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스크랩] 법장 대종사 원적 후 네번째 소식

淸潭 2006. 9. 17. 21:32
 

 

김진표 부총리 등 조문【41신】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ㆍ 허준영 경찰청장 도 조문

 

정연주 사장이 지만 스님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경향신문 조용상 사장, 허준영 경찰청장, 열린우리당 김원웅, 이인영 의원, 자민련 이인제 의원 등도 9월 12일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분향했다.
 

지만 스님과 인사하는 허준영 경찰청장.


 

자민련 이인제 의원이 조문하고 있다.

 

"법장 큰스님, 예슬이가 왔어요!"【42신】

법장스님과 결연 맺은 최예슬양 조문
 

법장 스님에게 예를 올리고 있는 예슬(오른쪽)이와 예슬이 어머니.

"법장 스님! 예슬이가 왔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가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이운되고 난 뒤, 낯익은 어린이가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최예슬(13ㆍ서울 효제초6)양. 법장 스님과 결연을 맺은 주인공이다.

뉴스를 보고 법장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예슬이는 엄마와 함께 빈소를 찾아 법장 스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토요일 저녁에 법장 스님이 사주신 안경이 고장나서 느낌이 안좋았었다"는 예슬이는 "너무나 놀라 엄마와 함께 달려왔다"고 말했다.

결연 캠프를 비롯해 모두 4번 법장 스님을 만났다는 예슬이는 "할아버지처럼 잘해 주셔서 커서 꼭 은혜에 보답하려 했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예슬이 모녀가 지만 스님 등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예슬이의 엄마 변보경(37)씨도 "대학까지 책임지겠다고 하시던 법장 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너무 일을 열심히 하셔서 이런 일이 생긴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조계종 사회국장 정업 스님이 예슬이를 격려하고 있다.


법장 스님의 상좌인 지만 스님과 도신 스님 등은 "법장 스님의 유지대로 결연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예슬이를 격려했다.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법장스님 애도【43신】

 

지난 5월 법장스님과 함께 한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장병들. 현대불교 자료사진.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이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원적을 애도하는 글을 보내왔다.

법장 스님은 지난 5월 민간 지도자 최초로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다음은 애도글 전문.



총무원장 법장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삼가 발원합니다.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장병일동
 

 

“나는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44신】

 

대승보살의 실천적 삶 살다 간 법장 스님


 

법장 스님.

“사람들이 원장스님 원장스님 하지만 난 그저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일 뿐이지요.”

총무원장 소임을 맡은 지 6개월쯤 지난 2003년 여름, 법장 스님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법장 스님의 45년 수행자 생활은 스님 스스로가 원했듯이 대중과 함께 한 삶이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성품 그대로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인자한 수행자였던 법장 스님. 법장 스님은 선 수행자로서, 종단의 최고 행정 전문가로서 선풍을 진작시키고 불교의 사회화ㆍ대중화ㆍ현대화를 이루기 위해 오롯이 대승보살의 실천적 삶을 살아 온 이 시대의 ‘원력보살’이었다.

법장 스님은 출가 뒤 덕숭산의 정혜사 능인선원과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용맹정진을 하며 5안거 동안 화두정진을 했다. 선의 본산인 수덕사 주지를 맡고 나서도 법장 스님의 수행정진은 계속됐다. 매일같이 정진을 거르지 않으며, 새벽예불은 반드시 올리고, 도량청소에 빠지지 않으며, 대중들과 함께 공양하고, 사하촌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다섯 가지 계율을 스스로 정하고 이를 지켰다.

평소 법장 스님은 ‘신심ㆍ원력ㆍ무사심(無私心)’을 수행자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후학들에게는 늘 “신심이 없으면 속인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수행에 정진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지켜 나가면서 한국 근대 선의 중흥조인 경허ㆍ만공ㆍ용성 대선사의 선풍을 진작시키는데도 앞장섰다. 1992년에는 ‘한국불교선학연구원’을 설립해 선 보급에 나섰으며, 선지종찰인 수덕사의 본래 모습을 되찾겠다는 계획 아래 수덕사 종합 중창불사를 벌였다.

