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고승유묵

淸潭 2006. 12. 1. 22:38



자유분방한 내공이 뿜어내는 거침없는 필력

불교문화와 한국문화
불교는 한국문화에서 1천 6백년 동안 굳건한 자리를 지켜 왔다. 특히 신라와 고려시대의 정신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불교 교단의 수행자인 승려의 위상은 컸다. 조선시대에는 승려의 위상이 전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지도 이념의 담당자였던 유학자와는 다른 정신세계를 고양시켜 나간 한 축이었다.

따라서 이런 승려들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한 단면인 승려의 글씨를 모아 살펴보는 것은 우리 문화사의 한 줄기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런 작업은 시도되지도 못했다. 우선 이점에서 이번 「고승유묵전」이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 시대도 오래지만 외적인 변란과 내적인 조선시대의 핍박를 받으며 불교계의 문화 자산 축적과 전승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승유묵을 한데 모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승들의 유묵을 한데 모은 서울서예박물관의 전시장을 둘러보며, 전시 담당자의 탁월한 기획력과 추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를 이끌던 선필
승려들은 세상을 직접 경영하는 몫을 담당하던 유학자와는 다르다. 승려들은 발을 세속에 내딛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세속을 넘어선다. 때문에 필법筆法을 따라 글씨를 익혀 쓰되 필법을 넘어선 탈속脫俗의 경지가 그들에게는 있다. 수행이 쌓인 수도자는 그 공력이 온몸으로 드러나야 한다. 때문에 고승高僧의 필적에는 글쓴이의 공력이 배어 있어야 한다. 선필禪筆은 이런 수도자의 역량이 밴 일상을 넘어선 글씨여야 제 맛이다. 선이라 해서 교학敎學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한국불교는 교와 선을 병행해 왔기 때문이다. 교학에 투철한 고승의 유묵 역시 기품 있는 선필이 될 수 있다.
불교가 문화의 중추를 이루던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당대 문화의 주도자였으므로 고승의 글씨가 곧 당대 명필의 글씨였다. 전시 첫머리에 선보인 김생金生의 글씨에서는 신라 제일의 명필답게 신라문화를 선도하던 기품이 드러난다. 봉암사 지증대사비를 쓴 혜강慧江은 83세의 나이에 꼿꼿한 공력을 내뿜는 글씨를 남겼다. 행기幸期 선경禪 순백純白 현가玄可 등을 거쳐 고려 중기에 이르면 탄연坦然이 <중수청평산문수원기重修淸平山文殊院記>에서 빼어난 필력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명필이었다.

일격의 선필
조선시대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생육신으로 절의를 좇아 세상을 유랑하던 매월당梅月堂의 유려한 글씨에는 절의도 지키지 못하는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고매한 인품의 청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조선 후기 불교계의 태두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글씨에는 범인의 법도로는 잴 수 없는 공력 높은 도인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일정한 체격을 갖춘 일격逸格 선필의 면모가 드러난다.
이 시기에는 고승의 글씨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아니었다. 선교에 뛰어났던 영파 성규影波聖奎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 원교員嶠의 동국진체 글씨를 좇고 있으며, 아암 혜장兒巖惠藏의 글씨가 다양한 서체를 구사한 것은 그가 다산茶山과 추사秋史 등 학자들과 교유를 가졌던 데서 나온 산물이었다. 이제는 승려들의 글씨가 시대를 따라가는 때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이 수룡 색성袖龍 性 등 여러 승려들과 나눈 서간이 눈길을 끄는, 승려와 유학자의 교유로 한 방을 꾸민 기획자의 의도가 참신하다.

추사체를 이룩한 거장 추사秋史 또한 많은 고승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이 시기 선 논쟁을 벌이며 선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백파 긍선白坡亘璇과 초의 의순草衣意恂 둘 다 추사와 깊은 우의를 가졌는데 추사 등의 북학자와 깊은 교분을 가졌던 초의의 글씨는 분량도 풍부하고 서체도 다양하다. 추사의 글씨는 일반 서가들에게 뿐만 아니라 승가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이들 글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색다른 관심을 끄는 것은 추사가 당대 종장宗匠으로 자부하던 백파와 불교에 관한 논쟁을 벌인 필적이 이번 전시에 두 작품이나 출품된 사실이다. 추사의 문집에 실려 있기도 한 이 글씨들은 하나는 문집의 내용과 일치하나 다른 하나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다. 면밀히 대조할 필요가 있는 이 글씨에 남은 수정 자국은 옛 거장들이 자신의 견해를 상대방에게 내세우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면서 후학의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기획자의 부지런한 발품으로 뜻밖에 자료 발굴의 효과도 가져왔다.

뜻깊은 만남- 3일간의 동안거
전통시대의 선필은 근대에 들어서 어떻게 되었는가. 근대선의 중흥조 경허鏡虛의 글씨에는 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글자 너머로 출중한 수행력을 뿜어내는 품격이 있다. 온몸으로 교화를 선도했던 용성龍城의 글씨에는 치밀한 내공이 묻어 있다. 그 정신의 한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만해卍海의 글씨에는 끝까지 지조를 세우며 기개를 드높였던 강고한 의지가 살아있다. 그리고 이 시기 선 수행을 이끌었던 거장 만공滿空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나 <세계일화世界一花>에는 일상을 넘어선 선수행의 품격이 배어나는 선필의 대표적인 한 모습이 있다.

선필은 단지 법도에서 벗어난 파격破格을 주장하며 자유자재로 일필휘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수행의 내공이 배어 있어야만 중생들의 마음을 울리는 ‘선필’이 될 수 있다. 근대에서 거꾸로 전시실을 차례로 돌아 나오면서 「고승유묵전」의 의의를 되돌아본다. 그렇게 살펴보니 이번 전시는 선필의 의의를 제대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예술과 정신세계를 아울러 고양해 가려는 기획 의도가 살아 있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아마 그런 기획 의도가 애호가들을 위해 선과 예술을 다각도로 조명한 특강 ‘3일간의 동안거冬安居’를 마련하게 했으리라. 특강 또한 ‘선필’ 만큼이나 일격의 운치가 있는 돋보이는 만남이었다.

글 : 정병삼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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