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디에고 교회의 큰 저택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저예요. 저 지금 돌아왔어요.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들이 제발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빌어온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거렸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 친구 하나를 데리고 왔어요.
그 친구는 몹시 다쳤어요.
하지만 딱하게도 그 친구는 갈 집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동안 소식이 없었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무렴 그래라. 우리와 당분간 같이 살자꾸나.
지금 어디 있니. 빨리 오거라.”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당분간이라는 말을 듣고
그 친구와 떨어질 수 없다며 늘 함께 살겠다고 했다.
아들의 억지에 못이긴 어머니는 할 수 없이
한 일 년 쯤 같이 살자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그 친구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요.”
그 친구는 몹시 불쌍한 친구예요,
외눈에, 외팔에, 다리도 하나밖에 없어요.”
몇 년 만의 통화였지만 성급한 어머니는 그 말을 듣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했다.
“예야, 너는 너무 감상적이구나. 넌 지금 전쟁터에서 돌아왔어.
그 친구는 결국 너의 짐이 될 거야.”
“짐이 된다고요?”
아들은 어머니가 채 말을 잇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애타는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아들의 연락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군본부에서 전보 한 장이 날아왔다.
아들이 샌디에고 호텔 1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아들의 시체가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들은 외눈에, 외팔에, 외다리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떤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가족은 서로를 따뜻이 감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고통을 위로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끼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 서로에게 마음 아프게 한 모든 것을 용서 청하고
화해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김한기 신부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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