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귀봉
◎율곡의 친구 중에 귀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이란 이가 있었다. 그는 우리 역사상에서 이른바 지체가 낮은 사람이라 사회적으로 활약하지 못하긴 했으나 학문과 인격이 탁월하여 높은 칭찬을 받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한 분이었다.
서고청(徐孤;靑본명은 서기(徐起). 조선조(朝鮮朝) 14대 선조(宣祖) 때의 학자(學者))은 학자들에게,
『너희들이 만일 제갈량(諸葛亮)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거든 송귀봉을 보아라. 그가 바로 제갈량 같은 인물이니라』하였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어서 율곡도 매양 그의 앞에서는 몸을 삼갔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율곡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 구봉의 사람됨과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장차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송익필을 불러 쓰시라고 선조대왕께 아뢴일이 있었다.
선조대왕은 그런 인물이라면 그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보자고 하셔서 율곡은 밤중에 구봉을 불러들였다.
구봉이 어전에 부복하고 묻는 말씀에만 대답을 하였더니 임금께서 낯을 볼 수가 없어 가까이 오라 하시고는 낯을 들라 하시었다.
그러자 구봉이
‘소신에게는 압인지기가 있어 성상께서 감당하시기가 어려울까 두려워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압인지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왕은
‘그럴 리가 없다. 낯을 들고 짐을 보아라.’고 말씀하셨다.
할 수 없어 구봉이 얼굴을 들어 임금을 주시하는 순간 구봉의 눈에서 호랑이와 같은 불빛이 번쩍 일어나고 대왕은 놀라 넋이 빠져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구봉은 한번 쳐다보고는 곧 부복하여 어떤 분부가 있기를 기다렸으나 오랫동안 말이 없으시기에 ‘소신 물러가겠습니다.’ 하고는 나왔다.
임금은 너무나 놀라서 그 후 송익필이면 말도 말라고 하시었다 한다.
선생은 처사로서 학문을 닦고 후진양성을 낙으로 삼으셨는데 문하에 김장생 정엽 등 뛰어난 선비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구봉선생은 임진왜란이 끝난 2년 후에 돌아가셨는데 향년 66세였다.
구봉선생이 돌아가신 뒤 어느 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제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일이 있었다.
그 선비는 제삿날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앞당겨 당도하려고 부지런히 걸어서 올라왔다.
구리쇠 나루를 건너 남대문 쪽으로 걸어오는데 길에서 어떤 귀인의 행차를 만났다.
길옆으로 비켜서니 가마 안에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보니 구봉선생이었다.
구봉선생께서 하시는 말이
‘자네 좀 늦었네. 난 갈 길이 바빠 그만 가네. 이것이나 받아가게.’
하시면서 헌 붓 한 자루를 주셨다.
그 선비는 공손히 받아들고 땀을 닦으며 남대문에 도착하였다.
그제사 제정신이 번쩍 들어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분을 만난 것이었다.
하도 기이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급히 제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보니 제삿날은 이틀 전이었다.
그 제자는 자기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는 받은 붓을 모두에게 보였다.
제주(祭主)는 그 붓이 틀림없이 구봉선생이 쓰시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출처] 단학 인물 열전(송익필편) (도인학교) |작성자 천년송
'글,문학 > 野談,傳說,說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 (0) | 2016.09.09 |
---|---|
노스님의 한숨 (0) | 2016.09.08 |
[야담] 옥범좌수 (0) | 2016.09.06 |
訐以爲直(알이위직) (0) | 2016.09.05 |
사또의 이마에 빨간 점이 생겨 버렸다 (0) | 2016.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