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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金庾信]

淸潭 2016. 9. 21. 10:00

김유신[金庾信]

 

김무력(金武力) 이간(伊干)의 아들인 서현(舒玄) 각간(角干) 김씨의 장자는 유신(庾信)이고 그 동생은 흠순(欽純)이다. 맏누이는 보희(寶姬)로 어릴 때의 이름은 아해(阿海)이고, 누이동생은 문희(文姬)로 어릴 때의 이름은 아지(阿之)이다.

유신공은 진평왕 17년 을묘(서기 595)에 태어났는데 해와 달, ()()()()() 등의 칠요(七曜)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등에 칠성의 무늬가 있었으며 신기하고 기이한 일도 많았다.

나이 18세가 되던 임신년(서기 612)에 검술을 익혀 국선(國仙)이 되었다. 그 당시 백석(白石)이란 자가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랑도의 무리에 속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유신랑은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밤낮으로 모의하고 있었는데, 백석이 그 모의를 알고 공에게 말하였다.

제가 공과 함께 몰래 저들을 정탐한 연후에 일을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신랑은 기뻐하며 친히 백석을 데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고개 위에서 쉬고 있는데, 어떤 두 여자가 유신랑을 따라 왔다.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러서 잠을 자려는데 또 한 여자가 홀연히 왔다. 유신랑이 세 낭자와 즐거이 이야기하는데, 낭자들이 맛있는 과자를 주었다. 유신랑은 과자를 받아먹으면서 마음으로 서로 허락하고, 곧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낭자들이 말하였다.

공께서 하신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원하옵건대 백석을 잠시 떼어놓고 저희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시면, 다시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자, 낭자들이 신의 모습으로 변하여 말하였다.

우리들은 내림(奈林)혈례(穴禮)골화(骨火) 등 세 곳의 호국신(나라를 지키는 신)이다. 지금 적국의 사람이 그대를 유인해 가는데도 그대는 이를 모른 채 길을 떠났다. 그래서 그대가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말을 마치자 사라져버렸다. 공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엎드려 두 번 절을 하고 숲에서 나왔다. 그리고 골화관(骨火舘)에 유숙할 때 백석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다른 나라에 가면서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다. 함께 집에 돌아가서 가지고 왔으면 한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서는 백석을 묶어놓고 사실을 캐묻자, 백석이 말하였다.

 

저는 본래 고구려 사람입니다.[고본(古本)에는 백제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잘못된 것이다. 추남(楸南)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또 음양을 역행한다는 것도 보장왕(寶藏王)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신라의 유신은 바로 고구려의 점쟁이 추남이었다.’라고 했습니다.[본에 춘남(春南)으로 되어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국경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서[혹은 자웅(雌雄)도 아닌 웅자(雄雌)라 하니, 이것은 더더욱 뒤바뀐 일이다.] 점을 치게 하였더니 아뢰기를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역행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대왕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겼고 왕비도 크게 화가 나서 이것은 요망한 여우의 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비가 왕에게 다시 다른 일로 추남을 시험하되, 만일 틀린 말을 하면 중벌을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쥐 한 마리를 상자 속에 가두어 놓고,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더니, 추남은 이것은 필시 쥐이며, 여덟 마리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틀린 말을 했다고 하여 목을 베려고 하자 추남이 맹세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대장이 되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곧장 추남을 베고 쥐의 배를 갈라 보니, 새끼 일곱 마리가 있었으므로, 그제야 추남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밤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의 부인의 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 신하들에게 이 꿈을 이야기해 주자, 모두 말하기를 추남이 마음속으로 맹세하고 죽더니 과연 그러하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어 이렇게 유신랑을 유인할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공은 곧 백석을 죽이고 온갖 제물을 갖추어서 세 신에게 제사를 드렸는데, 모두 몸을 드러내고 제사를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신 [金庾信]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만파식적[萬波息笛]

31대 신문왕(神文王)의 이름은 정명(政明)이고 김씨이다. 개요(開耀) 원년 신사(서기 681) 77일에 왕위에 오르자, 거룩하신 선대부왕인 문무대왕(文武大王)을 위하여 동해 바닷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였다.[절에 있는 기록은 이러하다. “문무왕께서 왜군을 진압하려고 이 절을 짓기 시작하셨지만 다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어 바다의 용이 되셨다. 그 아드님이신 신문왕께서 왕위에 오른 해인 개요 2년에 공사를 마쳤다. 금당 돌계단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을 하나 뚫어두었으니, 곧 용이 절로 들어와 돌아다니게 하려고 마련한 것이다. 왕의 유언에 따라 뼈를 보관한 곳이므로, 대왕암(大王岩)이라고 불렀고 절은 감은사(感恩寺)라고 하였다. 뒤에 용이 모습을 나타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고 하였다.”]

 

다음해 임오년(서기 682) 5월 초하루에[어떤 책에는 천수(天授) 원년(서기 690)이라 하나 잘못된 것이다.] 해관 파진찬 박숙청(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있었는데, 감은사 쪽으로 떠내려 와서 물결에 따라 오가고 있습니다.”

 

왕이 이상하게 여기어 천문을 담당한 관리인 김춘질(金春質)[춘일(春日)이라고도 한다.]에게 점을 치게 하였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거룩하신 선왕께서 이제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또 김유신 공도 삼십삼천의 한 분으로 이제 이 신라에 내려와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같이 하여 성을 지킬 보물을 내리려고 하십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에 행차하시면 반드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큰 보물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왕은 기뻐하며 그 달 7일에 이견대(利見臺)에 행차하여 그 산을 바라보고는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도록 하였다. 산의 모습은 마치 거북이 머리 같았고 그 위에는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해졌다.[일설에는 산도 또한 대나무처럼 낮에는 갈라지고 밤에는 합해진다고 하였다.]

사신이 와서 이러한 사실을 아뢰자, 왕은 감은사로 가서 묵었다. 다음날 오시에 대나무가 합해져서 하나가 되더니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쳐 7일 동안이나 깜깜하였다가 그 달 16일이 되어서야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갔는데, 용이 검은 옥띠를 받들고 와서 바쳤다. 왕이 용을 맞이하여 함께 앉아서 물었다.

이 산의 대나무가 혹은 갈라지고 혹은 합해지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용이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한 손으로 손뼉을 치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합해진 연후에야 소리가 납니다. 거룩하신 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서 불면 천하가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지금 왕의 아버지께서 바다의 큰 용이 되셨고 김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마음을 합치셔서 이처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큰 보물을 저에게 바치도록 하셨습니다.”

 

왕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서 오색찬란한 비단과 금과 옥으로 용에게 보답하였다. 그리고 명을 내려 대나무를 베도록 하였는데, 바다에서 나올 때 산과 용이 홀연히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서 묵고는 17일에 지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태자 이공(理恭)[즉 효소대왕(孝昭大王)이다.]이 대궐을 지키다가 이 일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축하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옥대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이 옥띠의 여러 개의 장식은 모두 다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태자가 아뢰었다.

하나를 따서 물에 넣어 보십시오.”

왼쪽 두 번째 것을 따서 계곡물에 넣었더니 곧 용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고, 그 땅은 연못이 되었다. 그래서 이 연못을 용연(龍淵)이라고 부른다.

 

왕이 대궐로 돌아와서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月城)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다.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면 비가 오고 장마가 지면 날이 개었으며, 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래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만파식적 [萬波息笛]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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