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
1. 당뇨병의 자각증상
어느날 동생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2층 사무실을 나서 10여 m 걸어오다가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졌다.잠간의 순간적인 일로 금방 의식을 찾았으나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있어 일어서지 못하고 길바닥에 손을집고 엎드려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
은 많았으나 누구도 나를 일으켜 주지않고 대낮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것으로
아는듯 했다.이것이 저혈당 증세였는지 아니면 과혈당으로 인한 혼수 였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고 있다.
82년 봄, 내나이 44살. 봄이라 피곤한지... 춘곤증이라는 봄의 시샘인지,여름이 되
었으니 더위먹어 기운이 없는지,가을이오면 기운 차리고 원기 회복되겠지 하고 기
다렸으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게 몸은 피곤하고 갈증으로 물을 많
이 마시고 체중은 줄어 몸은 야위어가고 술을 먹으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이튿
날 새벽 구토(over eat) 하기를 반복하니 당뇨에 대한 상식이 없는 나는 무식한 추
측으로 간이 나쁜 모양 이라고 자가 진단을 하고는 겨우내 꿀에 인삼에 몸 보신 만
했든것이다.
그러나 술에 담배에 과식에 운동은 하지않은 내가 당뇨라는 진단 결과를 통고 받
은것은 그 이듬해인 1983년 초 였다. 하지만 내가 일찍 당뇨 증세가 있었든 것은
그로부터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맞을 것이다.1972년 3월 내가 민원업무 담
당 공무원으로 재직중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피해 의식을 느낀 한 민간인
의 투서를받고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던중 (검찰의 무혐의 불기소 결정된 사건)
맹장염(충수염)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13일만에 퇴원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아 퇴원이 늦어진 것이다.이것이 당뇨병이 원인이 아니었
나 생각된다.
나는 당뇨에 대해 무식했지만 의사는 알았어야 하지 않았을가 안타갑기 만 하다.
혈액검사로 백혈구인지,적혈구인지 증가 하므로 맹장염을 판단하는 진단을 하면
서도 왜 혈당치는 체크 하지 않았는지 수수께끼가 아닐수 없다. 더구나 맹장염을
치료 하면서 풍치(치주염) 가 심해 치과 치료를 병행 하였는데도....
그당시, 지금부터 30년전에는 당뇨 환자가 많지않아 병원이나 의사나 환자나 모
두 다른병 에만 관심이 있었나보다. 또 한가지 사과만 베어 물어도 피가 묻어나
는 잇몸 병이 어려서 부터였다. 그러나 치주염 이거나 수술후 아물지 않거나 이런
모든 현상이 당뇨를 알고 있는 지금에야 그 합병증의 하나임을 알게 된것이다.
내가 당뇨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촌 누님의 고혈압 사망,작은아버님의 고혈
압 치료,내 동생의 당뇨발병, 그리고 막내동생의 당뇨 발병등 혈관관계의 유전적
인 요인은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비만과는 거리가 먼 마른 체질이었으니 더
욱 유전성이란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당뇨를 모르고 10 여년을 방
치 했든 셈이다. 결국 당뇨는 종합검진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만시지탄 ? ...
2. 사형선고 ?
처음으로 당뇨가 무엇인지 당뇨병이란 어떻게 생긴놈인지 정말 언제 어디서 무엇
을 어떻게 왜 라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피고요 의사는 판사,그러나 사형선고는
영양사가했다. 이제 죽은 목슴 이었다. 무엇은 먹으면 안되고 무엇은 하면 안되고
무엇만하고 이렇게 저렇게 주문도 많았고 지킬것도 많았다.이러니 사형집행되는
그날까지 장기복역 (장기간 당뇨조절)하다가 행형성적 (조절 태만) 불량이면 사형
집행 (합병증 발병)되는 것이다.
