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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반 집안의 예법

淸潭 2017. 1. 27. 13:26

민반 집안의 예법

(어우야담)


동지(同知) 민반(閔泮)의 부인 박씨는 박거소(朴去疎)의 딸이다. 소헌 왕후(昭憲王后)의 질녀이며, 평양군(平陽君) 박중선(朴仲善)의 여동생이며, 영의정 평성 부원군(平城府院君) 박원종(朴元宗)의 숙모다.

성품이 명민하고 예법이 있었다. 내 외가의 노비들은 일찌기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용모가 박씨와 흡사하다고 했다. 박씨가 부모를 위하여 묘 아래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에, 제수로 쓸 두부를 잃어버렸다. 여종들이 시끄럽게 서로 떠넘기고 소리 지르며 싸우니, 박씨가 말하였다.

"가려 내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고는 여종들을 뜰 가운데 늘어앉히고 물을 가져다가 차례대로 입 안을 가시고 그릇에 뱉어 내도록 했다. 이에 음식을 몰래 먹은 자가 가셔 낸 그릇에서 두부 찌꺼기가 나왔으니 감히 그 간악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 명철한 지혜가 이와 같았다. 박원종이 매양 박씨에게 와서 문안드릴 때면, 반드시 시비(侍婢)에게 궁중에서 하는대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그를 대접하도록 했으니, 그 집안 예절이 이와 같았다.


동지 민반의 집은 구리개(銅峴) 여장리(麗墻里)에 있었는데, 나의 외숙부 민광세(閔匡世)가 그 집을 팔고 쌍문리(雙門里)로 이사하니, 좌랑(佐郞) 정사웅(鄭士雄)이 구리개의 집을 사서 살았다.

매일 밤 꿈에 한 늙은 재상이 흰 수염에 죽장(竹杖)을 짚고는 여종 산비(山婢)를 부르며 말했다.

"지금은 어떤이가 내 집에 들어와 사느냐?"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옛 주인이 누군가 물어 보니, 노인은 곧 민동지였고 산비는 곁에서 모시던 종이었다. 정사웅은 매우 두려워 그 집을 팔고 떠났다.

민광세는 효성과 우애를 두루 갖추었으며, 집에 있을 때의 몸가짐이 고상한 선비와 같았다.

그 품행이 매우 뛰어나 세상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바였는데, 평생 현달함을 구하지 않아 벼슬하지 않고 죽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동지(同知)----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조선 시대의 종2품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