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방송사 최초 ‘노조Ⅱ’ 떴다
공정방송 노조’ 설립으로 ‘한 지붕 두 노조’ 시대 임박 … 使측에 대립각 勞-勞‘닮은꼴 코드’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한국방송공사(KBS)에 기존의 노동조합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진종철·이하 ‘KBS 노조’) 이외에 ‘제2의 노조’가 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국내 방송사로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새로운 노조의 명칭은 ‘KBS 공정방송 노동조합’(이하 ‘공정방송 노조’). 공정방송 노조는 지난해 4월13일 노조 설립 총회를 개최했지만,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적은 전혀 없다. 더욱이 상당수 KBS 직원들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모를 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서 탄생했다.
공정방송 노조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KBS 본사 심의팀의 윤명식(54) 심의위원. 윤 위원은 2004년 9월13일, 정연주 현 KBS 사장의 이른바 ‘개혁 노선’에 비판적인 사내 모임인 ‘KBS 발전협의회’를 출범시킨 인물이다. 윤 위원이 의장으로 있는 KBS 발전협의회는 140여 명의 직원이 회원으로 가입해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윤 위원이 별도의 노조를 설립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팀제 시행 전 1직급 이상 직원 가입 대상
“발전협의회는 임의단체인 만큼 활동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는 데다 사 측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 또한 없지 않다. 따라서 기껏해야 사 측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는 정도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
윤 위원은 “정 사장의 개혁을 가장한 KBS 관리 및 경영 능력의 부재,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은 방송 행태를 좀더 강도 높게 내부 비판하기 위해서는 비판자들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테두리가 필요했다”고 노조 설립의 계기를 설명했다.
공정방송 노조의 위원장은 윤 위원. 감사는 KBS 예능팀의 박성명 PD가 맡고 있으며, 심의팀 차갑진 심의위원이 조합원으로 소속돼 있다. 지금으로선 노조 설립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 요건만 갖춘 셈이다.
공정방송 노조의 가입 대상은 정 사장이 2004년 8월 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한 조직개편을 단행하기 이전의 KBS 조직체계인 ‘국(局)-부(部)제’ 하에서 ‘1직급’ 이상에 해당한 직원(과거의 부장급, 주간, 국·실장 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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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상당수는 팀제 시행 이후 관리직급이 아닌 팀원 보직을 받았음에도 1직급 이상인 직원에 대해서는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단체협약에 묶여 KBS 노조 가입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도 윤 위원이 주장하는 공정방송 노조 설립의 필요성 중 하나다. 현재 KBS 노조의 가입 자격은 과거의 2직급(차장급) 이하인 직원으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공정방송 노조가 지난해 4월19일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에 낸 노조 설립신고서는 같은 달 22일 반려됐다. 그 사유는 ‘KBS에 이미 설립돼 활동 중인 KBS 노조가 KBS에 근무하는 전체 근로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 일부 근로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공정방송 노조는 기존 노조와 조직 대상이 중복되는 새로운 노동조합인 만큼 현행법상 금지된 복수노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대해 공정방송 노조는 지난해 12월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를 상대로 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올해 6월30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정방송 노조는 기존 노조와 조직 대상을 달리하고 있으므로 복수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는 올해 7월22일 상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공정방송 노조는 아직 노조 설립필증을 교부받지 못했고, 현행법상 ‘법외노조’인 상태다.
이 같은 사건의 추이에 대해 KBS 사 측은 조용한 분위기다. 소송 당사자가 아닌 까닭이다.
특이한 점은 KBS 노조와 공정방송 노조 사이엔 노(勞)-노(勞)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KBS 노조의 한 관계자는 “과거 1직급이던 직원들의 KBS 노조 가입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 규약을 개정해야 하며, 노조도 내부적으로 규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규약 개정은 단체협상 사안이어서 사 측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복수노조 여부 놓고 법적 공방 … 노조 1심 승소
지난해 1월 출범한 현 KBS 노조 집행부는 전임 김영삼 위원장 때와는 달리 경영진에 비판적이다. 게다가 최근 박복용 PD의 폭로로 불거진 ‘KBS 스페셜’ 제작과정에서의 정연주 사장 외압 행사 의혹, 문형렬 PD가 제기한 ‘추적 60분-줄기세포 편’ 제작과정에서의 외압 의혹 등과 관련해 사 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KBS 노조와 공정방송 노조의 ‘코드’가 비슷한 셈이다.
공정방송 노조가 설립필증을 받기까지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자연스레 정식 노조로 발돋움할 수 있는 데다, 설령 패소하더라도 내년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되므로 설립에 지장이 없다.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 노사지원과 관계자는 “공정방송 노조를 기존 노조와 별개의 노조로 인정한 사법부의 해석과 현행법상 2006년 12월31일까지 설립이 금지돼 있는 복수노조로 봐야 한다는 행정적 해석의 차이에서 소송이 비롯된 것”이라며 “소송에 시간이 많이 걸려 자칫 판결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소송 자체의 실익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공정방송 노조의 공식 출범은 시간문제라는 말이다.
윤 위원은 “노무사에게 법률 자문을 한 결과, 공정방송 노조는 현 단계에서 단체교섭권은 행사하지 못하지만 단결권은 가질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며 “승소할 경우 즉각 조합원 확보에 나서 KBS가 제작하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방송 노조는 소송이 진행 중인 까닭에 지금은 조합원 가입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과거 1직급 이상이던 직원 390여 명 중 150여 명가량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닮은꼴인 ‘한 지붕 두 노조’의 공존은 ‘편향적’이라고 비판받아온 공영방송 KBS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방송 사상 유례없는 ‘쌍끌이 노조’를 카운터 파트로 맞게 된 KBS 사 측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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