아내와함께 영양사 에게서 식이요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 ? (엄중경고 ?)을 들으며
내 나이 아직 40대 초반 인데 이제 다 살았구나 라고 생각했다.우선 좋아하는 술
담배를 끊고 ,맛있는 음식은 먹지말고, 고기보다는 야채를 기름진 음식보다는 담
백하게 그리고 단것은 금물이요 게으름 또한 용서치 않으며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추우나 더우나 열심히 운동해야하고 과로 하지말고 흥분이나 큰 스트레스를 받지
말것이며 ....등등 이게 무슨 인생 살이란 말인가. 이게 생지옥이요 이게 감옥이니
어찌 사형선고가 아니란 말이냐 !
그러나 어차피 내 생은 내것,그누가 대신해줄수는 없는것이다. 그리고 내게 딸린
세식구 우리가족 4명은 내가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한편 겉으로 보기엔 마른체격
이외엔 멀쩡한 상태의 꾀병 환자 아닌가. 내가 왜 여기서 좌절해야 하는가.다리병
신도 팔병신도 모두 열심히들 살아가고 또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팔다리 멀
쩡하고 어였한 직장가진 내가 왜 소침해서 내 생을 내 삶을 포기 한단 말인가.
사실 내 스스로 내 생을 마감할 만한 용기도 없는 위인이 말이다.
3. 고개를 오르며
이제 부터 내 새로운 삶은 시작 되었다. 당장 시장에 가서 무게를 달수있는 저울을
사다가 밥그릇 국그릇을 달아보고 거기에 밥을 얼마를 담으면 몇백g 이고 얼마나
되면 몇 g 인지 그리고 무엇은 몇 g 나가며 소고기 구운것 한점은 몇 g 인지 계량하
기 시작했다.이렇게 내 식단에 오르는 음식물을 담아 보고 달아 보고 그릇무게 빼
면 얼마나 먹어야 되고 영양사 상담으로 교육받은 숙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렇게
며칠하니 진밥의 양과 무게 그리고 된밥의 양과 무게 보리밥은 어떻고 찬밥 무게
는 얼마 하는 식으로 금방 알수 있었다.
사과는 반개,딸기는 몇개 수박 참외는 ? 영양사 에게서 받은 내 신장,체중 ,직업에
의한 소요칼로리등에 의한 1 일 섭취량, 음식물에 따른 당분 담백질 지질등의 함량,
이런 모든것을 읽어보고 달아보며 재보고 시행 해 보니 너무 배고프고 양에 차지 않
아 밥상머리를 떠나기가 무척 어려웠다.이때 식이요법 의 구세주를 내 스스로 발견
했다. 그 구세주는 바로 오이님 이시다.
밥먹고 양이 차지않아 서운할때 즉석에서 생 오이를 씹어 먹으니 우선은 견딜수 있
었다.그러나...
항상 오이로 양을 채우면 포만감은 얻을수 있으나 위의 양을 줄여야 하는 과제를
해결 할수는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위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식사량을 줄
여가야 했다.저울에 달아서 식품 교환표에 의해서 약먹고,밥먹고 운동하며 감옥생
활하기 두달만에 체중은 불어나고 혈당은 떨어지고 양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
게 식이요법으로 기아선상을 헤매며 조절하기 시작한지 6 개월이 지나니 이제 정
해진 양의 식사로도 배고픔은 면하게되고 저울을 사용하지 않아도 경험에 의한 눈
대중 계량은 정확했다.
4. 환자와 의사
어느 병원을 가던지 의사는 주인이고 환자는 손님이다. 주인은 손님에게 절대적이
다.그러나 나는 주인 이었고 내 담당의사는 손님 이었다. 강남 성모병원 원장 이셨
고 내 주치의 였든 고 민병석 박사를 추모하며...
어제 나를 진료 해 주시고 오늘 그분이 돌아 가셨다.
83 년 10 월 9 일 고인이된 그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대통령을 수행하
여 버마를 방문중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발사고로 인해 돌아가신 것이다.
역시 손님은 주인에게 깍듯했다. 환자인 나를 주인처럼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고
어디 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세밀한 진찰, 손으로 만저 보고 두두려보고 눈 코 귀 입
목 가슴 배 등 온몸을 살펴보고, 물어보고 들어보고 자상하게 설명하고 충고하며 진료
하는 태도가 슈바이처나 히포크라테스도 이분 보다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인에게
충실한 종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이런 의사분이 대한민국에 몇 분이나 계실 것인가.
