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古典散文 271

나의 이름은(3)

나의 이름은(3) 위는 송병순이 이병철(李柄喆)에게 지어준 글이다. 이병철은 자가 희언(希彥)으로, 생몰연대 및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작자의 형 송병선(宋秉璿)의 『연재집(淵齋集)』 연보를 보면 송병선의 자질(子姪) 혹은 문인(門人)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송병선을 중심으로 한 인맥 속에서 작자와도 비교적 가까운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자는 먼저, 침묵을 극단적으로 지향하는 설선(薛瑄, 1389~1464)의 말을 제시한다. 그러나 곧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불가(佛家)의 적멸(寂滅)에 가깝고, 말해야 할 때는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야 한다며 설선의 말을 비판한다. 작자가 생각하는, 말과 침묵을 시의적절하게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대상은 하늘이다. 하늘은 평소에는 고요하지만 때..

목숨과 바꾼 비단

목숨과 바꾼 비단 1828년(순조28)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의관(醫官) 및 비장(裨將)으로 북경에 다녀온 사람 -이름이 남아 있지 않다.- 이 기록한 『부연일기(赴燕日氣)』의 「노정기(路程記)」에 따르면, 경성(京城)에서 북경까지의 거리는 모두 3069리, 약 두 달이 걸려야 갈 수 있었다. 이 먼 길을 해마다 몇 차례씩 사신이 오고 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중국의 신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파견하는 동지사(冬至使)였다. 동지사는 10월 중하순 경 서울을 떠나 12월 중하순 경 북경에 도착한다. 또한 때는 양력으로 11월 하순 혹은 12월 초순부터 1월 중하순까지로, 연중 가장 추운 시기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려면 이처럼 길고 험난한 일정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관..

생명이 오는 자리에서

생명이 오는 자리에서 이 시는 동포(東圃) 김시민(金時敏, 1681~1747)이 1739년 세밑거리에 쓴 작품이다. 수련(首聯)을 보면 작가는 겨울마다 기침으로 고생을 해왔던 모양이다. 그날 밤도 기침 때문에 잠을 깨고 말았다. 깨고 난 뒤 잠이 안 와 한 잔 술로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기침 때문에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억지 잠을 청할 수 없어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한 자 넘게 눈이 내렸다. 그런데 눈이 한 자 넘게 쌓인 걸 알자마자 시인은 불현듯 감실 매화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말도 발을 동동 구르는 지독한 추위 속에, 천진한 아이의 세상모르는 코골이를 뒤로 한 채, 시인은 매화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등불을 찾아 불을 밝힌 뒤 행여 한기(寒氣)라도 스며들까 감실 문짝에 눈을 붙인다. 마지막 구의 ‘한..

근본적인 대책 강구

근본적인 대책 강구 이곡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中父), 호는 가정(稼亭)이다. 한산의 향리(鄕吏)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332년 정동행성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333년 회시(會試)를 거쳐 전시(殿試)에 제2갑으로 급제함으로써 원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1448년 고려로 돌아왔으나 1년여 만에 운명하였다. 가정은 『가정집(稼亭集)』 20권을 남겼는데, 이 글은 권1 잡저(雜著)에 수록되었으며 『동문선』 권105에도 실렸다. 가정의 글에는 민초들의 고된 삶을 다룬 내용이 제법 많다. 홍수[水]와 가뭄[旱]을 다룬 「원수한」도 그중 하나다. 농경사회에서 농사의 풍흉(豐凶)은 국가 경제의 성쇠(盛衰)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고, 기후는 농사의 풍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위정자들이 기..

이름값을 하려면

이름값을 하려면 최근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에 ‘캐슬’이니 ‘팰리스’니 ‘파크’니 하는 어휘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우편물을 보낼 때 한국에 성(城), 궁전, 공원이 많다고 착각한다는 말이 있다. 또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해지는 건 모두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모두 웃자고 하는 농담이겠지만 마냥 웃고 넘기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몇 해 전, 대기업에서 지은 신축 아파트에 1년 정도 전세로 살다 나온 적이 있다.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 늘 수위를 다투는 곳 중 하나였다. 새집이라 살기 편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몇 개월 사이 말썽을 부리는 곳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고장나서 찬물을 써야 하는 일도 잦았고, 붙박이장 속 경첩..

