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장미에 관한 漢詩

淸潭 2020. 1. 24. 19:44

카페 회원 박동창 선생께서 화사한 6월의 꽃 장미 사진을 올려 주셨기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낙민 장달수

 

 

=차례=

*화왕가花王歌-설총

*장미(薔薇) -이규보

*사월 십일일에 손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다가 수풀 사이에서 장미를 발견하였는데 이규보

*진생 공도(晉生公度)가 정원 손질하는 것을 보고 동파(東坡)의 시운을 취하여 지어 주다 진생은 나의 처형인데, 이때 한집에 같이 있었다. -이규보

*늦은 봄에 앓다가 일어나다 2-이규보

*풍월루(風月樓) -노공필(盧公弼)

*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수재를 치하하는 30[賀李秀才就登第還鄕三十韻]

-포은 정몽주(鄭夢周)

*여름날에 사계화(四季花)를 노래하다. -목은 이색

*한원 기 진양제생(翰院寄晉陽諸生) -정이오(鄭以吾)

*광주 북루(廣州北樓) -권담(權湛)

*장미(薔薇) - 이개(李塏)

*장미(薔薇) -성삼문

*비를 대하여 청주의 동헌에 제하다對雨題淸州東軒-허백당 성현

*옥원성 안의 장미꽃이 반쯤 피었다沃原城裏薔薇半開-허백당 성현

*사헌부 뜰에 핀 장미꽃霜臺庭中薔薇-성현

*즉사(卽事) 1 서거정

*즉사(卽事) 2 -서거정

*즉사(卽事) 3 서거정

*장미(薔薇) -서거정

*홍일휴의 시에 차운하다. -서거정

*작은 못小塘의 즉사(卽事) -서거정

*조그마한 병풍(屛風)에 시를 써 주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 병풍의 뒷면에 쓰다

-서거정

*빨간 복사꽃은 이미 졌고 노란 장미꽃이 성하게 피었으므로 짓다 서거정

*새벽에 일어나 잠시 앉아서 읊다 -서거정

*마전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 2次麻田東軒詩 二首-용헌 이원

*변춘정의 시에 차운하다次卞春亭詩-용헌 이원

*남궁낭관계축(南宮郞官契軸) -용재 이행

*사월 이십육일 동궁(東宮)의 이어소(移御所) 직사(直舍)의 벽에 적다. -이행

*태헌의 시에 차운하여 의원 상인에게 주다次苔軒韻贈義圓上人-월정 윤근수

*사순(학봉 김성일)동고시에 차운하다次士純東皐韻-송암 권호문

*앞의 운자를 세 번째 사용하다三疊-송암 권호문

*장미(薔薇) -옥담 이응희

*초여름初夏-지봉 이수광

*동명(김세렴)사상록에 씀[題東溟槎上錄] -김시국(金蓍國)

*궁사(宮詞) 한 시인이 지은 장신궁(長信宮) 사시사(四時詞)를 아이들이 전해 외우기에 이를 듣고 본떠서 지어 보았다. -아계 이산해

*새벽에 읊다. -이산해

*천주(泉州) 동안현(同安縣) 태생 유만진(劉萬進)은 좋은 선비인데, 길을 떠날 임시에 부채에 시를 적어주기를 청하는 뜻이 매우 간절하기에 붓을 달려 적어주었다. -이산해

*신헌의 시축 운에 차운하여 주다[贈信軒次軸中韻] -신흠

*거련에 갔을 때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到車輦薔薇盛開] -상촌 신흠

*해양(海陽)에서 소회(所懷)를 기록하다 교산 허균

*초여름 성중(省中)에서 짓다 허균

*해산선몽요(海山仙夢謠) -허균

*장미(薔薇) -택당 이식

*억석행憶昔行-낙전당 신익성

*목백의 운자에 맞춰 짓다次牧伯韻-동주 이민구

*봄날春事-동주 이민구

*차운하여 어떤 이에게 답하다 신미년(1631) 次韻答人 辛未-고산 윤선도

*장미로(薔薇露) -성호 이익의 사설 중에서

*목계에서 김 좌랑 상우 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다[木溪訪金佐郞 商雨 不遇] -다산 정약용

*하담을 떠나며[離荷潭] 16일이다 다산 정약용

*여름날 전원의 여러 가지 흥취를 가지고 범양 이가의 시체를 모방하여 이십사 수를 짓다[夏日田園雜興效范楊二家體二十四首] 신묘년 다산 정약용

*한가로이 소일하며 청장관 이덕무

*의고16擬古 十六首-무명자 윤기

*영동사 무명자 윤기

*두강 길을 가던 중에 짓다斗江路中作-미산 한 장석

*현재에서 봄날 낮에 마음 가는 대로 짓다縣齋春晝謾成-한장석

*황곡 옛 거처를 방문하다訪篁谷舊居-미산 한장석

*기노사(기정진) 선생에 대한 만사奇蘆沙先生挽-매천 황현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獨坐書懷-운양 김윤식

*기정이 어젯밤에 술에 취하여 정현도 집에서 잤다. 석촌의 두 선비가 돌아갔다. 기정이 남루(南樓)로 나를 방문하여 어제 운으로 시를 지었다. -하재 지규식

*심중경(沈中卿) 의윤(宜允) 에게 답함 - 기해년(1899, 광무 3) 119최익현

*신래(新來)회자(回刺) -연려실기술에서


 

화왕가花王歌-설총

 

 

신문왕(神文王)이 일찍이 연거(燕居) 중에 설총(薛聰)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비로소 개고 향기로운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 고상한 담론과 재미있는 우스개로 울적한 마음을 풀 수 있겠소. 그대는 틀림없이 특별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터이니, 나에게 이야기해 주시오.”

 

하니, 설총이 답하기를,

 

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 화왕(花王)이 처음 왔을 때 향원(香園)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삼춘(三春)이 되자 고운 모습을 드러내어 온갖 꽃을 능가하여 홀로 특출하였습니다. 이에 곱고 예쁜 꽃들이 너도나도 분주히 달려와 화왕을 알현하였습니다. 문득 아리따운 여인이 찾아왔는데 이름이 장미(薔薇)라 하였습니다. 얼굴이 불그레하였고 이가 하얬으며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쁘게 옷을 입었습니다. 사뿐사뿐 고운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와 말하기를 첩이 왕의 훌륭한 덕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안에서 잠자리를 모실까 하오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또 한 장인(丈人)이 왔는데, 이름이 백두옹(白頭翁)이라 하였습니다.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둘렀는데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습니다. 비틀비틀 걸어서 구부정한 자세로 다가와 말하기를 저는 도성 바깥 큰길가에 삽니다. 삼가 생각건대, 좌우에서 공급하여 고량진미가 비록 풍족하더라도 상자 속에는 반드시 좋은 약良藥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마(絲麻)가 있더라도 관괴(菅蒯)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왕께서는 그러할 뜻이 있습니까?’ 하였습니다. 화왕이 말하기를 장인의 말도 이치에 맞지만, 미인은 얻기가 어려우니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하였습니다. 장인이 말하기를 무릇 군왕이 된 자치고 노성인(老成人)을 가까이해서 흥하지 아니한 이가 없고 요염한 자를 가까이해서 망하지 아니한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염한 자는 마음에 들기가 쉽고 노성인은 친근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하희(夏姬)가 진()나라를 망하게 하였고서시(西施)가 오()나라를 멸망시켰으며,맹가(孟軻)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다가 죽었고풍당(馮唐)은 낮은 벼슬자리에서 머리가 허옇게 세었습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였으니, 저인들 어쩌겠습니까.’ 하니, 화왕이 사과하기를 나의 허물이오.’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신문왕이 부끄러운 얼굴빛으로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풍자로 깨우쳐 주는 뜻이 깊고 간절하니, 그것을 적어서 경계하는 말로 삼으리라.” 하였다.

 

 

전각이 깊고 엄숙한데 신하가 앞에 있어 / 殿閣深嚴臣在前

임금을 위해서 화왕가를 노래했네 / 爲君王歌花王歌

화왕이 봄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니 / 花王鎭在艶陽國

진홍색 연자색 꽃이 가지마다 분분했소 / 深紅淺紫紛枝柯

싱긋 한번 웃음에 온갖 교태 생겨나니 / 嫣然一笑生百態

임금의 마음이 쉬이 잘못될까 염려했소 / 却恐荃心易流訛

누가 알리오, 골짝 속의 머리 허연 백두옹이 / 誰知谷裏頭雪白

노성한 군자와 같은 부류인 것을 / 老成君子還同科

봄이 와 온갖 잡초에 함께 뒤덮여서 / 春來百草共蕪沒

천거할 길이 없으니 그것을 어이하오 / 薦進無路其柰何

나라를 이룰지 엎을지를 일찍 구별해야 하니 / 城成城傾宜早別

색황이 어찌 현인을 가까이하는 것만 하리오 / 色荒何似親賢多

이 한마디에 미혹 풀린 신라의 임금이 / 一語解惑尼師今

계림을 풍동시켜 태화를 이루었네 / 風動雞林變太和

산과 들을 다 다녀 꽃향기를 모으니 / 凌山搜野採芳馨

난손과 두약이 빽빽하게 늘어섰네 / 蘭蓀杜若森相羅

훌륭해라, 당시의 설총 부자여 / 美哉當時薛夫子

보물 피리 소리에 온갖 풍파가 멎었구나 / 寶笛聲中息萬波

 

 

 장미(薔薇) -이규보

 

 

요염한 꽃송이 녹음 사이에 빛나니 / 穠艶煌煌綠暗間 

금분으로 단장하고 교태를 부리누나 / 巧粧金粉媚嬌顔 

가시가 돋았다 해서 꽃의 흠은 아니리니 / 莫因帶刺爲花累 

꺾으려는 손길 막으려 함인가 / 意欲防人取次攀

 

백낙천은 장미는 가시를 가져 꺾기에 응당 게으르리.’ 하였다. 