총무원장이 돼서도 선 중흥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 선을 알리고, 외국인을 위한 참선 수행관을 짓겠다는 발원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추진했으며, 각종 선법회에 참석하는 등 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법장 스님은 수덕사 주지 시절부터 자타가 인정하는 종단의 최고 행정 전문가로도 꼽혔다. 1981년 조계종 중앙종회 사무처장을 시작으로 종무행정에 발을 들여놓은 법장 스님은 조계종 사회부장, 재무부장 등을 거치면서 실무능력을 쌓았다. 또 수덕사 주지로 있으면서 정부 및 자치단체 행정에 대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져진 이론과 실무능력은 총무원장으로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 정부 행정을 펼치면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법장 스님의 진면목은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법장 스님이 평생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수덕사 주지시절 불우한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 것이나, 교도소 재소자 교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나, 생명나눔실천회를 설립하고 생명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스님의 철학은 자연스럽게 인재양성으로 이어졌다. 수덕사 주지 당시 20년을 넘게 전국 선방의 대중공양을 해 온 스님은 총무원장이 돼서도 이를 거르지 않았다. 또 역대 총무원장 중 승가교육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쏟으면서 승가교육체계 확립에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청소년 대학생 등 인재를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법장 스님은“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법장 스님은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과 격의 없이 만나길 좋아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은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2년6개월의 총무원장 재임기간 중에 사람들을 만난 횟수는 역대 총무원장 중 최고다. 숨 돌릴 틈 없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법장 스님은 신도단체 대표나 신행단체 불자들 대부분을 만났다. 수덕사 주지 시절엔 한 달에 1만Km를 다녔을 정도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쌓았던 것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체면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품이었지만 어른을 공경하는데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깍듯했다. 누구보다 ‘승려노후복지’를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성품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모든 것을 항상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는 소신은 총무원장이 돼서도 변함이 없었다. 총무원 출입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감 없이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법장 스님은 언제나 마음을 열어놓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자상한 성격 때문에 때로는 “총무원장 격에 맞지 않게 작은 일에도 나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법장 스님은 “모두가 부처님 일인데 크고 작고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격 역시 이따금씩 ‘종단 정치’에서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능란한 정치보다는 원칙과 대화로 풀어나가려는 법장 스님의 스타일은 때로는 ‘종단 정치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법장 스님은 늘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수행자”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눈길을 가는 나그네여, 조심해서 발을 디뎌라. 오늘 네가 가는 그 행적이 뒷사람이 따르는 이정표가 되리니’.

법장 스님이 가장 즐겨 읽던 서산대사의 시구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었던 자유자재한 수행자였던 춘성 스님과, 평생 일꾼들과 똑같이 일했으면서도 뛰어난 수행력을 보였던 노스님(은사 원담 스님의 은사)을 사표로 삼았던 법장 스님은 후학들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 수행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출가한 사촌형에게서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당당하고 여유로운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던 법장 스님. 시자 진광 스님의 노트 뒷장에 남겨진 법장 스님의 친필 내용은 바로 그 옛날 사촌형에게서 보았던 당당하고 여유로운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다간 스님의 일생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법장스님 법신 수증위, 부검소견발표【45신】

 

"생명나눔의 보시, 스님 법구 영구 보존할 터"


 

9월 12일 법구 기증의 결정에 따라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이운되는 법장 스님의 법구. 현대불교자료사진.

인곡당 총무원장 법신의 장기상태 확인을 위한 부검절차가 9월 12일 월요일 저녁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동국대 일산불교병원(의무원장 이석현) 부검실에서 이뤄졌다.

장기상태 확인을 위한 부검에 참여한 인곡당 총무원장 법신 수증위원은 1차적으로 심장을 분리한 뒤 육안으로 관찰하고, 이후 좌측상완을 절단했다.

절단된 좌측상완은 병원 3층 수술실로 옮겨졌다. 법장 스님의 왼쪽 어께는 골(骨)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해 분리 후 완전 무균 공간인 골 은행(Bone Bank)에 냉동 보관됐다.