그분은 대통령의 주치의가 아니라 내 주치의 였다.
나를 경악하게 한건 대통령 일행의 폭발사고에 의한 참상이 아니라 사망자 명단으
로 발표되는 이름이 그분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아니 어제 나를 진료하고 언제 버마
까지 가신건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제 오전 진료를 마치고 오후 출발?
그리고 그분이 대통령 주치의 였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내 불찰이
아니라 그분이 내색을 하지않는 너무나도 소박한 서민적인 성품 때문 이었다.
이듬해 6 월 6 일 현충일 동작동 국립묘지
내 아내와 나는 어느 묘지 앞에 업드려 고인을 추모하고 있었다. 그 묘지 비명은
고 민병석 박사 지묘 였다.환자가 의사를 만난지 9 개월 만에 이별하고 그 의사의
묘지 앞에 업드려 만감이 교차되는 심정으로 그분을 추모하며 명복을 빌고 있는
모습이 한편의 현실 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
시리라 믿습니다. 내 생명의 은인도 아닌데 말입니다.
5. 나도,남잔데...
나도 남잔데 남자 구실을 못한다면 내 젊은 아내는....
아직 내 나이 40대 중반을 지났을 뿐인데 벌서 그러면 앞으로 나는 무슨 재미로 살
아가야 하나. 요즘은 비아그라 라도 있으니 걱정 안할수도 있지만 그 당시는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것인지 확실하게 알지도 못했고 갑자기 그런
것이 아니고 서서히 진행 되었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도 않았다.
여기 처녀 총각에 관한 한편의 에피소드인지 아니면 유머인지 를 소개하고 싶다.
남자 친구와 당일코스로 여행을 다녀 오기로 하고 떠난 남녀가 어쩌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편을 놓치고 한 여관에서 같이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잠자리 들기
전에 여자가 하는말이 "여기넘어 오면 짐승" 하면서 손가락으로 방 바닥에 금을긋
는게 아닌가.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서 이 아가씨가 남자 친구의 따귀를 올려 붙
치며 "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 하면서 "앞으로 너 하고는 절교야 !" 밤에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는 짐승을 기다렸으나 끝내 그 짐승은 넘어오지 않았으니 역시 그 남자
는 짐승만도 못한놈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날. 나도 내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것을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다르니 내가 남자인가? 아니면 중성? 그려면......
나를 죄인으로 만든것은 당뇨라는 나쁜놈이다. 그놈이 나를 병신으로 만든것이다.
좋다,그럼나도 너 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어디 두고보자. 내가 당한 수치를 갚
을테니 기다려라. 이때 결심한 복수심에서 지금은 해방 되었으니 결국 나는 성공한
것이다. 내가 정상인과 다름 없는 남자가 된 것이다.그리고 짐승이 된것이다.내 나
이 60 이 넘었어도 정상적인 짐승이다. 아니 다른친구들 애기를 들어보면 내가 그
친구들보다 더 짐승스러운 것 같다.이는 국산 비아그라인 " 홍삼정 (엑기스) " 의 장
기복용 덕분이 아닐가 생각된다.
6. 이제는 평지를
가. 식이요법
덜 먹는데 왜 체중은 불어날가 ? 당뇨초기 52 kg 의 체중이 덜먹고 아니 못먹고 지
내기 한달도 못되어 56 kg 으로 체중은 늘어났다. 그러니 우리가 고기에 떡에 하는
식으로 잘먹고 맛잇게 많이 먹는다 하여 살찌고 건강해 진다는 보통사람과는 정반
대의 현상이 당뇨인 에게는 있는 것이다. 초기에는 저울로 달아보고 많으면 덜고
시간맞춰 제때에 달지 않은것(무가당) 위주로 식이요법을 제대로 시행하니 체중도
늘고 피곤함도 덜하고 이렇게 스스로 건강을 되 찾는 느낌 이었다.