 

 사월 십일일에 손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다가 수풀 사이에서 장미를 발견하였는데 오랫동안 풀들에 시달려 생기가 매우 미약하였다. 내가 바로 주변의 풀들을 제거한 뒤에 흙으로 북돋아 주고 시렁으로 괴어준 지 며칠이 지나 가보니 잎이 벌써 무성하고 꽃도 활짝 피었다. 여기에 느낀 바 있어 장단구(長短句)를 지어 전이지(全履之)에게 보이다 -이규보

 

 

 내가 동산 가꾸기에 게을러 / 我懶不理園

 뜨내기 풀들이 멋대로 우거졌네 / 旅草生離離

 오늘 아침 수풀을 헤치다 보니 / 今朝撥叢薄

 거기에 장미 서너 포기가 / 中有薔薇數四枝

 병든 뿌리는 지반에 드러나 거의 마르고 / 炳根露地已垂損

 약한 줄기는 바람에 못 이겨 지쳤네 / 弱質凌風不自持

 길게 한숨 쉬고 자위(自慰)도 하며 / 長吁復自吊

 연장 가져다가 잡초들을 제거하니 / 手錍剪榛椔

 주변이 씻은 듯 깨끗해지고 / 地面凈如洗

 기이한 자태가 훤히 드러났네 / 煌煌擢奇姿

 기름진 흙으로 북돋아 주고 / 膏泥自封植

 시렁을 매어 괴어주니 / 畫架仍撑搘

 아황빛 꽃은 향내를 풍기고 / 緗英媚香艶

 보랏빛 잎은 윤기를 더해 가네 / 紺菓添華滋

 근본은 하늘의 조화이지만 / 初雖託天力

 절반은 나의 공력이기도 하지 / 半亦偸吾私

 

처음에는 달기(妲己)가 보배 장막에 숨은 듯하더니 / 始嫌妲姬隱寶障

이제는 서시(西施)가 깊은 휘장에서 나온 듯하네 / 已見西子出深帳

 

그대는 유랑이 현도에 공연히 갔던 일을 보지 않았던가 / 君不見劉郞玄都空獨來

복숭아꽃 다 지고 귀리와 아욱만 보았다네 / 桃花淨盡但見䴏麥與兔葵

 

, 두목이 호주에 늦게 갔던 일을 보지 않았던가 / 又不見杜牧湖州去較遲

붉은 꽃 다 지고 짙은 그늘에 열매가 열렸었네 / 深紅落盡已是成陰結子時

 

그 뜻은 은근하나 보지는 못하여 / 著意殷勤猶未見

 쓸쓸히 봄 보내며 섭섭하기만 했는데 / 送春寂寞空含悲

 어쩌다가 여기 초당의 이 거사는 / 何如草堂李居士

 좋은 꽃에 잔까지 들게 되었을까 / 意外逢花對酌酒一色

 사물에 비교하여 깊은 뜻 굴리기도 하고 / 寓物詑深意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니 / 靜坐復深思

 

이는 꽃만이 아니라 / 若此非獨花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네 / 凡物亦如之

 명월주를 보려면 / 欲見明月珠

 진흙부터 걸러야 하고 / 先灑泥沙淄

 어진 후비를 구하려면 / 欲求后妃賢

 총첩(寵妾)을 없애야 하며 / 無使寵嬖隨

 뛰어난 인재를 뽑으려면 / 欲擇人材秀

 참신(讒臣)부터 제거해야 하네 / 先去讒邪欺

 이 시에 깊은 의미 있으니 / 此詩有深味

 아이들에게는 쉬 말하지 마소 / 莫敎兒輩知 

 

진생 공도(晉生公度)가 정원 손질하는 것을 보고 동파(東坡)의 시운을 취하여 지어 주다 진생은 나의 처형인데, 이때 한집에 같이 있었다. -이규보 

 

동풍 불어 한 줄기 가랑비 개니 / 東風吹散一霎雨

축축한 내 봄 섬돌에 낮게 꼈구나 / 濕煙低惹尋春塢 

농서의 광객이 늙은데다가 어리석기까지 하여 / 隴西狂客老更癡 

용노와 판부들도 오히려 업신여기네 / 傭奴販婦猶欺侮

 

귀밑털 헝크러졌으나 게을러서 빗지 않았고 / 醉鬢鬅鬠慵不梳 

남쪽 창가에서 정오가 다 되도록 누워 자네 / 南窓尸寢朝侵午 

근래 옛친구들 사절하여 버리고 / 邇來謝絶舊交遊 

마을 노인들과 서로 너니내니 한다네 / 獨許里翁相爾汝

 

장미꽃 몇 번이나 피고 졌으며 / 薔薇幾度自開落 

꾀꼬리 울고 제비 춤춘 건 또 몇 번인가 / 黃栗留鳴漆燕舞 

질장구 치며 오오하고 노래하기만 즐기노니 / 鳴鳴只樂鼓缶歌 

헐떡이며 독을 안는 고생할 필요가 뭔가 / 搰搰何須抱甕苦

 

스스로 천지도 하나의 여관이라 하였으니 / 自言天地一逆旅 

하물며 이 집이야 누가 주인이랄 수 있겠는가 / 況此屋廬誰是主 

동원에 풀 우거져도 일찍이 매지 않았으니 / 東園草沒不曾開 

잎이 무성하여 봄 꽃이 교태부리기 어렵구나 / 翳葉春紅難媚嫵

 

부럽도다 그대 홀로 옛 원공을 사모하여 / 羨君獨慕古園公 

대와 꽃 배양하려 자주 북주는 것이 / 護竹養花頻擁土 

오이를 심음에 소 동릉을 기필할 게 뭐랴 / 種瓜豈必召東陵 

농사 배워 농사꾼 되기 즐기네 / 學稼肯爲樊老圃

 

손수 심은 도리가 모두 그늘 이루어 / 手栽桃李摠成陰 

집 덮고 담까지 덮으니 처소가 희미하네 / 覆屋低墻迷處所 

술 훔치다 비사랑이 시키는 대로 하고 / 盜酒從敎比舍郞 

이웃집 계집 북 던져도 그대로 둔다 / 投梭任却隣家女

 

청명한 시절에 푸른 잔디 밟으며 산보하다가 / 淸明散步綠莎中 

창가에서 시 짓는 나를 넘겨다 보며 웃는구나 / 笑我詩窓鶴頸俯 

불러와서 함께 서너 잔 마셨는데 / 呼來共酌數四杯 

손수 향그러운 나물 뜯어다 친히 안주 만들었네 / 手摘香蔬親自煮

 

술 취하자 떠드는 소리 시끄러우니 / 酒酣呼叫聲喧喧 

가지 위의 한가한 새들 취한 말에 놀라네 / 枝上閑禽驚醉語 

쓸쓸한 내 마음 알아 주는 사람 없으니 / 紛吾落魄無人知 

두견새처럼 슬픈 소리로 친우의 이름 부르네 / 口自呼名如杜宇

 

은퇴하니 비로소 유거의 맛 알겠고 / 退藏始得幽居味 

취도록 마시고 노래 부르며 배를 두드리네 / 飽食醉歌捫腹鼓 

그대와 함께 지내는 것 점점 즐거워지니 / 從君俯仰差可樂 

기필코 고고한 소부와 허유를 배울 게 뭐랴 / 何必孤高學巢許 

위랑으로 하여금 장노를 생각하여 / 免使韋郞憶張老 

공연히 멀고 험한 천단산 길 찾는 것 면하게 하라 / 空訪天壇路脩阻

 

위의방(韋義方)의 처형인 장노(張老)가 의방의 포전(圃田)에 물을 주니 친척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으므로, 장노가 아내와 함께 천단산(天壇山)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위의방이 찾아가 보니 참으로 신선의 마을이었다. 그 뒤에 다시 찾아갔으나 첩첩 산과 겹겹 물이 가로막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원컨대 그대는 전포나 가꾸면서 이대로 지내소 / 願君理園繼庾翼 

벼슬 얻는 것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니까 / 得印寧非天所予 

 

늦은 봄에 앓다가 일어나다 2-이규보 

 

숲에 처음 나타난 꾀꼬리는 신부인 듯 / 林鸎初至如新婦 

제집으로 돌아온 제비는 흡사 옛 친구 같네 / 巢燕重來似故人 

풍경이 점점 아름다워 보기 좋은데 / 景物漸佳堪翫惜 

병중에 꽃핀 봄철 헛되이 보냈노라 / 病中虛度百花春

 

 

병들어 백화 난만했던 봄을 헛되이 보내고 / 病中虛度百花紅 

일어나 보니 꿈 깬 듯 허전하네 / 病起方驚一夢空 

아직도 장미꽃 몇 송이 피어 있어 / 堆有薔薇餘數萼 

귀여운 미소로 노쇠한 나를 달래누나 / 尙能嬌笑慰衰翁 

 

풍월루(風月樓) -노공필(盧公弼) 

 

장미꽃 피어남은 봄을 이을 듯이 / 薔薇花發續殘春

풍월루 높이 솟아 한 점 티끌 없어라 / 風月樓高絶點塵

몹시 취해 돌아오려 해도 아니 됨은 / 爛醉欲歸歸不得

밝은 달 못에 가득 다시 나를 붙든다네 / 滿池明月更留人

 

 

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수재를 치하하는 30[賀李秀才就登第還鄕三十韻]

 -포은 정몽주(鄭夢周)

 

 

