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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승려의 맨해튼 ‘백팔번뇌’

淸潭 2006. 12. 27. 15:03
소림사 승려의 맨해튼 ‘백팔번뇌’
쿵후 열기 편승한 승려들 미국행 줄이어
계율과 현실 사이 혼란…자살 택하기도
 
 
 
 
 
» 중국 소림사의 승려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무대에서 쿵후 시범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쿵후 열기에 편승해 산문을 나선 소림사 승려들이 세속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지난달 24일 미국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스헝샨(27)이라는 승려가 전깃줄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년 전 중국 소림사에서 건너와 맨허튼 변두리 플러싱에서 쿵푸 사범으로 일했던 그는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뉴욕의 으슬으슬한 겨울 날씨만이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는 왜 젊은 나이에 불교에서 금하는 자살을 택한 것일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스헝샨의 자살에서 실패한 ‘아메리칸 드림’의 조각을 찾아낸다. 미국의 쿵푸 열기에 편승해 산문을 나선 승려들이 세속화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가 극단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도시의 풍요로움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승려들이 계율과 현실 사이에서 존재론적 회의에 빠지는 비극적 경로를 그의 죽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인들에게 쿵푸는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시리즈 <쿵푸>를 통해 알려졌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펼친 현란한 쿵푸는 미국인들의 뇌리에 소림사와 쿵푸를 신비로운 존재로 각인시켰다. 92년 두 명의 소림사 승려가 이를 발판 삼아 미국에 소림사란 간판을 내걸고 쿵푸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성룡과 이연걸 같은 영화 스타들이 쿵푸의 인기에 불을 붙이면서, 소림사 승려들의 미국행이 줄을 이었다.

소림사 승려들은 이제 미국 곳곳에서 쿵푸를 전수하고 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휴스턴, 뉴저지 등지에서 소림사란 간판을 건 쿵푸 도장이 성업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용품제조협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지난해 690만명의 미국인들이 쿵푸를 배웠다. 2001년의 5배에 이르는 수치다. 라스베이거스의 ‘소림사 쿵푸’의 관원 수는 100명을 넘는다.

쿵푸 도장의 소림사 승려들은 장사꾼이나 다름없다. 보통 소림사 간판을 단 도장에서 쿵푸를 배우려면 한 달에 100달러를 내야 한다. 세상을 주유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화 속의 쿵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쿵푸를 좋아하는 이들의 온라인 토론방인 루스보닷컴(russbo.com)에선 이를 냉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이디가 ‘프리미어’인 누리꾼은 “내가 쿵푸 도장에서 처음 들은 얘기는 수업료를 내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불교의 엄격한 계율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다. 98년 휴스턴에 ‘소림 쿵푸아카데미’를 연 스싱하오는 요즘 배우자 감을 찾느라 바쁘다. 뉴저지에서 ‘소림사 쿵푸’를 운영하는 스싱펑은 법명까지 버리고 짱리펑이라는 이름을 쓴다. “나는 이제 승려가 아니다”라고 공언하는 그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해 아들까지 뒀다. 뉴욕에 ‘유에스에이(USA) 소림사’를 세운 스얜밍에게 고기와 술은 더이상 금기가 아니다.

그러나 승려들에게 이런 물질적인 풍요는 정신적 방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려서 소림사에 들어가 혹독한 수련을 했던 이들에게 갑작스런 해방감은 독이 되기 십상이다. 부처의 말씀을 따르면서 상업적 이익을 쫓다보면 정신과 물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루스보닷컴 설립자인 리차드 러셀은 “미국엔 승려들이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가 널려 있지만, 그들은 그런 자유를 누리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헝샨의 죽음은 자유와 물질의 풍요에 짓눌린 소림사 쿵푸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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