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유명건축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淸潭 2006. 12. 25. 20:11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존 엇존(Jogn Utzon)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내세울 만한 음악 공연장이 없었던 점을 고려,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주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을 세우자는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파노라마 사진을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출처블로그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The Sydney Opera House)

- 설립연도 : 1973년

- 구분 : 오페라극장

- 소재지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 주요활동 : 예술공연


*  건물구조 및 주요시설

- 건물 최고높이 : 67m,  건물 길이 : 183m,  건물 폭 : 118m          

- 설계 및 공사기간 : 14년

- 지붕 외부마감 : 볼트/ 세라믹 타일

- Concert Hall :  심포니, 째즈, 팝, 버라이어티쇼, 대형공연(2,679석)

- Opera Theatre :  오페라, 발레, 현대무용(1,547석)

- Drama Theatre :  연극, 뮤지컬(554석)

- Play House: 소규모 연극, 세미나, 강의, 강연(398석)

- The studio :  전위, 실험음악, 현대 전위예술(364석)

- The Reception Hall :  회의, 전시, 리셉션

- Other Space :  식당, 카페, 쇼핑


*  여러 층의 단형 수평단면(플랫폼) 기단 위에 바람을 안은 돛, 대양의 파도, 조개 껍질을 상징하는 10개의 볼트(vault: 둥근 아치형의 천장)를 사용하여 건물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시드니 항에 거대한 요트가 돛을 휘날리고 있는 듯한 쉘 구조에 의해 대담한 디자인은 전 세계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S.기디온(Sigfried Giedion)의 유명한 저서 ‘공간. 시간. 건축’가운데서 웃존을 가리켜 ‘제3세대의 건축가’의 대표로 지칭하고, 그 작풍에 대해 "요른 웃존은 희귀 공간의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훌륭하게 계획하여 표현력을 결부시킨다.  이 상상력을 배경으로 설계판의  2 차원성으로부터 출발한 초보적 충동은 점차 3차원의 조각적인 형상으로 높아져 간다" 라며 그의 재능을 높이 평하기도 했다.

  수평선 위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에서 상승 이미지와 창공을 날개짓하며 비상하는 도둑괭이 갈매기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는데, 당시 건물의 앞뒤를 가리며 60m 높이까지 차례차례 솟은 10개의 볼트 지붕선은 상당히 혁신적인 것이어서, 초창기 이해부족으로 지붕 마룻대에 결합되는 쉘들이 임의적이란 것과 내·외부 공간의 관계성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건축은 기능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구조기술자, 음향전문가, 열관리, 무대 설치 전문가 등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개별적인 작업도면이나, 설명서를 포함시킴으로써 지금은 일반화된 팀작업의 전형을 보여 준 사례로도 기록되었다.

  당초 예정 공사기간보다 10년을 초과한 기간과 20배 증가한 공사비, 호주의회에서 논쟁까지 일의키며 완성된 20세기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연간 200만 명의 관람객과 함께 약 3,000건의 이벤트가 이루어지고, 연간 20만 명이 이 건물만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혹시 시드니를 방문하게 되면, 시드니의 또 하나의 명물인 ‘하버 브리지’와 겹쳐 보이게 사진을 찍는 게 좋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2개와 자신의 얼굴을 나란히 한 장의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현상설계 당시와 이후 완공까지 숱한 화제와 갈등,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건축학도들에게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르 꼬르뷔제를 비롯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미스 반 데 로에, 필립 존슨 등 쟁쟁한 유명건축가들을 제치고, 무명의 요른 웃존의 설계안이 채택된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이슈였다.  당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관련된 일지를 잡시 뒤져보면,

  1954년   뉴사우스 웨일즈 정부의 주도로,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자 원대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전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국제현상설계가 공모된다.

  1957년   이 현상설계에 참가한 총 222 작품 중 대상에서 탈락된 계획안들을 다시 살펴보던 심사위원 중 하나인 에로 샤린넨(Eero Saarinnen)은 웃존의 안을 재심사할 것을 요구했고, 재심사에서 웃존의 안이 최종 당선 안으로 발표된다.

  1959년   첫 번째 스테이지의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오리지널 디자인 중 Roof Line Shell이 구조적으로 시공이 불가능하여 재설계에 돌입한다.

  1961년   2년 동안 재설계를 하면서 자신의 설계를 2차원적인 도판에서 3차원적인 모델로 설명하고, 지붕 쉘구조의 전개과정, 쉘 곡면의 기하학적이면서 규칙적인 특성, 굴곡진 수직유리벽의 역할, 비계 없이 가동 거푸집을 이용한 건설방법 등을 제시한다.

  1963년   두 번째 스테이지와 지붕 쉘 구조의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1966년   뉴사우스 웨일즈 의회에서 초과되는 예산과 공사기간 연장으로 논쟁이 벌어진다.  발주처와 설계에 대한 많은 이견과 압력으로 웃존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게 된다.

  1967년   세 번째 스테이지에 돌입하자,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통과된 건물 건설경비의 축소는 진행중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모든 디테일을 간소화시키고, 굴곡진 목재 방음천장의 기본 시험 모델을 취소, 쉘을 보호 지지하는 유리벽의 감각적인 굴곡 변형 등 당초 디자인을 대폭 수정한다.  그나마 오늘날의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 책임자 리얀(前 토목부 장관)과 웃존의 안을 통과시키고 완공 때까지 물심양면 도와준 심사위원들 때문이었다.

