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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섹스

淸潭 2024. 12. 16. 16:44

결혼과 섹스

요즘은 예전처럼 결혼을 통해서만 섹스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섹스가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혼하고부터다.

결혼하지 않는 연인들은 섹스를 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지만 부부는 서로의 눈짓 하나만 필요하다. 부부는 섹스를 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섹스다. 사랑이 아무리 깊더라도 섹스가 없다면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다. 섹스는 원초적인 쾌락을 선사함과 동시에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섹스의 자유로움을 얻는 대신 섹스 대상자에 대한 자유로움이 사라진다는 것이 있다. 결혼 생활 내내 배우자에게 성적 욕망을 끊임없이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혼은 부부를 영원히 사랑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저녁은 짧고 낮이 길기 때문이다.

신혼의 달콤함

<화가의 허니문> 1864년경, 캔버스에 유채, 83×77, 보스턴 미술관 소장
결혼해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시기가 허니문이다. 허니문은 꿈이다. 행복의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설탕처럼 달콤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커피처럼 뜨거운 것이 허니문이다.
하지만 허니문의 시계는 멈추었다. 사랑하는 시간만 있기 때문이다. 사랑만 있는 허니문에 섹스는 생활의 활력이 아니라 생활의 전부다. 부부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사랑하기에 나무나 바빠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어서다.

그렇기 때문에 허니문 기간 동안에 했던 섹스 횟수는 부부가 남은 평생을 노력을 해도 채워질 수 없을 정도다. 섹스하는 횟수가 허니문 기간 동안 그리 많지 않다면 성직자로서의 자질이 충분한 사람일 정도다.

레이튼의 <화가의 허니문>은 손만 마주 잡고 있어도 행복한 신혼부부의 모습을 표현했다.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온몸이 빛나고 있다. 떨어지기 싫은지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는 부부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퍼져 있다.

화가의 오른손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남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화가는 왼손으로는 아내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꼭 잡고 있다. 남편의 손길에 아내는 부끄러운 듯 뺨에 홍조를 띠고 있다.

두 사람 뒤에 있는 탐스러운 열매가 열려 있는 화분은 사랑의 결실을 의미한다. 프레데릭 레이튼(1830~1896)은 이 작품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사랑하는 아내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화가를 표현했다.

레이튼은 서른셋에 자신을 모델로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 공개하기를 꺼려했다. 허니문을 아름답게 표현한 이 작품과 달리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이 작품을 통해 레이튼은 현실세계에서 찾지 못했던 이상형을 그림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했다.

성적 욕망을 해갈시켜 주는 결혼

<자동인형 조지와 결혼했다> 1920년, 펜과 연필 및 먹물에 수채, 콜라주, 42×30, 베를린 갤러리 소장

무엇이든지 같은 일을 반복하면 흥미를 잃는 것처럼 결혼도 마찬가지다. 허니문 기간 동안 사랑 하나만 가지고 살았던 것이 눈앞에 현실이 보이면서부터는 얼굴에 점 하나도 신경이 쓰인다.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매일같이 서로의 몸을 탐닉하다 보니 더 이상 새로운 섹스의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민감하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과 같이 똑같은 상대와 환경의 변화 없이 섹스를 하면 흥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결혼하고부터 섹스에 자유스러워지면서 더욱더 탐닉하게 되고 결혼 후 성적 욕망을 해갈하면서부터 남자는 섹스에 냉정해진다. 남자에게 섹스의 시간은 짧고 현실은 길기 때문이다.

그로스의 <자동인형 조지와 결혼했다>는 결혼 후의 부부의 섹스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1920년 5월 다움이 자신의 현학적인 자동인형 ‘조지’와 결혼하다, 존 하트필드는 그것을 무척 기뻐하다>다. 그로스는 1920년 애인 루이제 페터와 결혼한 후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을 자동인형으로 표현했다.

화면 왼쪽 상단의 있는 여인의 사진이 그로스의 아내 루이제 페터다. 그는 애인의 애칭(Maud)의 철자를 뒤바꾸어 놓아 다움(Daum)이라 표기했다.

모자를 쓰고 흰색의 외음부가 들어난 속옷을 입고 있는 여성 옆에 작은 기계인형 남자가 서 있다. 남자의 손은 여성의 오른쪽 젖가슴을 만지고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붉은색 홍조를 띠고 있는 여성의 뺨은 남자의 손길로 인해 성적 욕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온통 손잡이를 돌려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기계로 되어 있는 남성은 인간적인 매력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남자의 노동량은 머리에 있는 숫자로만 표시될 뿐이다. 남자 몸에 있는 톱니바퀴는 사회를 의미하며 숫자는 생활인으로서 남자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여자의 하얀색 속옷은 신혼을 암시하고 있지만 속옷이 벌어져 외음부가 노출된 것은 여자는 결혼한 후에는 성적 욕구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자와 달리 결혼 후에 남자는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에 남자를 기계로 묘사했다.

결혼 후 욕망의 그늘에서 벗어난 여자는 변해버린 남자의 모습에 당황해 그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고 있다.

조지 그로스(1893~1959)의 이 작품은 제1회 다다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전시회의 광고 전단지에 그로스의 출판업자 빌란트 헤르츠펠테는 세부 사항까지 들어 “그로스는 곧 결혼한다.

그에게 결혼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회적인 사건이다”라고 작품 설명을 했다. 이 작품 제목에 있는 존 하트필드는 그로스와 친분관계에 있었던 출판업자다. 전통적인 미술시장에 관심이 없었던 그로스는 미술관을 찾는 일부 계층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다가갈 다른 통로를 찾았는데 그것이 출판이었다.

두 연인의 모습이 대조적인 것이 특징인 이 작품에서 그로스는 조르주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아 건축물들을 간결하게 처리했다.
[출처] 결혼과 섹스|작성자 새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