이에 앞서 동국대 일산불교병원은 이석현 의무원장 및 이원철 한방병원장과 주요 의료진들로 구성된 ‘'인곡당 총무원장 법신 수증 위원회'를 구성하고“법장스님께서 살아생전 생명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몸소 실천한 자비 정신을 받들어 이식이 가능한 뼈는 병원의 골 은행(Bone Bank)에 보관, 정말 필요한 분들께 기증되게 하여 생명 나눔의 뜻이 구현되게 할 것이며, 법신은 의학발전을 위한 교육 및 연구용으로 영구히 보존하여 후학양성에 밑거름이 되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검에 참여한 위원들은 이후 육안 소견을 수증위원회로 보고하여 병리 표본을 한 뒤 보다 세밀한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함께하는, 신뢰받는 종단' 만들기 혼신” 【46신】

 

법장 스님, 총무원장 재임시 업적


 



“이 자리를 떠나는 순간, 아니 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당선자로서의 기쁨은 다하고 숱한 번민과 고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총무원장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종단과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고뇌를 받아들이겠습니다.”(2003년 2월 24일 총무원장 당선 소감문 중)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법장 스님. 스님은 ‘숱한 번민과 고뇌만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

스님은 취임 100일을 맞아 제31대 총무원 종책기조 및 중점종책과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법장 스님은 ‘함께 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을 구현하기 위해 4대 종책 기조 아래 31개의 구체적 사업을 제시했다. 4대 종책 기조가 바로 △수행종풍 진작으로 거듭나는 종단 △참여 속에 함께하는 원융종단 △종도와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종단 △미래를 지향하는 효율적인 종단 실현이다.

 

2004년 12월 착공식을 거행한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 스님이 총무원장 당선 이후 가장 힘을 쏟았던 불사다. 현대불교자료사진.

법장 스님은 4대 종책 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조계종 최초로 ‘비구니 부장’을 임명했다. 비구니 차별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비구니 스님이 과반수가 넘고 여성의 역할이 커지는 사회흐름에 따라 비구니 스님을 부장에 임명했다”며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선거공약이었던 ‘비구니부 신설’은 스님 원적으로 요원해지게 됐다.

스님은 또 종단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승려노후복지를 위해 ‘자비의 보험금 나눔 운동’을 펼쳐 약정금 20억여 원을 확보했다. 10개 교구본사에 실비노양시설 설립을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시켰고, 세납 65세 이상 스님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승려노후복지 대책팀을 구성했다. “스님들의 노후가 보장되지 않으면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단이 안정될 수 없다”는 지론 때문이다.

종단의 근간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승가교육제도개선 사업도 추진했다. ‘승가교육개선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수차례 논의를 통해 승가교육개선안을 마련한 다음 현대적인 승가교육체계의 단초를 마련했다. “제대로 된 성직자가 되기 위해선 기초교육이 탄탄해야 한다”는 스님의 소신이 짙게 배여 있는 대목이다.

2004년에는 승풍 진작과 종단 위계질서 확립 차원에서 그 동안 끊겼던 대종사 법계 품서를 거행했다. 종지종풍 선양을 위해 종도 도의 국사 다례재를 봉행했을 뿐 아니라 〈조계종사〉 고증 세편을 발간해 종단사 정립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종단의 실질적인 화합과 중앙과 교구본사 간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처음으로 교구별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방의 소리를 현장에서 청취한 뒤 종무에 반영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소년소녀가장 돕기 1사찰 1가정 결연 후원 운동을 전개할 때다.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과 국장들이 종로구청 내 소년소녀가장과 결연할 때, 스님은 당신부터 결연한 소년소녀가장에게 대학 진학 시까지 장학금 지원을 약속했다. ‘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사에 남다른 노력

법장 스님은 총무원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리며 각종 ‘불사’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총무원장 당선 후 스님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추진했던 불사는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 한국불교 미래를 개척해 나갈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는 3년간 국고 122억원, 자부담 122억원 등 총 244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대지 9천여평 건물 4천여평으로 조성된다.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는 조계종 스님 및 신도, 불교단체, 문화예술단체들의 교육과 연수를 개발ㆍ유치하게 된다. 또 무형의 유산을 문화산업으로 개발할 뿐 아니라 국제간화선 체험센터를 운영, 한국 선불교사상을 내ㆍ외국인들에게 전파할 예정이다.

 

전통불교문화산업지원센터 착공식에서 연설하는 법장 스님. 현대불교자료사진.

2004년 말 거행된 착공식에서 법장 스님은 기념사를 통해 “전통불교문화사업지원센터는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스님은 부처님 뜻을 펴기 위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역대 선지식의 인연처였던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현지에서 대웅보전 낙성식을 봉행했다.

남북한 화합과 통일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 신계사 복원불사는 2007년까지 만세루, 3층 석탑, 요사채 복원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법장 스님은 낙성식에서 “소실되었던 신계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고 복원 의의를 밝혔다.