위에서 첫 정사를 근심하니 / 上乃憂初政

뉘 능히 만기(임금이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를 도와 드리랴 / 疇能共萬幾

초야에 숨은 선비를 생각하시어 / 念玆岩穴隱

모조리 그물로 거두려 하사 / 欲以網羅圍

활짝 대궐 문을 열어 놓으시고 / 穆穆開閶闔

와아 과거를 보이오시니 / 侁侁試禮闈

산을 벗겨서 재목 거두듯 / 赭山收杞梓

바다를 걸러서 구슬 건지듯 / 漉海竭珠璣

그대 매우 총명하여서 / 之子聰明甚

겨룰 이 적었네, 15세부터 / 成童比幷稀

글을 읽어 성현의 도 공부하고 / 讀書窮聖域

스승 찾아 서울로 달려 올라와 / 負笈走王畿

성대라, 바다에 떼 타지 않고 / 道泰辭桴海

봄날 기수에 목욕하러 왔네 / 春暄趁浴沂

시를 토론하니 훈고 끼치고 / 談詩遺訓詁

역에도 정통하여 정미하여서 / 玩易貫精微

마의 부를 임금께 드릴 만하고 / 楊馬賦堪獻

마음에는 안건 되기를 희망하였네 / 顔騫心所希

추위 더위 겪으며 근궁에서 공부하다가 / 芹宮閱寒暑

월중의 계수를 꺾으려 노니 / 桂窟向芬菲

누가 그 글재주 감히 겨루리 / 戰藝才無敵

평소의 운대로 뽐내었네 / 掦眉願莫違

어전에 방목을 펼쳐 내걸고 / 丹墀張虎榜

궁중에 용기를 높이 세우니 / 紫殿卓龍旂

옥순들 가지런히 임금의 사랑받아 / 玉筍齊承寵

천안이 대견하사 웃음 띄셨네 / 天顔爲霽威

여염에는 호창하는 소리 들리고 / 閭閻聽呵唱

수레와 일산에 영광이 넘쳐 / 軒蓋動光輝

양 옆 길에 사람들 저자와 같고 / 夾道人如市

안장 나란히 말들도 흥이 나는 듯 / 聯鞍馬似飛

조신들 문하에 다투어 천거 / 朝臣咸薦引

학도들은 선배로 모두 다 앙모 / 學者盡瞻依

내 문득 자당을 꿈에 뵈옵고 / 忽夢萱堂愛

이제 바로 채의로 고향 가려네 / 尋將綵服歸

현관들 영접하여 다투어 공궤 / 縣官迎餽餼

길목에 관리들 어찌 감히 수하를 하리 / 津吏敢訶譏

저녁에 머무니 숲은 어둑어둑 / 夕次林初瞑

새벽에 길 떠나니 이슬은 마르지 않았네 / 晨征露未晞

오늘 찬 옥소리 쟁그렁 쟁그렁 / 玉鳴今日佩

어젯날 입던 옷 금의로 바꾸었네 / 錦換往時衣

점차 예전에 노닐던 곳 지나다가 / 漸認曾遊處

옛날 낚시하던 물가를 만났네 / 行逢舊釣磯

집에선 까치 울었다 좋아라고들 / 家人占喜鵲

어린애는 거미줄 쓰느라 분주 / 稚子掃蛜蝛

맹모는 예전에 집 옮기더니 / 孟母昔遷舍

소처는 이제야 베틀 내리네 / 蘇妻方下機

이웃들이 들에 나와 기다리다가 / 鄕隣候郊路

추종이 제 앞에 와 다다르니 / 騶從到門扉

태수가 술잔 들어 치하를 하고 / 太守稱觴賀

양친이 느껴 눈물 흘리네 / 雙親有淚揮

아아, 나는 조정에서 쫓겨 나와 / 蹇予遭逐

이 좋은 성대에 한숨만 쉬네 / 盛代每歔欷

녹수에 이르러 멋대로 노니 / 綠水信容與

청산은 애초에 시비 없는 것 / 靑山無是非

갈매기 물결은 넓디 넓은데 / 鷗波深浩浩

봉궐을 바라보니 높디높아라 / 鳳闕望巍巍

풍운의 좋은 기회 저버렸으니 / 已負風雲會

일월(임금)의 빛 비치기 어려워라만 / 難增日月暉

대견할손, 그대는 솟구쳐 올라 / 看君騰踏去

한원의 장미를 곧 보겠구먼 / 翰院賞薔薇

 

 

 

여름날에 사계화(四季花)를 노래하다. -목은 이색

 

 

화려하게도 흐드러진 작약꽃과 장미꽃이 / 芍藥薔薇麗更繁

여름 한 철 답답하게 부잣집 갇혀 있기보단 / 沈沈夏日鎖侯門

우리 집 사계화가 사계절 봄빛을 다투면서 / 爭如四季長春色

별로 촌스럽지 않게 꾸며 주는 게 더 좋아라 / 粧點吾家不甚村

 

 

 

한원 기 진양제생(翰院寄晉陽諸生) -정이오(鄭以吾)

 

 

3월 강남에 천기가 새롭거니 / 三月江南天氣新

여러분은 누구와 더불어 청춘을 즐기는가 / 諸生誰與賞靑春

한림의 취한 손은 도무지 일이 없어 / 翰林醉客渾無事

보슬비 오는 장미꽃 앞에서 먼 사람을 꿈꾼다 / 細雨薔薇夢遠人

 

 

 

광주 북루(廣州北樓) -권담(權湛)

 

 

바람이 장미를 흔들어 꽃은 벌써 다 지고 / 風澸薔薇已謝花

푸른 그늘 땅에 가득하거니 얼마나 서러운가 / 綠陰滿地恨何多

젊어서 노래하고 춤추기는 한 다락의 달이었는데 / 少年歌舞一樓月

10년 만에 돌아오매 두 귓머리 다 세었네 / 十載歸來兩鬢華

 

 

 

장미(薔薇) - 이개(李塏)

 

 

향기 감도는 정원에 꽃 그림자가 그윽한데 / 香浮一院影沈沈

나비 춤추고 벌은 날며 어쩔 줄을 모르네 / 蝶舞蜂顚不自禁

나도 그윽한 흥취를 견디지 못하여 / 我亦未堪幽興惱

꽃에 반해 온종일 애써 시를 읊노라 / 苦吟終日坐花淫

 

 

장미(薔薇) -성삼문

 

아침 햇살 떠올라 담장 위를 비출 때 / 墻頭耀初日

새 단장 곱게 하고 술잔 속에 잠겼으니 / 杯底醮新粧

죽마 타던 어린 시절 동쪽 담장 지나며 / 因思騎竹馬

남모르게 꺾어 보던 그때가 생각나네 / 偸折過東墻

 

 

 

비를 대하여 청주의 동헌에 제하다對雨題淸州東軒-허백당 성현

 

 

그림 병풍 높은 베개에 비단 휘장 둘렀는데 / 畫屛高枕掩羅幃

별원에 사람 없고 비파 소리도 드물어라 / 別院無人瑟已希

발 가득 서늘한 기운에 잠을 막 깨고 나니 / 爽氣滿簾新睡覺

온 뜨락 가랑비에 장미꽃이 촉촉이 젖었네 / 一庭微雨濕薔薇

 

 

 

옥원성 안의 장미꽃이 반쯤 피었다沃原城裏薔薇半開-허백당 성현

 

새 울고 꽃 져서 봄을 바삐 보내고 나니 / 鳥啼花落送春忙

푸른 나무 다순 바람에 해가 한창 길구려 / 綠樹風薰日正長

잎 밑엔 노란 두장을 어지러이 둘러쳤고 / 葉底亂圍金斗帳

가지 끝엔 비단 향낭이 반쯤 벌어졌네 / 枝頭半坼錦香囊

처마에 비쳐 찬란해라 갠 그림자 흔들거리고 / 映簷璀璨晴搖影

시렁에 가득 흐드러져 향내를 물씬 풍겨 오네 / 滿架紛紜剩送香

어느 부귀한 집 수정렴 내려 친 장막 안에선 / 何處水晶簾幕裏

이 화려한 걸 함께 보면서 옥술잔을 들겠지 / 共看繁艶擧瑤觴

 

 

 

사헌부 뜰에 핀 장미꽃霜臺庭中薔薇-성현

 

한 그루의 장미나무 무척이나 시들시들 / 一樹薔薇太焜黃

반은 은택 입었으나 반은 서리 맞았구나 / 半涵春澤半涵霜

빨간 빛깔 본래부터 중정에 맞거니와 / 光華自是宜中正

가시는 강포한 자 때리려는 것일는지 / 芒刺渾疑擊巨强

저택에서 보계에 꽂은 여인 몇이던가 / 甲第幾人簪寶䯻

오늘은 송정에서 형구(形具)를 스치누나 / 訟庭今日拂桁楊

의탁한 땅 비천한 게 너무도 가여워서 / 憐渠托地何卑淺

마주하곤 말없이 함께 슬퍼하는구나 / 相對無言共歎傷

 

 

 

즉사(卽事) 1 -서거정

 

 

떨어진 꽃은 눈 같고 버들개지는 솜 같은데 / 落花如雪絮如綿

자고 일어나니 한 심지 향 연기가 타오르네 / 睡起銅爐一炷煙

가장 귀여운 건 이제 막 말 배우는 계집애가 / 最愛小娃初學語

장미꽃 나무 밑에서 그네 뛰는 걸 배움일세 / 薔薇樹下學鞦韆

 

 

 

즉사(卽事) 2 -서거정

 

 

집 울타리에 바람 불고 비가 실실 내리자 / 微風院落雨絲絲

한 시렁 장미꽃은 제 몸을 지탱 못 하는데 / 一架薔薇不自持

땅 가득 그늘지고 인적이 고요해진 뒤엔 / 滿地綠陰人靜後

꾀꼬리가 창 앞 가지에서 수없이 울어대네 / 流鶯無數語窓枝

 

 

 

즉사(卽事) 3 -서거정

 

 

백발의 신세가 세속이 들레는 게 싫어서 / 白頭身世厭塵喧

한 봄이 다 가도록 홀로 문 닫고 있었네 / 過盡靑春獨掩門

제비 날고 해는 긴데 찾아오는 손 없어 / 燕子日長無客到

노란 장미꽃 아래서 아손과 희학질하노라 / 黃薔薇下戲兒孫

 

 

장미(薔薇) -서거정

 

한 해의 봄놀이가 장미꽃 계절에 이르니 / 一年春事到薔薇

시렁 가득 활짝 피어 스스로 지탱을 못하네 / 滿架離披不自持

몇 번이나 맑은 향기는 나비를 번거롭혔나 / 幾陣淸香煩蝶使

너무나 요염한 빛은 거위 새끼를 능가하는군 / 十分濃艶妬鵝兒

물가에 비친 그림자에 맘이 먼저 설레지만 / 水邊照影心先惱

빗속에 활짝 핀 자태는 완상키 점점 좋아라 / 雨裏繁開賞漸宜

무르녹은 동녘 바람이 끝없이 불어올 제 / 爛熳東風吹不盡

한쪽 뜰에 말없이 서서 시를 재촉하는구나 / 半庭無語要催詩

 

 

 

홍일휴의 시에 차운하다. -서거정

 

병중의 내 신세는 이게 바로 만랑인데 / 病中身世是漫郞

한가히 남화경한두 장을 읽고 있다가 / 閑讀南華一兩章

시렁 가득 장미꽃이 막 비를 맞은 뒤라 / 滿架薔薇初過雨

한낮의 창 앞 정취를 술잔에 부치었네 / 午窓情興付壺觴

 

 

 

작은 못小塘의 즉사(卽事) -서거정

 

 

버들개지는 펄펄 날고 물은 못에 가득하고 / 柳絮飛飛水滿塘

장미꽃은 활짝 피고 죽순은 돋아 나오는데 / 薔薇花發筍初長

한 쌍의 나비는 대관절 무슨 일에 간여해 / 一雙胡蝶關何事

날아갔다 날아왔다 되레 스스로 바쁜 걸까 / 飛去飛來却自忙

 

 

 

조그마한 병풍(屛風)에 시를 써 주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 병풍의 뒷면에 쓰다

-서거정

 

 

아침 해는 빛나고 대는 정자에 가득하고 / 朝日暉暉竹滿亭

오사모 반쯤 젖혀 쓰니 귀밑은 성성한데 / 烏紗半頂鬢星星

두꺼비 연적으로 장미로를 부어서 / 蟾蜍拂滴薔薇露

사향묵 갈아 작은 병풍에 시를 쓰네 / 磨了香臍寫小屛

 

 

 

빨간 복사꽃은 이미 졌고 노란 장미꽃이 성하게 피었으므로 짓다 -서거정

 

 

 서글퍼라 빨간 복사꽃 너를 보내고 나니 / 惆悵紅桃送爾歸

한창 좋은 봄기운이 장미로 옮겨갔구나 / 靑春恰恰到薔薇

황랑은 졸고 일어나 힘없이 간드러져라 / 黃娘睡起嬌無力

벌써 미인의 금루의를 시샘하는군그래 / 已妬佳人金縷衣

 

 

 

새벽에 일어나 잠시 앉아서 읊다 -서거정

 

 

맑은 새벽에 병 무릅쓰고 앉았자니 / 淸晨力疾坐

작은 정원에 봄은 이미 다하였네 / 春盡小園中

빈 뜰엔 유협우가 부슬부슬 내리고 / 楡莢空階雨

장미꽃엔 시렁 가득 바람이로다 / 薔薇滿架風

비록 파란 새싹은 늘 더해지건만 / 雖然添嫩綠

붉은 꽃 지는 건 차마 볼 수 있으랴 / 可忍損芳紅

조용히 술 마시고 혼혼히 취하여 / 細酌渾成醉

궁한 시름을 한번 깨끗이 씻노라 / 窮愁一洗空

 