  1973년   10월 20일 엘리자베스 2세에 의해 공식 개관한다.  하지만, 당시 오페라를 관람하는 대상을 특정 계층에 국한시키거나, 흑인들은 아예 출입을 금지했었고, 동양인들은 반드시 예복과 정장을 갖춰 입게 했으나 그나마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던 제약 때문에 인종 차별을 눈감아 주는 당시 호주정부의 상징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  시드니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의 닻 모양을 되살린 조가비모양의 지붕이 바다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지금은 시드니를 상징하는 건물로 인식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하버브리지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공연 예술의 중심지로서 극장과 녹음실, 음악당,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시드니심포니오케스트라 및 오스트레일리아국립오페라단·무용단 및 여러 연극단의 본거지이며, 도서관시설도 갖추고 있다.  1976년부터 이곳의 감독직을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리처드 보닝게(Richard Bonynge)가 그의 아내인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와 함께 운영해 나가고 있다.  조안 서덜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이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건축비사 문제제기   

  호주의 시드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는 것과 오페라 하우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봐도 참 아름다운 건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건물이 완벽한 건축계획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의 산물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는 디자인의 뜨거운 경쟁 역사와 대형 사업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가는 여실히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초 시드니 항에 들어설 이 종합공연장의 설계 공모에 무려 223점이 출품되었으나 당선된 설계도는 덴마크의 건축가 ‘요른 웃존’이 아무 도구 없이 맨손으로 그린 스케치였다.  그의 설계도는 커다란 조가비를 엮어놓은 듯한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마치 범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공학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었고, 그러다보니 설계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건물을 짓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1973년에 완공되었을 때 오페라 하우스는 건축과 공학 분야에서 신기원을 이룩한 건축물로 아낌없는 칭송을 받았지만 사실은 원래 예정보다 9년이나 늦게 문을 열었고 당초 건설비의 1400%가 이 건물에 들어갔다.  건축가의 집착으로 말미암아(자의적인) 형태의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임시변통의 공학적 결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건물의 관리 유지를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1989년에 수백 건의 건물 보수 사업이 늦춰지고 오페라 하우스의 균열 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장장 10년에 걸쳐 모두 모두 7천 5백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는 복원 사업이 시행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의 명물로 세계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기능면에서는 이만저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행하게도 오페라 하우스의 형태가 안고 있는 결함은 오토바이나 트랙터, 식기의 형태에 나타나는 결함처럼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호주 시드니 베넬롱 포인트(Bennelong Point)에 위치한 호주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1973년 건축 이후 처음으로 건축물 외관을 바꾸는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사내용은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하우스 서쪽 벽면 전체를 새롭게 유리로 단장할 계획인데 그 건축비용이 상상을 초월해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다.

  시드니 주 수상 봅 카(Bob Carr)는 지난 11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서쪽 벽면을 600만 달러의 고급 유리와 아케이드로 새 단장을 할 계획”이라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언론매체에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 공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거 자신이 건축한 오페라 하우스를 완공한 후 한 번도 직접 보지 않았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가인 미스터 요른 웃존(Jorn Utzon, 85)이 그의 아들 얀 웃존(Jan Utzon, 60), 그리고 시드니 건축가 리차드 존슨(Richard Johnson)과 함께 이번 건축에 다시 참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집안 전체가 건축가로 활동하는 웃존 집안의 수장이며 건축분야에서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수상한 요른 웃존은 특히 우아한(Define) 스타일의 건축을 선호한다.  그는 이번 공사를 “매우 기하학적(Geometrical)이며 우아한(Define) 재건축으로 기존 건물과도 일치되는 공사”라며 “자신은 건물에 구멍만 파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사의 가장 큰 특징은 오페라 하우스 서쪽 벽면에 45미터 길이로 전체 건축물의 외관을 연장해 그 곳에 약 5미터 길이의 보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서쪽 벽면 외관에 만들어질 창문들을 통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항구를 직접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란 점이다.  따라서,  공사 후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름다운 시드니 항구를 더욱 자세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책임자인 노만 그레스피(Norman Gillespie)씨는 “이번 재건축 계획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오페라 하우스의 공간들을 새롭게 재건축함으로써 죽은 공간을 제대로 활용되어지게 만들기 위한 일”이라며 “이번에 재건축이 완공이 되면 오페라 하우스의 플레이 하우스와 스튜디어, 그리고 드라마 극장들을 연결한 통로에 모두 유리로 된 창문이 생겨 항구를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편, 이번 공사는 올 7월 말에 시작해 약 1년간 공사가 진행될 예정인데 건축 비용은 서쪽 벽면의 재건축 비용과 작년 10월에 시작해 올해 중순에 완공될, 하우스 동쪽에 있는 리셉션홀의 재건축 비용을 함께 포함해 약 6930만 달러의 비용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값비싼 하우스의 재건축 공사에는 하우스내의 대 공연홀의 음향 개선을 위한 바닥공사 비용은 제외돼 앞으로 이어질 공사들에 대한 추가 부담이 예상되어,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현실에 비추어 시민들과의 적지 않은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