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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의 지름길

淸潭 2016. 9. 10. 09:35


미국 샌디에고 교회의 큰 저택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저예요. 저 지금 돌아왔어요.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들이 제발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빌어온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거렸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 친구 하나를 데리고 왔어요.

그 친구는 몹시 다쳤어요.

하지만 딱하게도 그 친구는 갈 집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동안 소식이 없었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무렴 그래라. 우리와 당분간 같이 살자꾸나.

지금 어디 있니. 빨리 오거라.”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당분간이라는 말을 듣고

그 친구와 떨어질 수 없다며 늘 함께 살겠다고 했다.


아들의 억지에 못이긴 어머니는 할 수 없이

한 일 년 쯤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그 친구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요.”

그 친구는 몹시 불쌍한 친구예요,

외눈에, 외팔에, 다리도 하나밖에 없어요.”


몇 년 만의 통화였지만 성급한 어머니는 그 말을 듣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했다.

“예야, 너는 너무 감상적이구나. 넌 지금 전쟁터에서 돌아왔어.

그 친구는 결국 너의 짐이 될 거야.”

“짐이 된다고요?”

 

아들은 어머니가 채 말을 잇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애타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들의 연락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군본부에서 전보 한 장이 날아왔다.

아들이 샌디에고 호텔 1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아들의 시체가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들은 외눈에, 외팔에, 외다리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가족은 서로를 따뜻이 감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고통을 위로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끼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 서로에게 마음 아프게 한 모든 것을 용서 청하고

화해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김한기 신부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