 

 

마전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 2次麻田東軒詩 二首-용헌 이원

 

 

문 밖에 뽕나무 심고 삼도 심으니 / 門外栽桑復種麻

관청이 조용하여 촌가와 비슷하네 / 官家寥落似村家

길 가던 중 흥이 일어 시 지을 곳 찾으니 / 客中乘興尋詩處

비 온 뒤 장미가 온 시렁에 피어 있네 / 雨後薔薇一架斜

 

 

오래도록 길손 되니 시름이 난마(亂麻) 같은데 / 久客憂端亂似麻

이 마음은 오래 집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니네 / 此心非是久離家

백성들이 편안히 농사짓지 못하고 / 元元未得安耕鑿

종일토록 비탈길을 땔나무 지고 가네 / 終日負柴山路斜

 

 

 

변춘정의 시에 차운하다次卞春亭詩-용헌 이원

 

 

이태 동안 나 홀로 영남에 있으면서 / 二年獨在嶺南旁

북쪽의 삼각산 보니 무척이나 아득하네 / 北望三峯極渺茫

또다시 장미꽃이 지려는데 / 又是薔薇花欲謝

어느 날에 그대와 술 마실까 / 共君何日引杯長

 

 

남궁낭관계축(南宮郞官契軸) -용재 이행

 

 

장미꽃 아래 고운 자태에 취한 지 / 薔薇花下醉嬋娟

한 꿈결에 어느덧 이십 년 흘렀어라 / 一夢依依二十年

오늘날 풍류는 몽땅 그대들 몫이라 / 今日風流都付與

청루에 이 백발을 붙일 데가 없구나 / 靑樓無地着華顚

 

 

 

사월 이십육일 동궁(東宮)의 이어소(移御所) 직사(直舍)의 벽에 적다. -이행

 

 

분주한 노년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병 / 衰年奔走病如期

봄 흥이 많지 않아 시엔 이르지 않누나 / 春興無多不到詩

잠 깨자 꽃이 다 이울어 홀연 놀라노니 / 睡起忽驚花事了

한줄기 내리는 가랑비에 장미꽃 떨어진다 / 一番微雨落薔薇

 

 

 

태헌의 시에 차운하여 의원 상인에게 주다次苔軒韻贈義圓上人-월정 윤근수

 

 

물 흐르는 조계산은 신선의 산 같은데 / 曹溪流水怳仙山

안개와 덩굴 덮인 자갈길을 차례로 올랐네 / 石磴煙蘿次第攀

난리 끝나고 비로소 사찰을 찾아간 날 / 亂後試尋諸佛日

시권에서 옛 친구 얼굴을 만나게 되었네 / 卷中猶對故人顔

세상 놀라게 하는 청신한 시는 길이 남겠지만 / 淸詩驚世應長在

하늘로 돌아간 의로운 혼백은 다시 오지 않으리 / 義魄歸天更不還

장미 향수로 손을 씻고 몇 번이나 시를 읊었던가 / 露盥薔薇吟幾遍

상심하며 다시 하릴없이 사립문에 기대네 / 傷心空復倚松關

 

 

 

사순(학봉 김성일)동고시에 차운하다次士純東皐韻-송암 권호문

 

 

 

바람 타고 우레를 채찍질한 덕을 숭상할 만하니 / 鞭駕風霆德可崇

먼 유람에 어찌 보병처럼 길 막혔다고 통곡하랴 / 遠遊寧哭步兵窮

명성은 황도에 걸려 있는 밝은 해와 같고 / 明誠化日懸黃道

속념은 푸른 하늘에 흩어지는 갠 구름 같네 / 塵慮晴雲散碧空

마을은 장미동 같아 진나라 사안석을 그리워하고 / 洞似薔薇懷晉石

개울은 분수 같아 진 땅의 왕통을 떠올리네 / 溪同汾水憶陳通

흉금을 터놓고 사귀는 그대가 좋으니 / 論交好有風襟子

그대 시 읊는 동산에 매화가 몇 송이 피었는가 / 吟傍梅園問幾叢

 

[] 바람 …… 채찍질한 : 김성일(金誠一)의 훌륭한 풍모를 묘사한 말이다. 주희(朱熹)소강절 화상찬(邵康節畵像讚)에서 바람을 타고 우레를 채찍질하며, 가없는 세계를 두루 보네.駕風鞭霆, 歷覽無際.라고 한 말이다. 晦菴集 卷85 六先生畫像賛

 

 

 

앞의 운자를 세 번째 사용하다三疊-송암 권호문

 

 

하회마을 일곱 굽이 용 같이 두르고 / 七曲河回繞似龍

구불구불 맑은 물은 높은 담장을 빙 도네 / 蜿蜒淸淑匝雲墉

백 년의 붉은 벽에 두 그루 회나무 그려져 있고 / 百年丹壁圖雙檜

십 리의 백사장에 소나무 만 그루 심어졌네 / 十里沙場種萬松

은구슬 붉은 인끈 - 원문 빠짐 - 더욱 자랑하며 / 剩詫銀珠朱紱

황제 조서 받든 군대 얼마나 뒤쫓았나 / 幾追鸞鵲紫泥鋒

나라의 운명 하늘이 넘어뜨린다 하여도 / 縱然國步天方蹶

결국 능연각에 다시 봉해질 것이네 / 須做凌烟再上封

 

위의 시는 서애 유성룡에게 준 것이다.

 

 

궁벽한 곳 어찌 용을 볼 수 있겠는가 / 竆荒豈宜見飛龍

성왕 복거하는 화양은 철벽에 비길 만하네 / 聖卜華陽擬鐵墉

지리는 한양과 영남을 넘는 것과 관계없고 / 地利不關踰漢嶺

명나라 군대는 단지 평양과 송도만 회복했네 / 天威只得復箕松

회계산에서 치욕 씻으려 누가 쓸개 맛봤나 / 會稽灑恥誰嘗膽

가한이 이를 가니 오히려 칼날은 빛나네 / 可汗磨牙尙耀鋒

잿더미 된 옛 도성에 겨우 돌아왔으니 / 灰燼舊都纔返蹕

청컨대 그대들 논공 봉상 말하지 말게나 / 請君休說記功封

 

위의 시는 시국을 탄식한 것이다.

 

 

몸 펴기 구하는 자벌레와 몸 보존하는 용 / 求伸之蠖存身龍

은택 입어 구름과 물이 있는 담장에 사네 / 草露而家雲水墉

가랑비는 땅의 생물 능히 소생하게 하고 / 小雨能生附地蘇

된서리는 하늘 찌르는 소나무 꺾지 못하네 / 嚴霜不挫干天松

가물치 매우 크지만 껍질에 뼈가 없고 / 鮦魚至大膚無骨

벌은 비록 작지만 끝에 침이 있네 / 荓蜂雖微尾有鋒

만물 이치 무성하니 누가 이해하여 / 物理蔥蔥誰得解

한 줄기 맥 찾아 몇 편의 편지 봉할까 / 要尋一脈數書封

 

 

기름진 비 쏟지 않는데 누가 용이라 하나 / 未霈膏霖孰曰龍

광부 놀라지도 않는데 어찌 성벽이라 하랴 / 狂夫不瞿豈爲墉

칡덩굴 서로 엉키어 다투어 오르는데 / 爭攀藟藟蔓兮葛

누가 독야청청한 소나무 믿겠는가 / 誰信靑靑獨也松

읽기 마치니 혀끝에 오히려 가시가 돋고 / 讀了舌端還有棘

오랑캐 머리 잘라 오려니 또한 칼이 없네 / 斷來夷首亦無鋒

꼴은 초췌하여 백료들 밑에 있었는데 / 法當憔悴百僚底

한 고을 수령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 何幸專城一縣封

 

위의 시는 품은 생각을 읊은 것이다.

 

 

한단에는 갈피의 용을 기르지 않고 / 邯鄲不畜葛陂龍

헛되이 어린 매화 그림 담장 엿보게 하네 / 枉使稺梅覘畫墉

안개는 단장한 모습 - 원문빠짐 - 깨끗함 눈에 엉겼고 / 粉膩酥凝雪

달은 차가운 살갗 비추니 그림자 솔에 잠겼네 / 月照冰肌影蘸松

농부의 구기자와 국화는 피었다가 시들고 / 田郞杞菊開還晩

왕자의 장미 가시는 창처럼 찌르네 / 王子薔薇棘刺鋒

애석하다 고고한 향기 사람들 상관 않으니 / 可惜孤芳人不管

매개 없이 헛되이 촌구석에 내버려졌네 / 無媒虛擲一村封

 

위의 시는 매화를 조롱한 것이다.

 

 

 

장미(薔薇) -옥담 이응희

 

초여름에 그 무엇을 보는고 / 首夏看何物

장미가 집 동쪽에 가득하여라 / 薔薇滿屋東

금전 같은 꽃은 아침 이슬에 젖고 / 金錢朝浥露

푸른 비단 같은 잎은 낮 바람에 펄럭인다 / 靑綺午飜風

외진 산골 뜰 아래 있고 / 僻處山庭下

궁궐에 사는 것 싫어하네 / 嫌居掖垣中

은근한 정으로 가까이 다가오니 / 慇懃能自近

그 심사가 제 주인과 같구나 / 心事主人同

 

 

산단화(山丹花)

 

산단이 몇 그루 나무에 환하니 / 山丹明數樹

옮겨 심은 지 몇 해나 지났던고 / 移植幾經霜

잎사귀 밑에 홍옥으로 단장한 듯 / 葉底粧紅玉

가지 사이엔 푸른 가시 이어졌다 / 枝間絡翠芒

장미와 좋은 꿈을 같이 꾸고 / 薔薇同好夢

작약과 향기로운 꽃이 같아라 / 芍藥共芬芳

가인의 손에 꺾임이 좋으니 / 可折佳人手

동방의 꺾꽂이에 매우 알맞구나 / 偏宜揷洞房

 

 

 

초여름初夏-지봉 이수광

 

 

한바탕 비가 막 갠 사월이라 초여름 날이니 / 一雨初晴四月時

장미 시렁 아래로 낮 그늘이 옮겨왔도다 / 薔薇架下午陰移

미풍 한 점 일지 않아 헌창이 정말 고요한데 / 微風不動軒窓靜

붉은 꽃잎 푸른 못에 짐을 누워서 보노매라 / 臥見殘紅點綠池

 

 

 

동명(김세렴)사상록에 씀[題東溟槎上錄] -김시국(金蓍國)

 

