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솔가리 긁는 행위도 처벌할 가치가 있는가?

淸潭 2015. 3. 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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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가리 긁는 행위도 처벌할 가치가 있는가?

내가 청주지방검찰청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1979년 겨울로 기억되는 어느 날, 진천군인지 괴산군인지 잘 기억은 없지만 시골 사람들 대여섯명이 땔감으로 사용키 위하여 남의 산에서 솔가리(말라서 떨어진 솔잎)를 한 짐씩 긁어온 혐의로 산림법 위반으로 입건되어 송치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도시 사람들은 나무를 때지 않고 구공탄을 난방용으로 사용하였으나, 시골에서는 아직도 솔가리나 나무를 베어서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요즘같이 기름보일러나 태양열 보일러 및 심야전기 보일러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고, 구공탄도 없었으며, 오직 산에서 생산되는 나무를 베거나 솔가리 등을 긁어다가 취사와 난방용으로 사용하였다. 나도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남의 산에 가서 솔가리를 긁거나 죽은 가지인 삭정이를 낫으로 쳐오거나, 나무를 베고 남은 고주박을 캐다가 취사용이나 난방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때에도 소위‘산감’이라는 사람들이 있어 산에서 생나무를 벌채하는 것을 단속하기는 했으나 솔가리를 긁거나 산 나무에서 삭정이를 쳐내는 것은 단속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당시에는 전 가정의 난방이나 취사는 오로지 산에 있는 나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1960년경에는 대부분의 산에는 나무가 없는 벌거숭이 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박정희 대통령이산림녹화사업을 전개하여 산에 나무를 심는 사업과 산에서 나무를 베는 행위를 엄단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산림법 위반 사범이 늘어났고, 또한 그에 대한 처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덕택으로 우리나라 모든산이 다시 푸르러지고, 나무에 의존하던 난방시설이 구공탄으로 바뀌었다가 요즈음은 가스, 기름, 태양열, 전기보일러 시대로 바뀌어 산에서는 솔가리 등 낙엽들이 그대로 수북이 쌓여 썩어가고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나는 어느 날 환갑이 훨씬 넘어 보이는 시골 할아버지가 검사실에 들어올 때 까만 고무신을 벗어들고 들어서는 것을 보고 신발을 신으셔도 된다고 말하고 무슨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그 노인은 발에 신은 양말 속에서 출석요구서와 돈뭉치를 꺼내면서 벌금 내러 왔다고 하였다. 사건기록을 보니 남의 산에서 솔가리를 한 짐 긁어온 혐의이고, 피의자는 환갑이 넘도록 살면서 검찰청에는 처음 와보는 순박한 농민이었다.

나는 검사실에 들어올 때 사무실 바닥에 흙이 묻을까 봐 검정 고무신을 벗어들고 들어올 정도의 순진한 사람이면, 앞으로 죄짓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사람이란 확신을 갖게 되어 저런 착한 사람에게 벌금형인들 부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어 “할아버지, 이 돈은 왜 가져오셨어요?”하고 물으니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도 자기와 똑같이 솔가리를 한 짐 한 죄로 입건되었는데 검사로부터 벌금 100,000원을 가지고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면서 나에 대한 출석요구서에는 벌금 내라는 말은 없었지만 벌금 내려고 준비해 왔다”고 했다.

“ 할아버지, 이 돈 어떻게 만들었어요?”하고 다시 물으니 “농촌에 어디 돈이 있습니까, 이자 돈을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고 대답하기에 나는 “할아버지, 이 돈을 오늘 중에 갖다 돈 빌려 준 사람한테 갚으면 이자안 줘도 될 거예요. 그 대신 서약서를 써야 하는데 글 아세요?” 하니 글을 모른다고 하여 직원이 미리 작성해 놓은 서약서 용지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게 하여 돌려보내고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기소유예를 결정하였다.

내가 그 할아버지에 대하여 기소유예 결정을 한 이유는 물론 그가 초범이고, 고령인 데다가 순진한 면도 있었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솔가리 긁은 경험이 있고 그것은 죄가 안 된다고 생각해 왔던 선입견 때문에 그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사건 이후에 생겼다. 이 노인은 자기 마을로 돌아가서 “벌금을 내러 검찰청에 갔더니 마음씨 착한 검사가 솔가리 긁는 것도 죄가 되니 앞으로는 솔가리를 긁어오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용서해 주어 벌금을 안 내고 그냥 왔다”고 자랑하고 다니자 똑같은 죄로 이미 벌금 100,000원씩을 낸 다른 피의자들이 “당신은 무슨 빽이 좋아서 검사가 벌금을 안 받느냐?”며 검찰의 불공정한 결정을 불평한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아무 사심 없이 결정한 것이지만 이는 검찰의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 생각하고 같은 사건일 경우 형평성을 지켜야 국민이 검찰을 믿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앞으로 한 마을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결정도 통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다른 검사들을 내 방으로 불러 “나는 솔가리 긁는 행위는 사안도 경미하고 처벌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기소유예 처분했는데 당신들은 벌금 100,000원씩 구약식해서 같은 마을 사람끼리 누구는 용서받고 누구는 처벌받느냐고 불평이 많다 하니 앞으로는 유사 사건을 결정할 때는 서로 상의해서 같은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그리고 “나는 어려서 솔가리를 많이 긁어다가 취사용으로 사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 세상에 솔가리를 긁는 행위는 사안도 경미하고 가벌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기소유예 처분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결정을 했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냐?”고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중 서울에서만 성장하여 시골 사정을 잘 모르는 젊은 검사한 사람이 “선배님은 솔가리 긁는 행위가 사안이 경미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차라리 생소나무 2~3주를 벌채하는 행위가 솔가리 긁는 행위보다 더 가볍다고 봅니다.”라고 말하기에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검사는 “소나무 2~3그루를 벌채하는 행위는 소나무 2~3주만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솔가리를 긁는 행위는 모든 소나무의 식량을 빼앗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소나무들에 해를 입히는 행위이므로 더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깊이 생각해 보니 그 검사의 논리도 일리가 있다고 느꼈으나,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던 앞으로는 한 마을에서 유사 사건이 여럿 발생하면 검사들끼리 미리 의논하여 같은 결론을 내기로 합의하고 헤어졌으나 ‘솔가리’긁는 사소한 행위마저도 각 검사가 성장해 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서 보는 각도와 생각이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데, 하물며 그보다 더 무겁고 복잡한 사건을 접하는 각 검사의 생각은 얼마나 다를까!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을 공정하고 형평성에 맞게 잘 처리하느냐는 그 검사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 따라 판이할 수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양극을 피하고 보편적인 가치와 상식을 찾아내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