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엘리트 家長의 잘못된 선택

淸潭 2015. 1. 8. 11:46

7억 쥐고도 "희망없다"… 엘리트 家長의 잘못된 선택

  • 곽래건 기자
  • 남정미 기자
  • 주희연 기자

  • 입력 : 2015.01.08 03:00 | 수정 : 2015.01.08 10:35

    [아내·딸 살해한 40代, 2년전 失職 전까진 성공가도]

    -잘 나갔던만큼 자존심 강해
    담당교수 만나서도 실직 숨겨… 부모에게도 빚있단 소리 안해

    장모 "형편 안 좋아 시골 가도 딸은 괜찮다고 했는데…"
    父 "다 내 탓… 죗값 치러야"

    "내 이야기를 막장 드라마로 몰고 가지 마라."

    서울 강남 고급 아파트에 살다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강모(47)씨가 경찰에서 한 말이다. 그가 말하는 '막장'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씨의 행동은 상식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아파트 매매가는 11억원 수준인데 대출금은 5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생활비로 쓴 돈과 주식 투자 손실을 합쳐도 3억7000만원이었다. 남은 1억3000만원을 포함해 6억~7억원의 자산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희망이 없다'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현재까지 경찰이 밝혀낸 범행의 전모다.

    지인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하면 강씨는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 명문대 경영학과에서 재무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도 받았다. 강씨의 과(科) 동기는 "대학원 때 저명한 교수의 조교를 한 데다 취직도 잘했고 강남에 아파트까지 샀다고 해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강모씨가 평소 낮에 머물던 서울 서초구의 고시원 방. 그는 최근 1년간 자택에서 1.5㎞ 떨어진 이 고시원에서 주식 투자 등을 했다. /이벌찬 기자
    강씨는 처음엔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일했고, 외국계 IT기업 한국지사로 옮겨 상무까지 한 다음 2009년 퇴사했다. 당시 부하 직원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3년간은 한방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의 옛 직장 동료는 "같은 대학 출신 아내와 캠퍼스 커플로 결혼한 뒤 직장에서도 임원까지 해서 말 그대로 '잘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전형"이라고 강씨를 표현했다.

    강씨는 2012년 12월 한방병원을 그만둔 뒤론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못했다.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마지막 직장에서 대표가 바뀌었고, 내가 있는 직책이 굳이 필요없다고 느껴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곧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고, 들어오는 일자리는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즈음인 2012년 11월 강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5억원을 대출받았다.

    강씨는 자존심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으로 생활금을 충당하는 와중에도 양가 부모에겐 빚이 있는 걸 알리지 않았다. 작년 스승의 날엔 대학원 지도 교수를 찾아갔지만 실직한 사실을 전혀 티 내지 않았다. 매일 아침 회사를 가듯 집을 나섰기 때문에 두 딸은 아빠가 실직했다는 것도 몰랐다.

    한동안 선후배의 사무실을 전전했던 그는 최근 1년간 집에서 1.5㎞ 떨어진 고시원에 다녔다. 강씨의 한 지인은 "직장 생활을 할 때 강씨는 주식 투자를 싫어했다"고 했다. 강씨는 그러나 고시원에선 주식을 공부하며 실제 투자를 했다. 이 고시원 관계자는 "(강씨는) 캐주얼 차림으로 매일 아침 9시쯤 와서 오후 7~9시까지 있다가 나갔다"고 했다. 같은 층에 살던 입주자는 강씨를 "점심 때만 4층 공용 부엌에 올라가 라면을 끓인 뒤 자기 방에서 혼자 먹곤 했다"고 기억했다. 강씨는 지난달 29일 "아는 사람들과 서울 양재동에 사무실을 구해 사업을 하기로 했다"며 고시원에서 짐을 뺐지만,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일가족을 살해했다.

    강씨는 7일 정오쯤 여동생이 속옷 등을 챙겨 서초경찰서로 찾아왔지만 면회를 거부했다. 살해된 세 모녀의 유족은 빈소를 차리지 않고 곧바로 화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선 강씨의 장모가 딸의 관을 고르며 흐느꼈다. 장모는 "딸애가 '형편이 어려워져 시골에 가 살 수도 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선처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생각 없다. 지은 죄에 대한 죗값을 치르도록 하겠다. 내가 잘못 키운 탓"이라 답했다.

    경찰은 7일 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양가 모두 중산층이고 경제적 상황이 정말 극단이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유복하게 자라다 갑자기 닥친 역경에 심리적으로 무너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