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13 15:17 | 수정 : 2014.08.17 09:05
‘슬로라이프’의 개념은 자신만의 삶의 템포를 찾고 그 안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며 ‘슬로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여성조선] Slow Life](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8/13/2014081302196_0.jpg)
이효리 + 동경
시간의 흐름을 따라 모든 인간이 ‘성장’해가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성숙’해졌다고 할 때, 나의 성장과 성숙의 단계에는 혼자만의 오래된 곁눈질 대상이 있다. 다름 아닌 트렌드 리더 라 불리는 ‘이효리’다. 나에게 이효리는 성장과 성숙의 흐름 속에서 변화된 다른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에는 갈색 긴 생머리와 힙합 스타일 옷이 멋져 보여 그녀의 패션을 모방했다. 유학 시절 우연히 시청하게 된 <이효리의 소셜클럽 골든 12>를 보기 전까지, 이효리는 나에게 그저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스타였다. 방송 속 그녀의 모습은 텃밭을 가꾸고, 유기견 보호 활동을 하고, 업사이클링, 채식주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행동주의자(Activist)로 그려졌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굿 라이프(Good Life)’를 실행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효리는 자연과 동화된 느린 삶을 보여주며 현재 제주도의 ‘소길댁’으로 살고 있다. 화려함 뒤의 소탈함과 소소한 일상을 담은 블로그를 통해 그녀는 대중과 소통하고 있고, 대중들은 그녀의 삶을 동경하고 있다. 그녀의 삶의 진정성에 대한 부러움에 찬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실천을 통해 행복을 습득하고, 체험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도 실천 가능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대중들에게도 전해진다면, 트렌드 리더인 그녀는 분명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
핀란드 + 동경
내가 핀란드에서 뇌가 리셋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일화 중 하나가 타르야 할로넨(Tarja Halonen) 전 핀란드 대통령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버려졌지만, 그녀에게는 필요한 액자를 주워 갔다. 평소 ‘리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 그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례다. 한 나라의 리더였던 사람이 이렇게 몸소 검소함을 보이고 권위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 많이 가진 이가 좀 더 양보하며 나누고 건강한 다수가 아픈 소수를 포용하는 곳이 바로 핀란드다.
나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거주하며 ‘대안적 도시의 삶(Alterna tive Urban Life)’에 관심을 갖고, 도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나만의 일일 레스토랑을 여는 ‘레스토랑 데이’, 도시 전체가 벼룩시장으로 탈바꿈하는 ‘클리닝 데이’, 고령화사회에서 대안적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노인 공동주택인 ‘로푸키리’,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인 ‘헬싱키 시간은행’ 등을 통해 핀란드 사람들은 개인의 행복이 존중되는 동시에 사회적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며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발적 행동’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역동성과 함께 핀란드인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드러난다. 그들에게 집이란 투자의 대상이 아닌 가족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고 사연이 있는 오래된 물건들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살펴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역으로 삶에 대한 가치의 차이가 곧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대한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시선보다는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활동이나 여행 등의 소비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점에서 그들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과 소중한 의미를 찾는 핀란드 사람들의 열정과 여유는 나와 남편이 ‘어디에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위한 길을 고민하게 했다.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삶의 가치와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구와 사는가’ 역시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이란 결국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감과 몰입
나는 빠름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을 탐닉하는 공예가이고, 남편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며 사회적, 도덕적 관점에서 ‘굿 라이프’를 연구하는 철학가다. 공예를 통해 행복한 삶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연구하는 나와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복을 탐구하는 남편은 ‘행복’이라는 학문적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다. 행복은 늘 ‘진행 중’인 것이며 항상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공식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 과정들은 항상 실험과 조정이 요구된다.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조화로운 삶으로,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 등의 조화를 의미한다.
![[여성조선] Slow Life](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8/13/2014081302196_1.jpg)
삶을 즐기는 슬로라이프
우리 부부는 ‘느림’을 상실한 시대에 ‘천천히 사고하기’와 기계보다 느리더라도 인간의 감성을 담은 수작업을 강조하는 ‘수공예적 삶’을 예찬한다. 하지만 이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반영한 삶의 양식을 ‘슬로라이프’라 일컫는다.
슬로라이프의 개념은 시간적 빈곤을 탓하면서 단순히 빠름에 역행해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해석되기에는 무리가 있고 또한, 과소비와 무한 경쟁에 대한 반성과 표면적 비판만 담고 있지도 않다. 인간의 본질적 성찰을 담은 슬로라이프의 개념은 행복한 삶의 기본적 성분들을 극대화하는 삶의 선택 중 하나다. 이는 유의미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며 정신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활동과 내적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을 내포한다. 이러한 삶의 가치 안에서 ‘시간’이 다소 더 걸린다 해도, 혹은 ‘몰입’의 경험으로 잠시 시간을 잊는다 해도, ‘시간’이나 ‘속도’에 얽매이거나 그것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슬로라이프’의 개념에서 재해석되는 ‘슬로’의 정의가 될 수도 있다.
동경, 그리고 핀란드 슬로라이프의 2막
어떤 것을 막연히 원하고 생각하는 것을 ‘동경’이라고 한다. 이 ‘동경’은 ‘실행’되는 순간 더 이상 ‘동경’이 아닌 ‘실제’가 된다. ‘동경’이 타인의 삶에 대한 부러움에 그 기반을 둔다면 ‘실행’은 그 부러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하지만 그 무기가 강력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양식과 가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슬로라이프’의 개념은 자신만의 삶의 템포를 찾고 그 안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며 ‘슬로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우리 부부는 핀란드에서의 생활 8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핀란드의 생활로부터 배우고 느낀 것들을 천천히, 조금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빠르게 살다 보면 놓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기 위해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색을 즐기고,베란다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로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삶의 템포를 찾으며 우리만의 슬로라이프의 2막을 시작했다.
나유리 교수 : 2007년 1월 핀란드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알토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2008년 금속공예가로서 ‘대한민국 차세대 디자인 리더’(지식경제부)로 선정되었다. 문화적·인간 중심적·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현대 공예를 재정의해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알토 대학에서 연구원 및 교육 강사로 일하다가 2014년 2월 한국으로 귀국해 현재 계명대학교 공예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 남편이자 철학가인 미셸 램블린과 함께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