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고백, 지독한 보수 고집하는 이유는 아버지?
80년대에는 당대 최고의 작가로, 90년대에는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2000년대에는 누리꾼들의 비난으로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문열 작가가 ‘내가 보수의 편에 선 이유’, ‘세상과의 논쟁 속에서 상처받은 영혼’, ‘부모에 대한 잊고 싶은 기억’들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이문열 작가는 지난 27일 EBS TV 에 출연해, 그가 세상과의 단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를 고백했다.
그가 온갖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지독한 보수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시작은 오랜 시간동안 그의 마음속에 묻어놓았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전개된다.
이 작가는 “어머니에게 연좌제는 너무 혹독했고, 어머니의 고통은 겪으면 겪을수록 그 공포는 더 과장되어 갔다”면서 “연좌제는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했을 데모에 조차 참가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과 당시 그가 또래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배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와 어린 남매, 뱃속에서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막내를 버리고 사회주의를 좇아 월북한 아버지.
이 작가는 “아버지가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좇아 떠난 그 ‘사회주의’가 대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고, 일찍이 사회주의 서적을 찾기 시작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가 표면적으로는 매력있고, 정의롭게 보이지만 굉장히 교활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 60년대 중반 경 아버지가 뭔가 잘못돼 죽음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20대 후반에 마음속에서 남로당 아버지를 살해했다”며 “아버지란 존재가 내 삶의 결정요인이 되거나 제약요인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이러한 오래된 상처와 잊고 싶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대해 “일종의 ‘오이디푸스 사건’과 같은 것”이라며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약 20여년의 시간을 세상과 단절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또 학계, 문화계, 종교계 등 각층에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던 1987년,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저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이한열 사망사건 등 많은 학생들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것을 보면서 보수와 우파적(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어 “하지만 당시 보수는 무조건 악이고, 진보는 무조건 선처럼 되어버렸었다”며 “우리나라 보수는 무엇이든 다 싣는 바람에 가라앉는 낡은 배와 같아서 나라도 올바르게 여기(보수)에 서있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90년대에는 작품에 대한 수많은 비난의 봇물이 쏟아졌고, 2000년대에는 사람들이 나를 반공주의자, 친미파 등으로 매도하며 괴물로 만들어버리더라”면서 “괴물은 미국이 버린 오물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의 평론과 비약으로 자라나기도 하더라”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이 작가는 또 2001년 ‘이문열의 책 장례식’사건을 떠올리며 “진시황이나 히틀러같은 권력주의자나 저지를 짓을 대중에게 당했을 때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며 “이후 나는 담배를 끊고 오로지 살아남아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고 고백했다.
이 작가는 “세상과의 거친 논쟁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나를 더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만들었다"며 "1980년대 후반 이후 내 편은 없었다. 모두가 가버리고 나 혼자 남으니 불안하기도 했고, (진보로)옮겨 앉을 때를 놓친 후 보수가 나에게는 일종의 의무가 되어버린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해 말 출간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호모 엑세쿠탄스’에 대해서도 “나는 당시 문학적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시 나의 작품이 문학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지자 ‘또 내가 사회적, 정치적 사고를 쳤구나’ 하고 울었다”며 “책을 내고 한 달이 지나도록 서평이 보이지 않아 가슴이 매였다”며 당시 심정을 밝혔다.
이 작가는 “지난 시간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또다시 그렇게 살아가겠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을 것도 같다”며 지난 시간의 실수를 인정하기도 했다.
아울러 “문학이라는 것은 성과가 추상적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며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쓸데없는 소모를 하지 않으며 후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작가로 살고 싶다”고 마무리했다.
이문열 작가는 (197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펴냈으며,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은 반면 정치적 논쟁의 주인공이 돼 숱한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서울=데일리서프라이즈/뉴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