아버지 회갑때 였다. 아직 동생들(3형제중 장남임) 은 당뇨가 발병 전이므로 나만
식이요법이 필요한 때 였는데 내 아내가 잔치 음식중에는 당분 첨가 요리가 많으
므로 나를위해 별도로 당분을 넣지 않은 고기를 준비 했는데 이를 모르는 계수씨
들이 그냥 다른고기와 섞어버린 것이다. 난감해진 내 아내는 화가 나서 그후 한동
안 까지 동서들과 감정적인 대립까지 있었든 웃지못할 사연도 있다. 물론 20년 전
부터 지금까지 나와 내 자식들과의 음식 조리를 다르게 준비하는 내 아내의 수고
로움 덕분에 내가 식이요법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특히 아내와 그리고 전 가족
의 이해와 협조가 당뇨인의 식이 요법에 절대적이라는 필수 요건이라는 사실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이제는 저울이 없어도 몇 g 정도인지, 그리고 무슨 음식은 어느정도 까지 내가 섭
취해도 될른지, 이렇게 경험에 의해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 할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지금은 못 먹는것은 하나도 없고 나쁜것도 하나도 없다.다만 양 만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단것도 먹어야 되니 초기에 먹고 싶은것도 못 먹고,
먹어서는 않될것이 그리도 많드니 지금은 달라 졌다.그러니 이미 영양사 에게서
받은 사형선고는 감형이라는 특사를 받은 것이다.초기에는 외식도 못했으니 얼마
나 철저 했는가. 이렇게 철저히 했으니 지금까지 합병증 없이 건강을 지키고 있다
고 생각된다.
친구와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또는 모임에서 회식을 할때 쌀밥은 않되고 보리밥
이어야 하고 술은 맥주는 않되고 소주만 마셔야 한다고 내가 당뇨병이 있음을 아
는 친구들이 나를 위해 신경을 써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배려에 고마워
하면서도 별 차이 없음을 열심히 설명 해 주고 있다. 쌀과 보리의 당분 함량과 소
주와 맥주의 칼로리 차이를 알고 있으니 그 양을 조절 하는것은 내 스스로의 판단
에 맡겨 달라고. 한참 장황하게 설명 하다보면 이것 저것 당뇨에 관한 내 상식을
말 하게되니 이제 친구들은 나보고 당뇨병 박사 라고 한다.그렇다.나는 당뇨병 박
사다. 당뇨 20년동안 보고 듣고 실험하고 연구 했는데 어찌 박사가 아니 겠는가.
이렇게 큰 소리 칠수 있다.
나. 내복약 복용
민간 요법에 의한 약은 쓰지 않고 있다. 초기에 몇가지 복용한것은 민간 요법의 허
와 실 이라는 항목으로 별도 기록 했으니 참고 해 주시기 바라며 여기서는 내가 20
년 동안 복용하고 있는 글루레노륨에 관해서만 말씀 드리려합니다.다이아비네스,
다이오닐 등 다른 양약도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는 달라도 성분과 효능은 같을것
으로 생각된다. 나는 지금까지 의사의 처방에만 의하여 약을 복용 하고있다. 아침
점심 저녁 복용 시기와 양은 의사가 정해주고 나는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
이다.
아침에는 한알, 한알반, 또는 두알, 이렇게 그때 그때 의 내 상태에 따라 의사가 처
방 해주고 있다. 한번 처방하면 몇달간 복용하며 혈당 조절 결과에 따라 증감을 처
방 받고 있다.또 점심 식사전과 저녁 식사전등 하루에 몇번 복용 하라는 처방에 따
라 이를 지키고 있다.아직은 인슐린 주사를 맞지않고 내복약 복용 만으로도 혈당
조절이 가능 하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침에 두알,점심에 한알을 복용하고 있으며 저녁에는 없다.그동안 치료 받
으며 한번에 반알도 복용 했든 일이 있고 또,점심에는 약을 처방 받지 않기도 했었
다. 이렇게 수시로 아니 몇달만에 복용양이 바뀌 기도 했다.그러나 식이 요법과 운
동요법만 가지고 도 혈당조절이 가능 하다면 얼마나 좋을가 부럽기도 하지만 인슐
린 주사를 맞는분을 생각하면 나는 퍽 편하다고 자위 하기도 한다.