미니멀리즘은 소소함을 택하는 대범함이다

미니멀리즘은 소소함을 택하는 대범함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엮은 『청성잡기』에는 우리가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질언(質言)」에 실린 1~3행의 짧은 격언들은 건강하고 견고한 삶에 대한 매우 실용적인 지침이 되어준다.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선명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우리고전에서 찾은 이러한 삶의 철학과 지침은 오늘날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일맥상통한다. 성대중은 음식·의복·수레·거처는 하급(下級)으로 하고, 덕행·언어·문학·정치는 상급(上級)으로 하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거꾸로 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차, 집에 대해서는 어떡하든 상급으로 하고 싶어 하..

선비가 고백하는 노동의 즐거움

선비가 고백하는 노동의 즐거움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방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폐포파립(弊袍破笠)이나마 의관을 정제하고, 대개는 꿇어앉아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비롯한 수많은 유교 전적을 얼음에 박 밀듯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외는 것이 날마다 그의 과업이다. 이런 친구들은 집안 살림살이와는 아랑곳없다. 가다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것도, 안으로서 그 부인이 전당을 잡히든지 빚을 내든지 이웃에서 꾸어 오든지 하여 겨우 연명이나 하는 것이다. 이희승 선생의 ‘딸깍발이’ 중 한 대목이다. 지난 시대 선비들에게 생계와 일에 서툴다는 것은 은근한 자랑이고 칭찬이었다. 겉으로야 재주 없고 물정 모르는 오활한 사람이라고 겸손을 떨며 손사래를 치지만 속으로는 시속의 이끗을 멀리하는 문사로의 삶에 자부심이 ..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정호가 함경도 유배 중에 지은 시다. 음력 칠월 칠석이면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이곳은 북쪽 지방이라 그런지 서늘하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는 걸 천하가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라고 했던가. 오동잎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실감한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유배객 신세다. 마음이 착잡하니 잠이 올 리 없다. 정호는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현손이다. 그는 1710년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다. 당론을 일삼는다는 죄목이었다. 한때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한 그는 죄인의 신분으로 다시 함경도 땅을 밟았다. 당시 그의 나이 63세였다. 유배생활은 한두 해 만에 끝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춘소 신최(申最, 1619-1658)는 조선 중기의 저명한 문인이었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손자이자 선조(宣祖)의 부마(駙馬)였던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 1588-1644)의 아들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던 그는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장래가 촉망되던 인물이었다. 그는 30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순조롭게 관료 생활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큰형 신면(申冕, 1607-1652)이 김자점(金自點)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비극적 최후를 맞은 이후로는 가문이 급격히 몰락하였다. 이에 따라 신최 역시 주로 외직(外職)을 전전하며 낭천(지금의 강원도 화천) 현감(狼川縣監), 함경도사(咸鏡都事) 등을 지내고 40세의 젊은 나..

고통에는 뜻이 있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 선한 사람이든 못된 인간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남자든 여자든 모든 인생은 어느 때 반드시 고난과 맞닥뜨린다. 고난의 크기는 제각기 다를지언정 누구도 예외는 없다. 고난이 찾아오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회피하는 사람도 있고, 맞서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슬피 운다. 왜 인간은 고난을 겪어야 할까? 고난이 주는 뜻은 무엇일까? 여기에 한 편의 우화가 있다. 깊은 산 작은 못에 한 마리 괴물이 살고 있었다. 괴물은 굼실굼실 느릿느릿했다. 날개가 없었지만 날 수는 있었고, 발굽이 없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작은 못 안에 숨어 지냈지만 특이한 몸과 굼뜬 행동 때문에 툭하면 까치와 다람쥐가 놀려댔다. 괴물은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