장미화 이슬 받아 손을 씻고서 / 晴窓手盥薔薇露

동명의 사상시를 내리읽었네 / 讀盡東溟槎上詩

보슬에 봉황주를 높이 벌였고 / 寶瑟高張鳳凰柱

옥소반에 산호 가질 두루 꽂았네 / 玉盤遍揷珊瑚枝

학천의 운물을 염낭 속에 거둬 넣고 / 鶴天雲物收囊底

경해의 연파를 연지에 쏟았구려 / 鯨海煙波瀉硯池

장유가 없었다면 이를 어찌 얻었으랴 / 不有壯遊那得此

그대의 여운 빌려 흰 수염을 다듬노라 / 丐君餘韻撚霜髭

 

 

 

궁사(宮詞) 한 시인이 지은 장신궁(長信宮) 사시사(四時詞)를 아이들이 전해 외우기에 이를 듣고 본떠서 지어 보았다. -아계 이산해

 

 

옥 난간 구슬 발이요 겹문은 닫혔는데 / 玉欄珠箔鎖重門

지척의 소양궁엔 임금의 은총 막혔어라 / 咫尺昭陽隔主恩

임금 행차 오지 않고 봄은 또 저무는데 / 鳳輦不來春又暮

푸른 복숭아 붉은 살구 절로 황혼일레 / 碧桃紅杏自黃昏

 

 

석류꽃 처음 피고 장미가 뚝뚝 질 즈음 / 安榴初發落薔薇

서늘한 모시옷 하이얗게 눈 같은 살갗 비치네 / 白苧微凉透雪肌

잠 깨자 꽃비녈랑은 엉클어진 채 두고 / 睡起花鈿慵不整

누른 살구 주워다가 꾀꼬리를 때리누나 / 却將金杏打鶯兒

 

 

상아 침상 은 대자리에 길고 긴 밤을 / 象床銀簟夜迢迢

깊은 궁전 성긴 반딧불 속 적요히 지새네 / 深院疎螢度寂寥

등잔불 돋우고 시름겨워 베개에 의지하니 / 挑盡玉虫愁倚枕

오경의 찬 비는 파초잎을 후두기네 / 五更寒雨打芭蕉

 

 

얇은 얼음 낀 옥 대야에 분칠한 뺨 비추고 / 玉盌輕氷映粉腮

시녀 아이 언 손을 불며 양 눈썹을 그리네 / 侍兒呵手畫雙眉

얄밉게도 북쪽 섬돌 곁 때이른 매화는 / 生憎北砌梅花早

봄빛이 유독 해를 향한 가지에 깊네그려 / 春色偏深向日枝

 

 

 

새벽에 읊다. -이산해

 

 

장미꽃 곁엔 어느 새 맺힌 싸늘한 이슬 / 薔薇花畔露凄凄

은하수 서쪽으로 기울고 달은 지는구나 / 銀漢西傾月欲低

작은 난간 성긴 발에 그윽한 꿈 깨니 / 小檻疎簾幽夢罷

소쩍새 소리 멎고 새벽 꾀꼬리 우네 / 子規聲歇曉鶯啼

 

 

 

천주(泉州) 동안현(同安縣) 태생 유만진(劉萬進)은 좋은 선비인데, 길을 떠날 임시에 부채에 시를 적어주기를 청하는 뜻이 매우 간절하기에 붓을 달려 적어주었다. -이산해

 

 

동안성 안이 바로 그대의 고향이니 / 同安城裏是君鄕

너른 바다 긴 하늘에 길이 아득해라 / 海闊天長路渺茫

전생에 깊은 교분 맺지 않았다면 / 不是前身聯宿契

내가 어찌 그대를 만날 수 있었으랴 / 鵝翁那得識劉郞

 

 

회칠한 담장 서쪽엔 장미꽃이 지고 / 薔薇花落粉墻西

주렴 밖 그윽한 새는 진종일 우누나 / 簾外幽禽盡日啼

단지 사람만이 이별을 어려워하지 / 只是人情重離別

꽃과 새는 헤어짐을 애석해 않으리 / 不應花鳥惜分携

 

 

만리타국에서 살아 돌아가니 꿈결 같아 / 萬里生還夢裏身

색동옷 입고 귀국하는 흥 때는 가을일레 / 彩衣歸興趁秋旻

국화꽃 띄워 백주 마시는 고당 모임에서 / 黃花白酒高堂會

하늘 동편에 친구가 있다 응당 말할 테지 / 應說天東有故人

청음(김상헌)에게 주다[贈淸陰] -상촌 신흠

 

그대 시를 읽지 않고 사흘을 넘겼더니 / 不讀君詩過三日

혀 끝이 굳어짐을 분명히 느끼겠네 / 令人渾覺舌根强

오늘 아침 장미 이슬로 내 손을 씻은 것은 / 今朝手洗薔薇露

책상 머리에 그대 시가 몇 수 있기 때문이었지 / 爲是床頭有數章

 

 

 

신헌의 시축 운에 차운하여 주다[贈信軒次軸中韻] -신흠

 

 

언제나 운산에 중 보내고 돌아오면서 / 雲山長是送僧歸

반세기를 머뭇머뭇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네 / 半世遲回未拂衣

경구에 문 닫히고 봄도 이미 다 갔는지 / 京口閉門春色盡

뜰에 내린 성긴 비가 장미꽃을 다 지우네 / 一庭疏雨落薔薇

 

 

 

거련에 갔을 때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到車輦薔薇盛開] -상촌 신흠

 

 

화관엘 또 와서 수레를 멈췄더니 / 又來華館駐驂騑

나무와 산 어우러져 사방이 다 푸르네 / 樹色山光碧四圍

꽃 향기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을 말게 / 莫道芳菲今已歇

뜰에 봄이 아직은 장미에 있잖은가 / 一庭春意在薔薇

 

 

 

 

해양(海陽)에서 소회(所懷)를 기록하다 교산 허균

 

 

거친 뜰 적막하다 인적 내왕 끊겼으니 / 荒庭寥落斷經過

종일토록 가물가물 졸음으로 병 달래네 / 盡日愔愔睡養痾

꽃다운 풀 우거져라 신발이 파묻히고 / 芳草可能侵履沒

푸른 그늘 하 많이 난간에 올랐구먼 / 綠陰如許上欄多

시름 속의 물색은 봄이 하마 다 갔구나 / 愁邊物色驚春盡

읊고 나니 풍회는 늙었음을 어찌하리 / 吟罷風懷奈老何

갑자기 앉은 자리 들려오는 꾀꼬리 말 / 坐久忽聞黃鳥語

영롱하다 사군 노래 원망이나 하는 듯이 / 玲瓏如怨使君歌

 

 

소원이라 주랑에 해가 하마 비꼈으니 / 小院週廊日已斜

은구에 갓 끓여낸 새 차나 맛을 보세 / 銀甌初瀹試新茶

못에 점친 푸른 연은 잎이 장차 떠오르고 / 點地菡萏將浮葉

비를 거친 붉은 장미 하마 꽃이 피었구려 / 經雨薔薇已發花

시름병 노상 얽혀 사람은 술에 빠지고 / 愁病每嬰人滯酒

봄빛이 거의 가서 나그네는 집 그리네 / 韶光垂盡客思家

시 이뤄라 스스로 강엄의 한을 쓰니 / 詩成自寫江淹恨

새벽 놀 읊조리는 풍류와는 같질 않아 / 不比風流詠曉霞

 

 

 

초여름 성중(省中)에서 짓다 -허균

 

 

내 동산 묵었어라 어느 제나 돌아가지 / 田園蕪沒幾時歸

살쩍 하얀 인간 벼슬 생각 적어지네 / 頭白人間官念微

적막한 상림원에 봄이 하마 다 갔는데 / 寂寞上林春事盡

성긴 비 또다시 장미꽃을 적시누나 / 更看疎雨濕薔薇

빗방울 보슬보슬 낮잠이 아쉬운데 / 懕懕晝睡雨來初

베개맡의 더운 바람 전각에 남아도네 / 一枕薰風殿閣餘

점심밥 어서 들라 서리(胥吏)는 재촉 마소 / 小吏莫催嘗午飯

꿈속에 한창 먹는 무창 고기 어쩌라고 / 夢中方食武昌魚

 

 

 

해산선몽요(海山仙夢謠) -허균

 

 

오도는 은은하다 한바다에 둥둥 떠 / 溟波隱隱浮鰲島

기화 요초 산에 가득 봄이 아니 늙네그려 / 瓊草漫山春不老

상제는 소옥 시켜 푸른 난새 잡아타고 / 帝遣小玉驂靑鸞

피리 불며 한밤에 구름 끝을 내려오네 / 吹笙夜下紅雲端

저고리는 반만이 부용띠를 가렸어라 / 裙衩半謝芙蓉帶

먼 봉우리 시름 자아 아미(蛾眉)에 엉겼구려 / 遠岫凝愁抹蛾黛

육랑은 취하여 안개 밖에 속삭이며 / 陸郞倚醉隔煙語

신선의 소매 웃으며 삼주수를 휘젓네 / 仙袂笑拂三珠樹

쟁글쟁글 패옥(佩玉) 소리 공중에 울리면서 / 丁當瑤瑤韻空冥

용 타고 잉어 밟아 하도나 아름다워 / 鞭龍踏鯶多娉婷

월궁이라 계수나무 향기는 뼈를 뚫고 / 彩蟾春桂香入骨

교초의 붉은 무늬 장미꽃이 한 점이라 / 鮫綃一點薔薇血

봉래산에 또다시 천년 기약 맺었거니 / 蓬萊重結千年期

벽도화는 떨어져 손자 가지 나오누나 / 碧桃花落生孫枝

옥베개 깁이불에 새벽 추위 썰렁한데 / 寶枕瑤衾生曉寒

상서 구름 얽혀얽혀 무산으로 돌아가네 / 祥雲繚繞歸巫山

뉘를 기대 양옹백에게 말을 전하리 / 憑誰寄語陽雍伯

남전에 옥을 심어 서객을 먹이라고 / 種玉藍田餉書客

 

 

장미(薔薇) -택당 이식

 

장미의 풍격이 완전히 낮진 않아서 / 薔薇風格未全卑

황금 화판(花瓣)에 붉은 꽃술 터뜨려 보여 준다마는 / 金瓣檀心箇箇披

가을철 가시덤불 뒤덮게 놓아 두면 / 縱使秋來荊棘滿

그야말로 전혜가 띠풀로 바뀌듯 하리 / 卽如荃蕙化茅時

 

 

 

 

억석행憶昔行-낙전당 신익성

 

 