글루코바이 라는 혈당조절 내복약은 복용후 방귀가 심하게 나오는 부작용이 있다.
내 의지와는 아무 관계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나와 한 사무실에 근무하
는 동료 들에게는 사전에 설명 및 경고 ? 를 했으므로 이해 하므로 실수라고 생각
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 여기 적어본다.하루는 감독 기관의 회의에 참
석하여 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회의 진행 중인데 그 괴성이 작지도 않게
연속으로 두번 들려왔다. 여러분은 상상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 실내 분위기가 어
땠을 것인가...
다. 운동요법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언제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 눈이오나 바람부는날도 가능 하지만 비오는 날은 야외 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추우나 더우나 가능한것이 운동이다. 나는 초기에는 운동 하기에 애로가
많았다. 그리고 운동방법, 또 운동종류, 운동 장소등 시행착오 도 있었고 때와 장
소에 알맞는 운동을 선택하지도 못했다.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터득하고 때
와 장소에 맞는 운동을 개발하지도 못했다.
요즘은 주로 속보와 조깅을 하고 있다. 2~3 년간은 조깅 (달리기)를 주로했고 속보
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릎에 자극이 오기도 하여 요즘은 속보와 병행 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는 비오는 날에는 내가살고 있는 아파트의 계단 오르기를 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는 일년 365일 을 운동 해야되는줄 알았다.그 계단수가 1층에 16단씩
22개층 (옥탑 1층포함) 을 세 왕복 했으니 1056단 오르고 1056단 내려가는것이 비
오는 날의 하루 운동량 이었다. 거기에 일요일은 등산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요일은 결혼식장에 가거나 지방에 다녀 오거나 하는등 사회 생활에 참여
하는 횟수가 등산가느날 보다 점점 많아 지기도 했다. 그리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
내리든 운동도 이러 저런 이유로 중단했고 오직 저녁 식후 40~50 분후 학교 운동
장에 나가서 속보 또는 달리기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 7일중 5
일 이상을 운동 하면 지장 없다고 하여 매일 못했다고 조바심 치지도 않는다. 당뇨
초기엔 운동 종류 선택의 묘안 없이 수영장 헬스장 없는 것만 불만으로 그리고 운
동 기구 마련할 생각도 없이 적당한 운동할 장소가 없는것만 탓했다.
내가 분당으로 이사와서 집 가까이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고 멀지않게 공원
이있어 옥외 운동할수 있는 여건이 매우 좋다. 서울에 살때는 주위에 학교도 없고
헬스장 수영장도 없으며 조깅 할만한 조용한 거리도 없는것만 탓하고 단독주택 마
당에 운동기구 설치할 생각은 못했으니 현명치 못한 탓이리라.그러나 여기는 아파
트 생활이고 주변 여건이 비오는 날은 계단 오르내리고 비 오지 않으면 운동장 아
니면 공원까지 차도를 끼지 않고도 왕복 할수있는 장소가 많아졌다.그래서 열심히
달리고 운동한 덕분에...
지난해 가을 중앙일보에서 주최한 마라돈 대회에 참여하여 내 펑소의 운동실력을
발휘해 보기도 했다. 내 평소 5 km 정도를(10m 에 몇 발자국이니 왕복에 몇발자국
달렸으니 대략 계산하면) 매일 달리기 운동하면서 약 35분 소요됨을 알고 내 나이
60 이 넘었으니 무리하지 않게 5 km 를 신청 했든것이다.기록증을 받아보니 5981
명중 936등 이고 기록은 30분 59초 이며 60세 이상중 에서는 180명중 15등 이었다.
