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진실/황우석사건

매국노냐, 독설가냐?

淸潭 2006. 12. 26. 13:22

이형기 교수 “황우석 사태 때 생명 위협”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배아줄기세포 진위논란 속에서 황우석 박사팀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재미 이형기(43) 교수가 "(줄기세포 논란 당시) 황 박사 지지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샌프란시코분교) 약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의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피츠버그의대 임상연구센터 자문위원과 조지타운의대 임상약리학 조교수, 미국 FDA (식품의약국)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다.

그는 특히 배아줄기세포 조작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말과 올해 초만 해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재직하면서 일부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황 박사팀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글을 여러 차례 투고한 바 있다.

당시 이 교수의 글은 서울대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 등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황 박사팀을 직접 겨냥한 직선적 비판이 대부분이어서 네티즌들 사이에 큰 찬반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때부터 이 교수는 한국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런 이 교수가 내년 출범 예정인 '약과 건강사회포럼' 참석차 한국에 왔다. 물론 그는 이번에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교수는 포럼에서 "정부의 약값 정책이 정부, 국민, 제약기업을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정책"이라며 강도 높은 주장을 폈다.

이 때문에 포럼에 참석했던 모 약대 교수는 이 교수가 발표하는 도중 자리를 박차고나가기도 했다. 21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 일답.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

▲서울대 문옥륜 교수 등이 내년 출범을 예정하고 있는 '약과 건강사회 포럼' 참석차 왔다. 이 포럼에서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드러난 국내 약값 정책의문제점에 대해 발표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 터진 지 거의 1년이 지났다. 자신의 역할을 짚어본다면.

▲내가 피츠버그대학에 있을 때 서울의 모 기자로부터 섀튼이 황 박사와 결별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전까지 황 박사를 잘 알지도 못했고 만나본 적도 없다. 물론 지금도 그를 만난 적은 없다. 섀튼도 접촉시도는 해봤지만 마찬가지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줄기세포 논란이 가열되는상황에서 여러 차례 글을 썼고,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워낙 독선적 글이 많아서 안티들도 많았는데.

▲그렇다. 당시 한번 글을 쓰고 난 뒤에는 안티들로부터 하루 40여통의 협박성 e-메일이 왔다. 대부분의 e-메일이 제목은 그럴 듯 했지만 내용을 보면 온갖 협박이난무했었다. 갈수록 이런 협박성 메일이 늘고, 협박의 강도도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목숨에 대한 위협도 느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모두 답장을 보내 잘못을 지적하고,내 입장을 전달했다. 당시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사회가 몇 년 동안 큰 상실을 경험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이 갈수록 감정적으로 격해졌다는 평가가 있는데.

▲사실 글을 쓰고 난 뒤 '안티들'의 협박도 격해지면서 일부 감정적 입장이 개입된 글도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나 또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원래 성격이 직설적인가.

▲모든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옳다는 것은 것은 아니다.

--정부의 약값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정부는 현재 '포지티브 리스트'라고 알려진 의약품 선별 등재와 약값 통제를 대표적 정책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약 하나 먹는 데도 정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뿐만 아니라 보험공단은 최종 약값 결정권을 부여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권력 기관으로 등극했다. 곳간 열쇠를 맡겼더니 결국 안방까지 차지한 격이다.

--한국의 약제비 수준이 높지 않은가.

▲정부는 전체 의료비에서 약제비가 거의 30%나 된다고 하지만 이는 통계적 맹점을 남용한 억지다. 정부 주장과는 달리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국민 1인당 약제비 지출이 제일 낮은 나라에 속한다.

단지 의료비 지출 규모가 워낙 작아 물건 값이라고 할 수 있는 약제비가 상대적으로 과다하게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이는 가난한 집에서 음식값 지출이 많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가계 소득을 올리는 대신에 가난한 집의 식대를 줄여야 할 판이다. 사람들이 배고파 쓰러지든 말든 말이다.

--포지티브리스트를 통해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은데.

▲이 주장도 의료 현장을 모르는 비전문인의 탁상공론에 가깝다. 고가의 신약은선별 등재 과정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지만 의사와 환자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신약, 더 좋은 약을 쓰려고 한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부담하지 않아 늘어난 약값을 고스란히 환자와 그 가족들이 떠 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정부와 보험공단이 내는약값은 줄지 모르나 국가 전체로는 오히려 약제비가 증가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약값 통제는 반혁신적 기업 환경을 조성해 결국 해당 국가 전체의 창의성을 억제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나.

▲호주와 캐나다는 일방적인 약값 통제 정책으로 자국 내 제약기업의 경쟁 우위가 말살돼 결국 세계 시장에서 퇴출당한 국가들이다. 호주 정부는 의약품 연구 개발에 사용된 비용 지불을 거절하고 단지 생산비만 보전해 주었다. 캐나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제적인 특허 양도와 복제 의약품 사용을 제도화했다. 결국 제대로 신약개발을 하려던 기업은 앞다투어 캐나다를 떠났고 남은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몰락과의약품의 무역 역조뿐이었다. 국가 전체의 의료비와 산업 파급 효과를 도외시한 채, 근거가 희박한 명분으로 정부의 관료적 재량권만을 비대화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재고돼야 마땅하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