지진해일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민들을 위해 ‘자비의 탁발’로 20여억 원을 모금한 것은 종단 초유의 일로 기록될 만 하다. 부처님 당시 탁발 정신을 되살려 전국 교구본말사 스님들이 직접 저잣거리를 다니며 탁발을 했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 5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에 ‘조계종 마을’을 건립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 라투나푸라 지역에 건립된 조계종 마을에는 총 2억6천만 원의 ‘자비의 수재성금’이 투입돼 마을회관, 법당, 설법전, 보건소 등이 마련됐다.

조계종은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에 고아원과 양로원을 포함한 현대식 종합복지센터를 건립 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건립해 가칭 ‘코리안 부디즘 타운’을 만들 생각이나 법장 스님 원적으로 이 또한 불투명해 졌다.

법장 스님은 조계종의 총본산 격인 조계사와 총무원 성역화 사업을 이끌었다. 2004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차 준공식을 완료했으며, 1달 뒤에는 전체 공사를 회향하는 준공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총본산성역화불사기금 10억여 원도 모금해 향후 성역화 불사의 재정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여름에는 박물관 수장고 공사를 완료해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기반을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 공사 문제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공사 입찰부터 법장 스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관여된 부정과 비리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월간중앙’ 사태 등 원적 전까지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국내외 사회활동 활발

“부처님은 사람들이 강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영토 싸움을 할 때 강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하시며 싸움을 말렸다. 핵 포기는 모든 인류의 희망이지만 이는 성급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포기시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2005년 5월 미국 정부 대북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장 스님은 생전 ‘1달에 1만km’를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대외 활동이 왕성했다는 증거다. 특히 원적에 들기 전 가장 활발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원적에 드시기 전 미리 다 둘러보고 가시려고 그렇게 바쁘게 다니셨나 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5월 미국 방문시 법장 스님이 미국 정부 대북 관계자들을 만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요청했다.

법장 스님은 총무원장 재임 중 총 7곳의 국외를 순방했다. 그 중 원적에 들기 4개월 전인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이라크, 미국, 북한, 대만, 사할린, 일본 등 6곳을 순방했다.

이와 관련 법장 스님의 사형인 설정 스님(전 중앙종회의장)이 “종단 외부 문제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종단 일이나 잘 처리하라고 당부하면 법장 스님은 ‘승속이 따로 없다. 우리 종교계를 대표해 불교계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며 회고했다.

법장 스님의 이라크 방문 시 여러 가지 견해가 상반됐다. 민간 지도층 인사 최초로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이라크 자이툰 부대 성격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법장 스님은 “나는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라크인들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노고가 큰 우리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 장병 여러분의 정성을 다한 활동이 곧 부처님의 자비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조계종 총무원장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법장 스님은 백악관과 국무성 고위 관리들을 연쇄적으로 만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 회담 재개를 설득한 일은 국가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법장 스님은 방문 중 미국 고위 관리들을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디트러니 북핵 대사는 “스님의 말씀과 강렬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지속적으로 한미동맹의 결속을 다지고 종교 분야의 역할에 대해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8.15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명예대표로 방북해 남북간 화합의 마당을 마련한 것 또한 의미 있는 일로 평가받는다. 현직 총무원장으로는 최초로 방북했을 뿐 아니라 안경호 북측대표를 만나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대화로 풀어갈 것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법장 스님이 축전 개막행사에서 10만여명의 평양 시민들의 향해 ‘남북이 손잡고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에 대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매우 감동적인 연설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장 스님 이 외에도 대만을 방문해 포광산쓰 싱윈 대사와 만나 한국-대만 불교우호교류 협력방안을 이끌어 냈다. 또 강제 징용된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할린을 방문,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왔다.

‘함께 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을 만들기 위해 국내외를 마다하지 않고 바쁜 걸음을 했던 법장 스님. 스님은 원적 전 시자 진광 스님에게 평소 법문할 때 즐겨 인용하는 글귀를 적어줬다.

“아유일발낭(我有一鉢囊,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무구역무저(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다) 수수이불람(受受而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출출이불공(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2005년 9월 11일 오전 3시 50분 경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입도 없고 밑도 없는’ 바랑에 담고 원적에 들었다.
 

 

빈소 찾은 각계 인사 추모의 말【47신】

 



 

법장 스님 분향소가 차려진 조계사 극락전. 현대불교자료사진.