춘주(春州 춘천(春川))의 여름 유월 생각해보니 / 憶昔春州夏六月

열흘 동안 장마 지고 먹구름 자욱했지 / 積雨十日愁陰蒸

일엽편주 타고 골짜기 나와 높은 물결 헤치니 / 扁舟出峽破高浪

하늘까지 일렁이는 높은 물결 어찌 타고 넘으랴 / 颭空洪漲那可乘

아흔 곳 험한 여울과 일곱 곳 소용돌이 / 九十惡灘七盤渦

우레 울리고 번개 치듯 곳곳마다 쏟아지네 / 迅雷掣電隨奔崩

한 순간에 천 리 간다는 말로 비유하기 부족하니 / 一瞬千里不足喩

어느새 저도에 들어가니 밝은 햇살 내리쬐네 / 倏入楮島晴光凝

뱃전을 두드리며 또다시 고요한 물결 따라가니 / 鳴榔且復任安流

강가에 화려한 누각이 우뚝이 솟아 있네 / 江上畫閣高峻嶒

처마 사이에 금 글씨로 월파정이라 적혀 있는데 / 簷間金字月波亭

원씨의 필법이 용과 난새처럼 뛰어오르네 / 元氏筆法龍鸞騰

벽 위의 단청은 비취새가 나는 것 같은데 / 壁上丹靑翡翠飛

능숙한 솜씨 화사(畵師) 이징(李澄)인 줄 알겠네 / 能事還知李師澄

곽외는 예전에 황금을 마구 써서 / 郭家曾擅黃金宂

호박과 마노로 만든 술잔을 돌렸지 / 杯行琥珀瑪瑠氷

평소 거처에서 산호수를 박살내고 / 平居擊碎珊瑚樹

사사로운 연회에서도 채붕(綵棚)을 설치하네 / 曲宴猶能排綉綳

풍류와 부귀가 길이 이와 같았는데 / 風流富貴長如此

한강이 역류하고 해가 서쪽에서 떴네 / 漢水逆流西日昇

나는 이때 떠돌며 굴원의 이소읊었으니 / 余時浪跡吟屈騷

안색은 가을 파리처럼 참담하였지 / 顔色慘惔如秋蠅

세월은 빨리 흐르고 사고는 많으니 / 歲序駸駸事故多

범나라 초나라의 흥망이야 징험할 것 있으랴 / 凡楚興亡何足徵

오늘 아침 홀연 성곽을 나갈 마음 생겨 / 今朝忽有出郭思

술을 들고 또 좋은 벗을 불렀네 / 携酒且復招佳朋

누각 어귀 시렁에 누런 장미 가득하고 / 樓頭一架黃薔薇

붉은 난간 분명하여 그럭저럭 기댈 만하네 / 朱欄宛爾聊可憑

달팽이와 거미줄이 화려한 들보를 뒤덮고 / 蝸蜒蛛網翳畫梁

고운 창은 반쯤 깨져 먼지에 파묻혔네 / 璅窓半破依塵繩

어부가 나에게 퍼덕이는 물고기를 대접하니 / 漁翁餉我潑剌魚

백 장이나 되는 낚싯줄을 인끈처럼 드리웠네 / 百丈釣綸垂如絙

모래톱의 해오라기는 친할 만큼 가까이 오고 / 汀洲鷗鷺近堪狎

눈에 가득한 아지랑이 천 겹으로 둘러쌌네 / 滿眼煙樹圍千層

바람 부는 처마에서 한 잠 자며 소요하니 / 風櫺一枕逍遙遊

메추라기와 붕새가 같다는 걸 돌연 깨닫네 / 頓覺尺鷃齊鵾鵬

 

 

 

목백의 운자에 맞춰 짓다次牧伯韻-동주 이민구

 

 

맑은 시 한 자 한 자 바람서리 끼고 오니 / 淸詩字字挾風霜

장미 이슬로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세수하네 / 薇露晨興盥濯忙

먼 강 맑은 물결에 밤빛 걷히고 / 遠水澄瀾回夜色

높은 숲 붉은 잎은 가을 햇살 띠었구나 / 高林赤葉帶秋陽

그대는 독수리가 홀로 날아오르는 것 같고 / 君如鵰鶚孤飛上

나는 선우를 한 손으로 감당하려네 / 我欲單于隻手當

한 번 명주를 상자에 담은 뒤로 / 一自明珠收篋笥

객관 처마 끝에 광채가 나는구려 / 客間簷廡每騰光

 

] 맑은 …… 세수하네 : 목백이 보내온 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는다는 말이다. 미로(薇露)는 장미 이슬인데, 여기서는 유종원이 한유가 보내온 시를 얻으면, 우선 장미 이슬로 손을 씻고 옥유향을 뿌린 뒤에 시를 읽으면서 대아의 글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라고 했다.柳宗元得韓愈所寄詩, 先以薔薇露盥手, 薫玉㽔香後發讀曰, 大雅之文正當如是.라는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雲仙雜記 卷6 大雅之文

 

 

 

봄날春事-동주 이민구

 

 

한 해 봄날 온통 꽃향기니 / 一年春事盡芳菲

복사꽃 오얏꽃 살구꽃 모두 난발하였네 / 桃李杏花俱亂飛

몇 떨기 붉은 철쭉 반쯤 시들자 / 躑躅數叢紅半減

가시 울타리 남쪽에 장미가 또 피누나 / 棘籬南畔又薔薇

 

 

 

차운하여 어떤 이에게 답하다 신미년(1631) 次韻答人 辛未-고산 윤선도

 

 

꽃 지자 숲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 花落林初茂

봄이 가니 해가 더욱 길어지누나 / 春歸日更遲

하나의 원기(元氣)를 조용히 살필지니 / 一元宜靜覩

사계절은 순서대로 바뀌건 말건 / 四序任遷移

장미의 시렁에는 제비의 지저귐이요 / 燕語薔薇架

양류의 가지에는 꾀꼬리의 노랫소리 / 鶯歌楊柳枝

풍광이 어딜 가나 좋기만 한데 / 風光隨處好

멋진 흥치를 아는 사람 적어라 / 佳興少人知

 

 

 

장미로(薔薇露) -성호 이익의 사설 중에서

 

 

유자후(柳子厚)는 한창려(韓昌黎)의 글을 얻으면 장미로로 손을 씻은 후에 읽었다고 하니, 장미로란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다.

 

오대(五代) 때에 번국 사신[藩使] 만아산(滿阿散)이 장미로 50()을 공물로 바쳤다고 했으니, 자후가 손을 씻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물건이었으리라.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이르기를, “물 중에 아름다운 것으로 삼위(三危)의 이슬이 있다.” 하였으니, 황산곡(黃山谷)의 시에,

 

 

구완의 난초는 볼수록 향기롭고 / 蘭香滋九畹

삼위의 이슬은 움킬수록 맛이 좋다 / 露味挹三危

 

 

라는 말이 바로 이것인데, 그것 역시 아마 장미로라는 따위리라.

 

 

 

목계에서 김 좌랑 상우 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다[木溪訪金佐郞 商雨 不遇] -다산 정약용

 

강변 마을 대낮에 사립문이 닫히어 / 江村白日掩柴荊

다리 끝에 말 세우고 물소리를 듣는다네 / 立馬橋頭聽水聲

우거진 동산숲에 뻐꾹새 울어대고 / 鴶鵴鳥鳴園樹暗

훤히 트인 시골집에 장미꽃이 피었구나 / 薔薇花發野堂明

한백년 시와 술로 함께 숨자 꾀했는데 / 百年詩酒謀偕隱

삼도의 풍연 찾아 섭섭할손 혼자 갔네 / 三島風煙悵獨行

성군 때엔 빠뜨려진 인물 적다 말하지만 / 縱道聖朝遺逸少

세상에선 아직도 이 사람의 이름 몰라 / 至今不識此人名

 

 

하담을 떠나며[離荷潭] 16일이다 -다산 정약용

 

 

사휴정 아래 물줄기 넘실넘실 흐르는데 / 四休亭下水漣漣

객중의 말 슬피 울며 나룻배에 올랐네 / 客馬悲鳴上渡船

가홍역에 당도하여 강어귀서 바라보니 / 行倒嘉興江口望

장미산 푸른빛이 동녘 하늘 아련하네 / 薔薇山色杳東天

 

 

 

여름날 전원의 여러 가지 흥취를 가지고 범양 이가의 시체를 모방하여 이십사 수를 짓다[夏日田園雜興效范楊二家體二十四首] 신묘년 -다산 정약용

 

 

 

봄의 일은 아득하여 따라잡을 수 없어라 / 春事微茫不可追

푸른 매화 열매 맺고 버들가지 늘어졌는데 / 靑梅結子柳垂垂

푸른 그늘 창문 깊숙이 등불 그림자 생기니 / 綠陰窓戶深生暈

정히 선생께서 시문을 고치는 때이로세 / 正是先生點易時

 

 

십순 동안 병상에서 꽃다운 계절 보내고 / 十旬淹病度芳菲

이제야 남의 부축받아 애써 사립을 나오니 / 初倩人扶强出屝

괴이하게도 은밀한 향기가 코를 찔러라 / 怪有密香來觸鼻

들장미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었네그려 / 百花如雪野薔薇

 

 

단오절 가까운 때에 석류꽃 붉게 피니 / 石榴紅綻近端陽

일마다 한적하고도 일마다 바쁘구려 / 事事幽閑事事忙

하늘은 잠시 맑아 주어 누에고치를 말리겠고 / 天賜暫晴容曬繭

땅에는 봄물이 고여 모내기를 할 만하네 / 地留春水賴移秧

 

 

몹시도 어여쁘던 작약꽃 옛모습은 / 絶憐紅藥舊時容

붉은 뺨 산산이 부서져 개미둑에 떨어졌네 / 破碎殘顋落螘封

어찌 밤나무 꽃에 향기를 딸 게 있으랴만 / 豈有栗花香可採

나무 끝에 주린 벌들이 수없이 엉겼네그려 / 梢頭無數著飢蜂

 

 

누에 친 뒤 뽕나무 가지 모두 텅 비었는데 / 蠶後桑枝竝蕩然

따낸 자리에 새 잎이 부드럽게 돋아나누나 / 摘餘新葉始柔姸

이제야말로 나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 / 如今竭力輸身分

다시 집안일 돌보아 일 년을 지내리라 / 再作家私度一年

 

 

농부의 집 보리밭 언덕을 따라 내려가나니 / 延緣野屋麥平垣

초가집 마을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어라 / 隱約茅茨見一痕

가만히 앉아 석양에 연기 나는 곳 헤어 보니 / 坐數夕陽煙起處

원래 몇 집의 마을인가를 비로소 알겠네 / 始知原是幾家村

 

 

마늘에선 수염 나와 하얀 꽃잎을 이루었고 / 蒜菢生鬚玉瓣成

오이넝쿨 겹친 잎새엔 노란 꽃이 숨어 있네 / 瓜藤疊葉隱黃英

새끼닭에다 뽕버섯까지 섞어서 끓인다면 / 筍鷄剩有桑鵝糝

시 모임에 골동갱을 걱정할 것 없구려 / 詩會無憂骨董羹

 

 

삼나무 꼭대기 새로 싹튼 가장 윗부분은 / 杉頂新抽最上臺

어린 끝이 유약하여 약간 쓸리려 하는데 / 嫩梢柔弱欲微頹

곧은 표치가 필경은 쇠화살같이 자라서 / 貞標畢竟如金矢

저 강가의 백 척의 돛대가 되어 가리라 / 去作江邊百尺桅

 

 

누런 송아지 막 나오니 어미 사랑 유달라라 / 黃犢新生母愛殊

이리저리 뛰고 걸으며 산주로 들어가누나 / 橫跳豎躍入山廚

모를레라 저렇게도 우아한 본바탕이 / 不知似許便娟質

어찌하여 후일엔 그 우둔한 것이 되는고 / 何故他年作笨夫

 

 

햇병아리 울음 배워라 어리석은 그 소리 / 雛鷄學唱大憨生

하늘이 다 밝아서야 비로소 한 번 우는데 / 恰到天明始一鳴

리듬 있게 잘 울지 못한다고 말들 하지만 / 縱道喉嚨無曲折

가을에는 절로 넉넉히 가성을 이을 거로세 / 秋來自足繼家聲

 

 

새 새끼 나비를 쫓아 가벼이 살짝 날아라 / 新雀捎飛趁蝶輕

노란 주둥이 막 검어지고 깃털은 보송보송 / 蠟咮初黑羽毛成

벌벌 떨어 가련한 태도를 교묘히 지으면서 / 顫顫巧作哀憐態

어미를 따라 먹여 주기 바라는 정을 펴누나 / 隨母猶陳望哺情

 

() 자는 고시(古詩)에서 평성(平聲)으로 많이 쓰였다.

