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淸潭 2014. 11. 1. 12:49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장례비·국밥값 남기고 떠난 독거노인

입력 : 2014.11.01 02:56

'집 비워달라' 통보에 자살… 전기·수도료도 봉투에 남겨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장례비·국밥값 남기고 떠난 독거노인
/동대문경찰서 제공
지난 29일 오전 "오늘 집을 나가기로 한 세입자가 연락되지 않아 이상하다"는 신고가 동대문경찰서 형사팀에 접수됐다. 출동한 형사들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주택 1층에 들어갔을 땐 세입자 최모(68)씨는 방에서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던 경찰은 집안 곳곳에서 돈이 든 봉투들을 발견했다. 현관 옆에는 전기요금 고지서와 전기요금이, 싱크대 옆에는 수도요금 고지서와 요금만큼의 돈이 함께 봉투에 담겨 있었다. 다른 방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사진〉에는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는 글귀가 겉면에 적혀 있었다. 그 안엔 10만원이 있었다. 출동한 경찰관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식사나 하라며 돈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례비로 추정되는 100여만원이 담긴 봉투도 발견됐다. 최씨가 남긴 돈은 총 176만원이었다. 대부분 빳빳한 신권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전세금 6000만원인 49.5㎡(15평) 남짓한 이곳에서 생활해왔다. 전세금 중 5700만원이 LH공사가 대출해준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이었다. 최근 집주인이 바뀌면서 "주택을 철거할 계획이라 집을 비워달라"는 부탁을 받자 최씨는 28일 LH공사에 집을 비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결혼을 하지 않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홀어머니를 모시던 최씨는 지난 3월 어머니가 별세한 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일한 혈육인 형은 20년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경찰은 "최씨는 노모가 숨진 뒤로는 외출을 삼갈 정도로 외로워했다"며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가 되자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웃들에 따르면 최씨는 이전 집주인 남편이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갈 정도로 인정이 많고 남에게 폐 안 끼쳤던 깔끔한 사람이었다"며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수습하고 사후 처리를 도운 경찰들에게 최씨가 무척 고마워한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조카를 수소문해 최씨가 남긴 돈을 전달했다. 조카는 "작은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가시는 길 편히 보내드리겠다"며 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