9월 11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원적하자 외국을 순방중인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빈소를 찾는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추모 열기가 뜨거워졌다.

다음은 11일 원적 후부터 12일 오후 3시까지 빈소를 찾은 사회 지도자층의 애도의 뜻을 정리했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 현대불교자료사진

 

 

 

나라위해 온 몸 실천하신 분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


이 실장은 “멕시코 등 중남미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아침 일찍 보고했다”며 “이 소식을 듣고 대통령뿐 아니라 권양숙 여사도 매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 이 실장은 “지금까지 법장스님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이 많았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씀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법장 스님에 대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온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라는 것은 불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스님은 비록 입적하셨지만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지켜봐 주시기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또 “법장스님의 뜻을 계승하고 이어받아 평화통일의 염원을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관련부처를 통해 앞으로 종단과 관련된 모든 일을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다.




 

전두환 前 대통령. 현대불교자료사진.

믿고 싶지 않을 정도

전두환 前 대통령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입적하셔서 무척 서운하다"며 "처음 법장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었다"고 애도했다.





 

이해찬 국무총리. 현대불교자료사진.

늘 각별한 보살핌 주셨건만

이해찬 국무총리



“법장 스님은 존경해오던 종교계 지도자로 평소 국정의 어려움을 상의할 때 마다 각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주셨는데 갑자기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비통해 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현대불교자료사진.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했는데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큰 스님께서 생전에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열반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현대불교자료사진.

갑작스런 열반 소식에 큰 슬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큰 스님의 수술 소식을 듣고 이번 주에 문안 가겠다고 말씀드렸고 스님께서도 반가워하시며 기다리고 계셨는데 갑작스러운 열반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다”며 “한국불교와 종단 대화합을 위해 애써 오셨던 법장 스님의 평소 원력이셨던 호국정신을 잘 받들어 계승하고, 큰 스님께서 극락왕생하시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스님 잃고 나니 외로움 느낀다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



“법장 스님이 주신 목탁 선물을 핸드폰에 잘 달고 다니면서 늘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다. 마음속으로 저를 많이 아껴주시던 스님을 잃고 나니 굉장한 외로움을 느낀다”며 사형인 설정 스님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얼마 전 뵈었는데 이리 무상할 수가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



“얼마 전 스님을 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원적에 드셔서 참으로 무상하고 애석하다”며 조의를 표했다.

또 정 장관은 “저에게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국사를 돌볼 때 항상 차분하게 임하라는 충고와 더불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를 주셨던 분”이라며 총무원장 스님을 회고했다.

정 장관은 “한국불교 중흥기에 크나큰 일을 앞두고 입적해 매우 애석하다. 그러나 스님께서 불교계를 위해 애쓴 것을 국민 모두 알고 있다. 후학들이 스님의 뜻을 잘 이어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법장 스님 입적을 애도했다.




남북 화해협력 뜻 이어야

정동영 통일부 장관



“종교계 큰 지도자면서,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법장스님의 입적이 믿겨지지 않는다. 평소 남북간 종교교류, 화해 협력에 크게 기여해주셨던 큰스님이 안 계신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며 “불교계가 남북 교류와 종교교류를 위해 헌신했던 법장 큰스님의 뜻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법장 스님의 원적을 애도했다.




문병 계획했었는데 황망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



“2주전에 아침, 저녁을 함께 한 적도 있었고 10일간 남미출장 다녀와 문병을 생각했었는데 황망하다”며 “영결식에도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온 국민 애도…슬픔 금치 못해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뉴스를 통해 스님의 건강이 회복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입적하셨다는 말을 듣고 슬픔을 금할 수 없다”며 “사부대중 모두를 위해 노력해주신 법장스님께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또 김 장관은 “신뢰받는 종단을 표명하고 불교를 바르게 세워주신 스님께 온 국민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며 “스님의 뜻을 성취하고 발전시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문제 조언해주셔서 빚진 심정

박선숙 환경부 차관



“법장 스님께서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늘 빚진 심정이었습니다”며 “너무나 허무한 일이라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고 설정 스님에게 말했다.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 현대불교자료사진.

사회통합 노력해온 훌륭한 지도자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



“갑자기 입적하시게 돼 너무나 놀랍고 슬프다”며 “법장 스님은 불교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을 위해서 노력해온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했다.




