심은 철심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제의 철심보다 백배, 천배 더 큰 철탑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산 혈과 맥에 꽃다니요.” 백제 시대에 사찰 108개 곳곳이 유적지 벌목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당진화력발전소의 전력을 타지로 공급하는 송전탑 공사를 당진군이 거부하면서 송전탑이 서산의 가야산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충남도가 내포문화권을 개발한다면서 마애삼존불 옆과 한창 복원 공사 때문에 땅이 파헤쳐진 보원사 발굴 지역 한가운데로 도로를 낼 계획으로 깃발을 꽂아두었다. “가야산 일대는 백제시대부터 108개의 사찰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산에 들어가 보면 발을 딛는 곳마다 유적지가 아닌 곳이 없지요. 경주 남산이 신라문화의 보고라면 가야산은 백제 문화의 생생한 현장이지요. 보원사지도 10년 계획으로 발굴된 지 이제 1년 밖에 안됐어요. 10분 먼저 가자고 천혜의 계곡을 파헤쳐 도로를 뚫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발굴 중인 사적지 가운데로 도로를 뚫고, 국내 최고의 보물인 마애삼존불 옆에서 터널 공사를 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가 농성을 시작하자 전국에서 도반들이 몰려오고 있다. 오는 31일엔 이곳 보원사지에서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가야산 살리기 문화한마당’도 연다. 뭉개진 산을 가리키다 ‘가야산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며 가슴을 부여잡던 스님이 선객답게 호탕하게 웃으며 던진 농담 같은 진담이 울려 퍼졌다. “가야산을 지키다가 ‘국립 선방’(감옥)에 가면 영광 아니겠소.” 서산 가야산/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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