 

 

문 밖의 꾀꼬리는 나를 향해 말을 하는데 / 戶外黃黧說向吾

온갖 소리 유창하고 각각 다르기도 하여라 / 百聲流利百聲殊

분명히 소리마다 각각 품은 뜻이 있으련만 / 分明各有中含意

개갈로를 거듭 만나지 못한 게 애석하구려 / 惜不重逢介葛盧

 

 

집터 자주 옮기는 저 제비 애석하기도 해라 / 鷰子開基惜屢移

공연히 진흙 가져다 들보와 문미만 더럽히네 / 謾將泥點汚梁楣

근래엔 풍수설이 온통 풍속을 이루는지라 / 邇來風水渾成俗

의심컨대 새들도 지사가 있는 모양이로군 / 疑亦禽中有地師

 

 

온 몸뚱이가 새파란 아주 작은 개구리는 / 綠色通身絶小蛙

갈래진 매화가지에 일생을 단정히 앉았나니 / 一生端正坐梅叉

제가 감히 높은 데 있길 바라서가 아니라 / 非渠敢有居高願

닭 창자 속에 산 채로 매장됨을 저해서라네 / 剛怕鷄腸活見埋

 

 

강가에 빈 천둥 소리 은은히 울리더니 / 江上空雷隱有聲

구름 위에서 두어 점 빗방울이 떨어진지라 / 雲頭數點落來輕

개구리들은 참소식인 줄 잘못 알고서 / 蝦蟆錯認眞消息

우묵한 숲 속에 지레 개골개골 울어대네 / 徑作林坳閣閣鳴

 

 

보리 가을 저문 날에 산기운 설렁한데 / 麥秋山氣晩凄然

하릴없이 담배만 피며 밤새 잠 못 이루노니 / 閑爇金絲耿不眠

이슥한 밤 빈 처마엔 참새가 편히 깃들였고 / 夜久虛檐棲雀穩

물같이 푸른 하늘엔 거미 하나가 매달렸다 / 碧天如水一蛛懸

 

 

구절창포 비녀에 진홍빛 모시 치마를 입고 / 九節菖簪絳苧裳

집집마다 여아들 새로 단장 말끔히 하고서 / 各家兒女靘新粧

자리 앞에서 일제히 단오의 절을 올리니 / 席前齊作端陽拜

앵두 한 바구니를 상으로 내려 주누나 / 賞賜櫻桃瀉一筐

 

 

비 내리니 작은 계집종 바쁘기도 하여라 / 雨中忙殺小鬟丫

파 모종과 가지 모종 옮기라고 분부했는데 / 吩咐披蔥又別茄

아직 어려 동약의 뜻을 듣지 못했는지라 / 生少不聞僮約指

축대에 올라 먼저 봉선화부터 심고 있네 / 上臺先揷鳳仙花

 

 

집에 가득한 누에똥 옛 흔적을 다 씻어라 / 滿屋蠶沙滌舊痕

부녀자들 일 년간의 능사를 마쳤네그려 / 一年能事了閨門

이상해라 고치실 켜는 물레 소리 요란하여 / 怪來嘈囋繅車響

또 열흘 동안은 산집이 떠들썩하겠네 / 又作山家十日喧

 

 

내기 활 쏘고 취하여 비틀거리며 걸어오니 / 醉步之玄賭射歸

석양에 사람 그림자 멀리 들쭉날쭉하여라 / 夕陽人影遠參差

향촌에선 따져 보아 획수 많은 걸 치기에 / 鄕村釋算稱多畫

종이에 그려 승전기를 높다랗게 쳐드누나 / 畫紙高擎勝戰旗

 

 

싱싱한 갈치며 준치는 한성에만 갈 뿐이고 / 鮮鮆鮮鰣隔漢城

촌가에는 가끔 새우젓 파는 소리만 들리는데 / 村莊時有賣鰕聲

돈으로 받길 원치 않고 보리로 받길 바라니 / 不要錢賣還要麥

어부들의 살림살이 어려울 게 걱정이로세 / 怊悵漁家事不成

 

 

예로부터 어촌에 보리 익을 무렵이 되면 / 漁村自古麥黃天

큰 냇물 가로질러 촉고를 연하여 쳤는데 / 密罟連環截大川

모두 이르길 금년에는 산골 물이 많아서 / 總道今年饒峽水

좋은 고기가 수없이 깊은 못에 숨었다 하네 / 好魚無數隱深淵

 

 

산늙은이 어렵스레 산에 올라 칡넝쿨 뜯어 / 山翁釆葛苦攀登

새 힘줄을 취하여 가느다란 노끈 만들고 / 擰取新筋作細繩

하릴없이 기나긴 여름 보내기 무료하여 / 不耐消閒度長夏

또 이웃 늙은이와 함께 고기 그물 짜는구나 / 且同隣叟結漁罾

 

 

갑자기 더우니 응당 소나기 올 걸 알겠어라 / 驟熱懸知急雨屯

새벽에는 천둥과 함께 동이로 쏟아붓겠지 / 曉來雷火照飜盆

해마다 한 번 내리는 모내기 철의 큰비를 / 年年一沛移秧水

특별한 은총임에도 늘 예사로 생각한다오 / 還把殊恩作例恩

 

 

 

한가로이 소일하며 청장관 이덕무

 

 

벼슬길에 떠도는 자취 부평(浮萍) 같으니 / 宦跡飄飄一點萍

두류산에서 어느덧 두 여름 맞았네 / 頭流再見草爲螢

공부하느라 돋보기 눈에 걸치고 / 工程眼羃靑硝鏡

청아한 마음으로 백자기(白磁器) 술 서로 권하네 / 雅契膓澆白墡甁

푸른 대 성기니 연기로 얽어매고 / 碧篔簹疏煙補綴

붉은 장미 시드니 비가 깨워주누나 / 紅薔薇困雨提醒

역승이여 솔 사이에서 시 읊기를 계속하고 / 丞哉不廢松間咏

종일토록 그늘진 정자에서 거니노라 / 竟日婆娑數樹亭

 

 

남쪽 하늘 세 차례나 갔다왔으니 / 三度天南往復來

어디엔들 망향의 대 없을쏜가 / 望鄕何處不宜臺

서둘러 전원을 둘러보니 죽순이 바야흐로 솟아나고 / 急先巡圃方抽筍

늦게 아문으로 돌아오니 매화 이미 졌구나 / 差晩還衙已落梅

편의를 독차지했으니 원래 복된 땅이지만 / 獨占便宜元福地

번뇌 못 없애면 시름이 곧 따르리 / 未除煩惱卽愁媒

그러나 한 물건만은 용납 못하니 / 雖然一物容難得

우레소리 같은 모기 떼를 쳐부수누나 / 撲破蚊群鬧作雷

 

 

 

의고16擬古 十六首-무명자 윤기

 

 

수수가 훤칠하게 자라 / 唐黍茁而長

정정하게 우뚝 솟았네 / 亭亭仰之卓

그 사이 난 작은 풀들 / 小草生其間

멋모르고 배우려 드네 / 不量強欲學

 

 

큰 새는 느릿느릿 날아가고 / 大鳥緩以進

뱁새는 팔랑팔랑 재빨리 가네 / 小鳥鴥而迅

재빨리 가는 놈 일시에 앞서겠지만 / 迅者一時先

느릿느릿 큰 새는 천리를 가네 / 緩者千里振

 

 

봄비가 시원히 내려 / 時雨沛然下

백화가 모두 즐거운데 / 百卉皆欣欣

가련하다 처마 밑 풀은 / 可憐簷底草

저 홀로 잎이 타는 듯 / 孤立葉如焚

 

 

복사꽃 모두 진 뒤 / 桃李凋零後

장미와 모란 폈네 / 薔薇與牧丹

울타리 아래 국화 순을 / 等閑籬下菊

사람들이 쑥인 줄 아네 / 人作蓬蒿看

 

 

담벼락 아래 박넝쿨 / 匏生屋壁下

뻗어가려도 의지할 데 없어라 / 欲蔓無所扶

누가 한 번 손을 써서 / 誰能一擧手

지줏대 꽂아 덩굴손 당겨줄지 / 揷枝引其鬚

 

 

피마자잎은 오동잎 닮았고 / 萆麻似梧葉

수수밭은 대숲과 비슷하지 / 唐黍如竹林

소리나 그림자 방불하지만 / 聲影雖髣髴

진짜 가짜는 본디 다른걸 / 眞假詎相侵

 

 

연못 물고기 낚시바늘에 놀라 / 池魚駭釣鉤

깊은 곳으로 달아나 숨더니 / 走向深處匿

잠시 뒤 미끼 냄새 맡고서 / 須臾聞餌香

결국은 다시 와 덥석 삼키네 / 畢竟來呑食

 

 

모기와 등에 사람 피 좋아해 / 蚊蝱利人肉

달려오다가 거미줄에 걸렸네 / 奔來罥蛛絲

거미란 놈 기뻐서 급히 묶다가 / 蛛喜正急縛

도리어 침에 쏘여 죽고 말았네 / 旋又遭殲夷

 

 

복숭아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 有桃蕡其實

날마다 들락날락 길이 나더니 / 成蹊日紛繽

모두 따먹은 뒤로는 / 自從摘盡後

한 사람도 오지를 않네 / 不復見一人

 

 

까치가 날아와 깍깍 울어 / 鵲來鳴喳喳

반가운 소식이라 기뻐했더니 / 家人喜報吉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 只是不知中

병아리만 날마다 줄어드네 / 雞兒减日日

 

 

참외 순 나자마자 꺾이더니 / 瓜生遭挫折

가을 들어 옆으로 움 돋았네 / 入秋傍生蘖

꽃피우고 열매 맺어 보려도 / 雖欲花而成

서리와 눈 닥치니 어이하랴 / 其奈迫霜雪

 