빠르지는 못해도 평소대로 쉬지 않고 꾸준히 달려 완주 했다는 결과가 나를 흐뭇
하게 했다. 다음해에는 기록을 30분 이내로 단축 하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운동! 이것은 당뇨인 에게는 약 보다도 더중요한 관리 요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식이요법도 약물 요법도 운동보다 나은 당뇨 관리의 필수 요건 이지만 운동
도 빼 노을수 없는 중요한 당뇨 조절의 요소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식이요법과
약물요법은 실행하기가 운동요법 보다는 쉽지 않을가 생각된다. 더구나 직장 생
활로 저녁 시간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운동 하기엔 큰 결단력이 요구 된다고 생각
된다. 저녁먹고 40~50 분후 에 운동하러 나서기엔 무척 꾀가 날때가 많았기 때문
이다.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렸을땐 저녁먹고 운동하기 싫을 때가 많았었다. 그러
나 그것이 습관화 되면 운동을 안하면 무었인지 서운해서 더 견딜수가 없게 되었
다.
7. 쉼터는 어디에!
이렇게 내가 당뇨 20년 동안 지금까지 합병증 없이 지내오며 정상인과 조금도 다
름 없이 먹고 마시며 ( 알아서 조절 ) 달리고 일하며 지내고 있으니 이제 여기가
쉼터 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직 아니다. 당뇨 환자에겐 쉼터가 없다.누구 완
치 했다는 사람 있는가. 관리를 잘 하여 타인이 볼땐 이상없어 보이겠지만 그도
방심 하다간 합병증 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쉬고 있을때 그는
슬그머니 접근하여 당뇨병력 있든 사람을 골탕 먹이는 것이다.
지금도 꿀맛은 어떤지, 초코렛 맛은? 그리고 땀흘리고 갈증날때 시원한 음료수는,
이렇게 수 많은 유혹이 있는데 이를 참고 견뎌야하니 어찌우리 당뇨인이 쉴틈이
있겠느가.하루종일 일에 시달리고 저녁먹고나니 식곤증은 오는데 그래도 운동하
러 나가야 할때 그괴로움을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그리고 외출할때 약과 사탕을
두가지 모두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하는것이다.이렇게 식이요법과
약물요법 운동요법을 동시에 생활화하고 습관화 해야하는 우리 당뇨인의쉼터는?
그러나 분명 우리 아니 나 에게는 쉼터가 있다. 아니 분명 있다. 뭐 먹고 싶으면 먹
으면된다. 못 먹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자기자신을 알고 있으면 될 뿐이다.
그리고 운동하는것도 우리만 하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상적인 사람도 더 열심히
들 하고 있지 않은가 . 나만이 우리만이 강제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않된다.더 건
강하게 살기위해 얼마나들 열심인데. 그리고 약도 준비 하고 등산이나 운동시에
미리 사탕같은것을 준비 하는것은 일반인도 외출할때 이것 저것 주머니 살림 챙겻
는지 확인하지 않는가.그러니 나라고 남보다 더 불편하거나 번거로울건 없다. 마음
가짐에 달렷을 뿐이다.
그러니 분명 여기가 쉼터이다. 더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라. 우리는 외부
로보면 멀쩡하지 않은가. 먹고 싶은것 맛있게 먹고, 밥먹고 물마시듯 쉽게 약 먹으
면 되고,더 건강해 지려는 사람처럼 운동하면 되니 뭐가 불만인가.나는 친구들 에
게 항상 건강에대해 조심하고 조절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고 나를 알고 있
으므로 너의들 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거라고 큰소리 친다.이제 내 친구들이 누
가당뇨로 고생 한다고 하면 "내 친구중에 당뇨병 걸린지 2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나 철저히 관리 하는지 자기보다 더 건강 하다." 고 나를 모델로 등장 시킨다며 내
게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당뇨병 발병하여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결과와 조절 방법을 통고 받았을
때 그리고 지금 까지 겪어온 과정 또 내가 느끼고 체험하고 실행하며 지낸 과정을
간단하게 기록해 보았다. 하지만 20년 동안의 당뇨와의 투쟁이 어찌 이게 전부 이
겠는가. 그저 단편적으로 혹시나 현재 당뇨로 고생 하시는 분 이 보시면 이런 사람
도 있었구나 하고 참고가 되셨으면 해서 써본 것입니다.여러분 용기를 가지고 부
단하게 노력 하십시요. 쉬운 병도 아니지만 어려운 병은 절대 아닙니다. 내가 의학
적인 전문지식이 없어도 나는 이렇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재삼 말씀 드리며 여러
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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