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주역>을 서른여섯번이나 읽었다는 명리학자를 찾아갔다. 흰 수염을 쓰다듬던 노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떠나지 말게.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길에 죽을 운이 기다리고 있어.”
선비가 애원했다. “꼭 가야 합니다. 죽을 운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알려주십시오.”
도인은 육갑을 짚어보고 오래도록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야.”
며칠 뒤, 젊은 선비는 말고삐를 잡은 하인과 함께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가는 내내 계속 도인의 말만 귓전에 맴돌았다.
“이렛날 첫번째로 만나는 여인과 동침을 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느니라.”
일곱째 날, 젊은 선비는 지리산 언저리를 돌며 마른침을 삼켰다. 산촌 마을을 지나다가 드디어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인을 만났다. 가슴은 쿵쿵 뛰는데 실행할 일은 생각할수록 난감하기 짝이 없다.
젊은 선비는 하인과 말을 먼저 주막으로 보내놓고 개울가로 내려갔다. 빨래를 하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선비를 쳐다봤다. 선비는 덮치려는 생각을 접었다. 여인의 얼굴에서 기품이 배어났다.
“부인, 소인의 목숨이 달린 부탁이 있습니다. 부인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인은 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십년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 여인은 선비의 진지한 표정을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쇤네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선비는 긴 한숨을 땅이 꺼져라 토하고 나서 간청했다.
“한눈 안 팔고 공부를 했지만 과거만 보면 낙방해 여덟번째 떨어진 뒤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책들을 불살라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날 밤, 꿈에 돌아가신 부친께서 청룡을 타고 내려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던 젊은 선비는 겨우 울음을 삼키고 한양으로 떠나기 전 명리학자를 찾아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레째 만난 첫 여인이 바로 부인입니다.”
여인이 깜짝 놀라 얼굴을 치마 속에 파묻더니 잠시 후 산자락에 있는 외딴집을 가리키며 모깃소리로 말했다.
“어둠이 내리면…….”
여인은 서둘러 빨래터를 떠나고 늦가을 짧은 해는 금세 기울었다. 몸을 숨겨 숲속에서 서성이던 젊은 선비는 어둑해지자 그 여인의 집으로 갔다. 초가삼간 옹색한 안방, 호롱불 아래 개다리소반에 조촐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시집올 때 입었던 듯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술 한잔을 따랐다. 선비는 거푸 석잔을 비우고 호롱불을 껐다. 선비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다소곳이 앉은 여인의 뒤로 가 옷고름을 풀자 벌써 여인의 몸은 불덩어리가 되었다. 속치마만 입은 여인이 금침을 깔았다.
여색에 빠져본 적이 없는 숫총각 선비를 농염한 여인이 적극적으로 탐하기 시작했다. 젊은 선비는 일합에 나가떨어졌다. 어둠이 눈에 익자 창호에 내려앉은 달빛에도 윤곽이 드러났다. 여인은 선비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고선 ‘안주는 이것’이라는 듯 육덕진 젖꼭지를 입에 물렸다. 또다시 양물이 불끈 솟았다. 이합은 둘 다 서두르지 않았다. 초가삼간이 사시나무 떨듯이 두 남녀의 합환에 장단을 맞췄다. 삼합을 마치고 젊은 선비는 그 집을 나서 마을 어귀 주막으로 갔다.
하인을 깨우자 “도련님, 돌다리가 무너져 말이 죽었어유. 도련님이 탔더라면 도련님 목숨도 온전치 못했을 거유.” 그렇게 목숨을 건진 선비는 무사히 과거를 봤고 장원급제했다. 선비는 사간원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을 보내다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들렀다. 그러다가 불현듯 3년 전 지리산 자락에서 만났던 여인이 떠올라 찾아갔다.
허구한 날 노름판을 전전하던 남편은 객사하고, 세살 난 아들과 함께 사는 그 여인이 불쑥 찾아온 선비를 보고 얼어붙었다. 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 있는 아들의 넓은 미간, 짧은 인중을 보고 암행어사는 여인을 안았다.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