 

미인이 손톱에 물들이기 좋아해 / 佳人好染爪

봉선화 이 꽃을 사랑하지만 / 愛此鳳仙花

유월이라 꽃이 채 지기도 전에 / 六月花未盡

뽑혀져 갈림길에 버려졌도다 / 拔之棄路叉

 

 

어린아이 숨바꼭질 배울 때 / 小兒學迷藏

두 손으로 제 눈을 가리네 / 兩目手以掩

꼭꼭 숨었노라 생각하면서 / 自謂能隱身

남에게 들킨 줄을 모른다네 / 不知人指點

 

 

발바리 개들 친하게 뒹굴고 놀며 / 羣猧意親好

서로 파리와 벼룩 잡아주다가도 / 相與齧蠅蚤

작은 뼈다귀 하나 보기라도 하면 / 忽得一小軱

머리를 물어 죽일 듯 사납게 싸우네 / 闘噬欲碎腦

 

 

닭이 오리알을 품어 까서 / 雞伏鴨卵啄

마치 제 새끼마냥 키웠는데 / 將護如己兒

물 만나자 뛰어들어 멱 감으며 / 遇水爭入浴

아무리 불러도 오지를 않네 / 呼之不肯隨

 

 

아이들 정교하게 얼음을 조각하여 / 羣童巧斲氷

봉우리가 수려하고 우뚝하니 / 峯巒秀而攢

마루와 섬돌 사이에 두어 / 置之軒砌間

여름날 구경거리 만들려 하네 / 將作炎天翫

 

 

 

영동사 무명자 윤기

 

화왕이 백두옹에게 깊이 감사하였으니 / 花王深謝白頭翁

넌지시 간곡히 깨우쳐준 이 설총이었네 / 諷諭丁寧有薛聦

띠에 쓰길 청하고 고관에 발탁했으니 / 能請書紳高秩擢

신문왕이 또한 성군의 풍도 있었다오 / 神文亦是聖君風

 

신라의 설총(薛聦)이 말하였다.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왔을 때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치아를 가진 장미(薔薇)라는 이름의 한 미인이 왕의 향기로운 휘장에서 잠자리 시중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자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는 이름의 한 장부가 말하기를 임금이 된 사람은 덕이 있는 노신을 가까이하여 흥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으며 요염한 미인을 친압(親狎)하여 망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문왕(神文王)은 낯빛을 바꾸고 이 말을 기록하여 경계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두강 길을 가던 중에 짓다斗江路中作-미산 한장석

 

방초는 하늘에 이어지고 먼 숲은 나직한데 / 芳草連天遠樹低

강 따라 길은 언덕 동서쪽으로 나오네 / 緣江路出岸東西

벽도화는 떨어지고 장미가 피었는데 / 碧桃花落薔薇發

꾀꼬리는 날고 두견새는 우네 / 黃栗留飛杜宇啼

비탈길은 구름 속에 파협의 잔도로 통하고 / 鳥道雲通巴峽棧

고깃배는 봄에 무릉의 개울로 들어가네 / 漁舟春入武陵溪

인정은 한 행렬의 기러기 같지 않으니 / 人情不似一行雁

혼자서만 훨훨 옛 집을 찾아가네 / 獨自翩翩尋舊棲

 

누님이 퇴촌(退村) 시댁에 가는 것을 모셨다가 돌아올 때는 홀로 왔다

 

 

 

현재에서 봄날 낮에 마음 가는 대로 짓다縣齋春晝謾成-한장석

 

 

제비는 쌍으로 날고 대낮은 깊은데 / 海燕雙飛白日深

장미꽃 피어나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네 / 薔薇花發雨淋淋

반쪽 주렴에 날아드는 버들솜은 봄눈인가 싶은데 / 半簾飛絮疑春雪

한 뜰 안의 짙은 푸름은 낮 그늘을 이루네 / 一院濃靑作晝陰

문서 끝에 서명 희미하게 먹물 흔적 남아있고 / 紙尾署稀留剩墨

역마의 편지 신속하니 겸금에 해당하네 / 驛蹄書迅抵兼金

용성의 봄빛이 백발을 재촉하는데 / 龍城春色催華髮

도리어 향수 때문에 동곳에도 꽉 차지 않네 / 却爲鄕愁不滿簪

 

 

 

황곡 옛 거처를 방문하다訪篁谷舊居-미산 한장석

 

매실은 둥글둥글 감잎은 새로운데 / 梅子團團柹葉新

정원 꽃들 나를 기다려 남은 봄을 머물러 두었네 / 庭芳待我駐餘春

떠돌이 신세 오래인데 끝내 어디에 머무를까 / 萍浮久矣終何泊

상숙이 예전 같으니 일찍이 인연 있었지 / 桑宿依然夙有因

물가에는 훨훨 떼지어 내려오는 해오라기인데 / 渚上翩翩群下鷺

하늘가에는 아득히 홀로 돌아가는 사람이네 / 天邊渺渺獨歸人

십 년이나 전원에 돌아올 계책이 늦었으니 / 十年晼晩田園計

다 늙어 속진 털지 못함을 그저 슬퍼할 뿐이네 / 老大徒傷未拂塵

 

 

부들 싹은 하늘하늘 보리는 이들이들 / 蒲芽獵獵麥油油

곡우 되어 세 차례 김매며 이미 수확을 점치네 / 穀雨三鋤已占秋

한 시렁의 거문고와 책은 아이에게 주고 / 一架琴書兒與付

사방 이웃의 쟁기로 스스로 생계를 도모하네 / 四隣耒耟自爲謀

단약 굽는 화로는 늘 속세 인연으로 차가우니 / 丹爐每被塵緣冷

, 묵돌로 만년의 휴식 계책이 어긋났다네 / 墨突嗟違晩計休

전에 한 기약이 갑자기 생각남을 알겠나니 / 知有前期凌遽起

팥배나무 꽃 피어 있고 자고새가 울어대네 / 野棠花發叫鉤輈

 

 

고향 정원 봄날의 초목들은 정녕 아름다운데 / 鄕園春物正華滋

모두 산에 사는 노인이 손수 심은 것들이라네 / 摠是山翁手種枝

버들은 줄기 자라 높이가 지붕을 넘고 / 楊柳絲長高過屋

장미는 꽃 난만해 빼곡히 울타리를 이루었네 / 薔薇花爛密成籬

수년 동안 만나고 헤어지며 그저 노년 되어가니 / 數年逢別仍衰暮

몇 차례나 돌아오려 했으나 꿈속 생각뿐이었네 / 幾度歸來只夢思

원숭이 학도 응당 속세로 되돌리는 수레를 조롱하리니 / 猿鶴應嘲回俗駕

붉은 작약 자세히 보고 이별하게 됨을 슬퍼하네 / 細看紅藥悵將離

 

 

 

 

기노사(기정진) 선생에 대한 만사奇蘆沙先生挽-매천 황현

 

 

인재가 근세 들어 성하다 해도 / 近世彬彬盛

진유는 끝내 또한 많지 않다네 / 眞儒竟亦稀

선생께서 남방에서 일어나시어 / 先生起南服

한 손으로 물길 막아 동으로 돌리셨네 / 隻手障東歸

보배로운 거울에 요정조차 굴복하니 / 寶鏡妖精伏

서리 치는 하늘의 찬란한 별빛 같으셨네 / 霜旻宿曜輝

은미한 그 말씀은 천고에 전해지리니 / 微言足千古

크게 한숨 쉬며 장미 이슬에 씻네 / 太息盥薔薇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獨坐書懷-운양 김윤식

 

 

작년 겨울에 나는 서()() 두 형과 함께 여러 달 동안 어울려 노닐었는데, 두 형은 내년 봄에 나란히 말을 타고 나를 찾아오겠노라 약속했다. 3월에 편지를 받았는데, 전날의 약속을 기억하여 지키겠다고 하기에 내심 기뻐하며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꽃들은 다 지려하고 마음이 울적하여 시를 지었다.

 

 

조용히 거하며 게을리 긴 봄날 보내느라 / 端居倦長春

유유자적하며 치레 따윈 하지 않았네 / 于于謝雕飾

때때로 개울가 풀 향기 찾고 / 時尋澗草香

험한 길 무릅쓰고 산에 올랐네 / 忘險得前陟

홀연 들려오는 꾀꼬리 울음소리에 / 忽聞黃鸝鳴

좋은 약속 다가온 걸 알아차렸네 / 幽期認在卽

좋은 약속 어길 수 없음은 / 幽期未可誤

좋은 시절 얻기 어렵기 때문 / 良辰未易得

어렸을 적 강가에서 지냈었기에 / 小少生江干

바람의 기색을 살필 줄 아네 / 能知候風色

앉아 바라보니 돌아오는 돛단배 빠르기도 해라 / 坐見歸帆疾

적막한 가운데 해가 또 기울었네 / 寥寥到日昃

담장 동쪽 장미나무도 / 墻東薔薇樹

받쳐 줄 사람을 기다리는데 / 亦待人扶植

외로운 하루를 내 어찌 견디랴 / 孤居我何堪

이 간절한 마음을 어찌 알까 / 焉知此情極

가끔씩 발을 다시 내리고 / 時復下葦箔

상자 열어 받은 편지 살펴보았네 / 開函閱華墨

군자는 의기를 중시하는 법 / 君子重義氣

어찌하여 이랬다저랬다 하는가 / 寧爲二三德

알겠노라 세상일에 얽매어 / 會知俗事牽

날마다 동쪽으로 갔다 남북으로 분주하겠지 / 征東日南北

녹시의 훈계를 소중히 간직하면 / 珍重鹿豕戒

막혔던 가시덤불이 활짝 열릴 것이요 / 豁然開榛塞

깨끗한 마음의 먼지를 닦으면 / 勤拭氷壺塵

늘 슬퍼하며 지낼 필요도 없으리 / 不須恒惻惻

 

 

 

기정이 어젯밤에 술에 취하여 정현도 집에서 잤다. 석촌의 두 선비가 돌아갔다. 기정이 남루(南樓)로 나를 방문하여 어제 운으로 시를 지었다. -하재 지규식

 

 

감탄부생취산빈(堪歎浮生聚散頻) / 부생이 자주 모였다 흩어짐을 탄식하니

분호귀객루첨건(汾湖歸客淚沾巾) / 분호로 돌아가는 나그네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시주증위청간주(詩酒曾爲淸澗主) / 시와 술은 일찍이 청간의 주인이고

어초동작광릉인(漁樵同作廣陵人) / 어부와 목동은 함께 광릉 사람 되었네.

앵어관관호구우(鶯語關關呼舊友) / 앵무새 울며 옛벗을 부르고

장미담담석잔춘(薔薇淡淡惜殘春) / 장미는 담담하게 남은 봄을 안타까워하네.

하노생애련재차(荷老生涯憐在此) / 하로의 생애가 이곳에 있음이 어여쁘니

하시능득도홍진(何時能得到紅塵) / 언제나 홍진에 도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