큰 뜻 받들겠다

김병준 청와대정책실장



“내외 개인적으로 사회활동을 같이했고 공직활동 시작 후에도 청불회장 소임을 맡아 인연이 깊었고 평소 많이 아껴주셔 의지되었는데 비보 접하여 황망하다”며 “종교활동뿐만 아니라 정부 분야까지 관심 가져주신 스님 큰 뜻 받들어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현대불교자료사진.

역사문화기념관 준공 보셨더라면

이명박 서울시장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준공을 앞두고 입적하신 것이 안타깝다”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불교시설만이 아니라 시민의 시설이니 만큼 조경문제 등 스님 유지 받들어 시민들과 국가의 중요한 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 현대불교자료사진.

과학자로서의 삶에 길잡이

황우석 서울대 교수



“강화 전등사에서 총무원장스님 쾌유 불공을 드리다가 빈소를 찾았다”는 황 박사는 “어제 뵐 때까지만 해도 좋으시더니 너무 큰 충격이다”며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어제(10일) 저녁에 친견한 법장스님은 맑은 얼굴에 목소리가 쩌렁쩌렁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면서 “모든 고통과 아픔은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는 큰 스님의 말씀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큰 스님은 과학자로 삶에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면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과학을 꽃피워 달라는 스님의 당부 말씀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망하게 가시니 망연자실

백낙청 남북공동행사준비위원회 상임대표



“법장 스님께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셔서 많은 역할을 해주셨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시니 망연자실할 뿐입니다”고 말했다.

 

법장 대종사 법계 품서식 봉행【48신】

 



 

대종사 법계증과 불자 등을 영전에 봉정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 대종사 법계 품서식이 9월 13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됐다.

 

영전에 대종사 법계증과 불자 휘장 등이 봉정됐다.


 

화계사 국제선원 스님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품서식에서는 종정 법전 스님을 대신해 총무원장 권한대행 현고 스님과 사형 설정 스님 등이 대종사 법계증과 불자, 휘장 등을 법장 스님 영전에 봉정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분향하고 있는 모습.


 

김광삼 사장 등 현대불교신문사 임직원이 분향하고 있다.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가수 김흥국 씨가 삼배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김광삼 사장을 비롯한 현대불교신문사 임직원 일동과 이한동 前 국무총리, 정몽준 회장, 가수 김흥국씨, 화계사 국제선원 스님들이 빈소를 찾아 분향했다.
 

 

법장 스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49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는 인곡당 법장 대종사 영정.


조계종 기획실장 법안 스님은 "오늘 오후 2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법장 스님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이 봉행된다"고 9월 13일 밝혔다.

 

 

법장스님 법구 동국대 일산병원 기증【속보】

 

15일 영결식후 다비식 취소…장기기증 캠페인


 



 

조계사에서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이운되는 법장 스님 법구.



9월 11일 원적에 든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가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인곡당 법장 대종사 장의위원회(위원장 현고, 이하 장의위)는 9월 1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전 법장 스님의 뜻에 따라 법구를 기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의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생전에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을 역임하며 난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한 장기기증운동을 이끌었던 법장 스님의 유지에 따라 법구를 기증키로 했다"고 전했다.

 

운구차로 이동되는 법장 스님의 법구.


 

법장 스님의 법구가 조계사 도량에서 이운되고 있다.



장의위는 또 "법구 기증 결정에 따라 15일 영결식 이후 수덕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다비식은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13일부터는 조계사 대웅전 조문 접수처에서 여러 스님들과 신도들이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할 수 있도록 창구를 개설하여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의위 대변인 법안 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은 "법장 스님이 1994년도에 시신기증 서약을 하셨던 것을 오늘 아침 확인했다"며 "문도회와 장의위가 장시간 논의를 한 결과 법구를 기증키로 했다"고 말했다.

 

눈물짓는 신도들.


 

조계사 극락전에서 나오는 법장 스님 법구.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도 "법구를 기증하는 것이 스님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고 또 실제로 일부 상좌 스님들이 반대를 했지만 법장 스님이 생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법구 기증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설정 스님의 장기기증 배경 설명.


 

법장 스님의 장기기증 서약서.




사부대중 오열 속 법구 일산병원으로 출발


기자회견 후 조계사 극락전에 안치된 법구는 2000여 사부대중의 오열 속에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이운됐다.

극락전을 나와 대웅전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들른 법구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운구차에 실려 일산으로 향했다.

출처 : 수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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