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예 기자 #아내의 이야기 테이블 위로 그가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500만 원짜리 수표 2장. “이게 뭐냐”고 다그쳤지만, 그는 “받아두라”며 도망치듯 자리를 비웠다. 덩그러니 놓인 1000만원. 이게 지난 2년간 우리의 관계였던 것인가. 2년 전 그와 나는 우연히 산에서 만났다. 울퉁불퉁 커다란 바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손을 내민 것도, 헉헉대던 내게 시원한 물을 건네준 것도 모두 그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이렇게 빠져들지 않았겠지.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기까지, 엄마로만 살았던 내게. 그 남잔 여자란 본모습을 되찾게 해줬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던 어느 날. 그는 어느 날 이별을 통보했었다. 산자락을 내려가면, 둘 다 지켜야할 가정이 있었던 터였다. 2년이란 시간을 꾹꾹 참았다. 하지만 그를 잊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연락을 해 그를 다시 만났고, 그는 내게 돈을 건넸다.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그 사람에게 나는 그저 웃음을 파는 여자 같았던 건가.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날 밤을 고민하다, 수표를 들고 남자를 찾아갔다. 내게 모욕을 준 그 남자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남자의 직장에서 분탕질을 했다. 이성을 잃은 것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산을 사랑해야만 했던 이유 #남편의 이야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서라고 했다. 놀란 마음에 뛰쳐 가니, 아내가 펑펑 울고 있다. 경찰의 말은 놀라웠다. 아내가 바람을 폈고, 바람이 났던 남자네 직장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거였다. 고소까지 당한 아내. 합의를 보지 않으면 아내는 재판을 받을 거라고 했다. 배신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콩밥을 먹든, 고소를 당하든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결국 우리는 각서를 쓰고, 용서를 구했다.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 그리고 연락하지도 않겠다’고. 10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도 많았다. 욱하는 성격이었던 아내. 하지만 아이들은 살뜰히 키워내지 않았던가. 머리가 복잡해질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회사 일이 없는 주말. 혼자 산에 오르는 거였다. 산을 오르다 보면, 복닥거렸던 마음이 한결 고요해졌다. 아내의 불륜까지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내의 외도를 잊기 위해 올랐던 산. 그 산은 또 다른 세계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 사연들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 여자도 그랬다. 우연히 산정상에서 만난 그녀는 나와 비슷한 이유로 남편과 헤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산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혼자 사는 그녀를 위해, 컴퓨터를 들여주고 인터넷도 내 이름으로 개통해 깔아줬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법원 “남편의 이혼 청구, 받아들여야” 남편은 아내와 이혼을 위해 소송을 냈다. 아내는 “이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람 핀 남편이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버텼다. 현행법상 외도와 같은 잘못이 있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부산가정법원은 이 부부의 문제를 달리 봤다. 먼저 아내의 외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쓴 남편처럼, 아내 역시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 변화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에게 돈 10만원을 빌려주자 폭언을 했고, 친구 부인에게 전화해 “돈을 언제, 어떻게 갚을 거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던 전력이 있었다. 폭언의 습벽을 고치질 않았다. 격무에 시달리던 남편이 얼굴을 찡그리고 귀가한다며 욕설을 한 적도 있었다. 법원은 “아내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별거라는 위기 상황에서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계속할 생각도 없으면서, 오기나 보복의 감정으로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책배우자인 남편의 이혼 청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편의 위자료 청구에 대해선 “남편의 외도가 결혼생활의 파탄 원인이 됐고, 책임이 있는 남편은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김현예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
![]() 김현예 기자 휴직을 하고 1년을 한시적인 주부로 살아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지더군요. 아이가 아파도 내 탓 같고, 또래 아이보다 발육이 느려도 내 탓, 같은 어린이집 엄마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것도 내 탓, 집안이 지저분한 것도 내 탓.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이 그렇게 제 자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내 탓’을 누그러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만 35세 이상의 노산 여성 가운데 16.5%가 산후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여성들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이번에는 이 마음의 감기에 걸린 엄마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합니다. #아내의 이야기 “반찬이 이게 뭐냐”고? 간암 선고받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6년을 연애했다. 남편이 직장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혼담이 오갔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갓 넘길 즈음, 우리는 부부가 됐다. 결혼한 지 꼭 1년 만에 아기를 낳았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남편의 힘으로 우리는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갔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어머님이 편찮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였다. 병원에선 어머님의 병이 간암이라고 했다. 평생 술도 안 드시는 양반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거듭되는 항암치료를 어머님은 못 견디셨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어머니를 보다 못해, 우리 둘은 시댁으로 들어가 살기로 했다. 매일 출근을 하는 남편은 효자였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회사에 가고 없는 사이 효자노릇을 대신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은 “반찬이 이게 뭐냐?”고 성을 내셨다. 아직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고, 병원을 따라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님은 내가 하는 행동거지가 성에 안 차시는 모양이었다. 어떤 날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혼수 트집을 하셨다. 대체로 “누구네 며느리는 뭘 해왔다더라”식의 이야기였다. 아이를 업고 살림하는 나로선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부엌에 가도, 거실에 나와 TV를 봐도, 늘 잔소리가 따라다녔다. 숨 쉴 곳이 필요했다. 애가 감기라도 걸리면 ‘애미 탓’이고 밥을 잘 안 먹어도 ‘애미가 잘못 키워서’란 소리가 돌아왔다. 마음 한구석, 눈물보를 켜는 스위치라도 올라간 건지. 밤마다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절로 났다.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살게 하려고 나은 건 아니겠지. 내일이라도 별반 다르겠나. 내일도, 오늘처럼 밥 차리고 청소하고, 어머님 수발을 들겠지. 어머님 잔소리가 뒤를 따라다니던 어느 날. 참다못해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친정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오겠다”는 거짓말이 그렇게 술술 나올 줄은 나조차 몰랐다. 아이까지 맡겨놓은 터라, 몸이 홀가분했다.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 동네 PC방을 갔다. 이렇게 콧바람을 쐬는 일이 잦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담배에도 손이 갔다. 답답할 때마다 한 잔씩 하던 술도 늘었다. 내가 변해갈수록 남편과 자주 다퉜고, 당신 아들과 냉전하는 걸 지켜본 시부모님도 싸늘해졌다. 시부모님은 “너희들 없어도 병구완 할 수 있다. 나가 살라”고 했고, 결국 우린 분가를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분가라지만, 시댁 코 앞이었다. 시댁 대소사를 챙기는 것은 모두 내 몫이었다. 힘들 때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했고, PC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루 하루가 허망했다. 이러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병원. 의사는 내게 “중증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남편의 이야기 우울증 속이고 결혼한 아내 … 자살 소동에 이혼 소송까지 요즘 여자들은 ‘시’자만 들어가도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지 않나. 결혼하고 1년. 어머니의 암 발병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선뜻 내가 모시겠노라 나선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 눈엔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내는 못 견뎌 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어머니가 반찬 투정을 하실 수도 있는데, 아내는 그걸 흘려듣질 못했다. 남의 집 며느리와 비교하는 일도, 시쳇말로 “그러려니”하면 되는 것을. 아내는 참질 못하고 밤마다 분을 삭였다. 한밤중인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내. 처가에 간다던 아내는 PC방에 있었다. 손과 머리에서 묻어나는 담배냄새. “애엄마가 이래도 되냐”고 다그쳤지만 아내는 점점 달라졌다. 분가를 하면 달라지겠지 싶었지만 아내의 증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술을 더 자주 마셨고, 우리는 자주 다퉜다.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싶어 찾아간 병원에선 ‘우울증’이라고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아내가 결혼 전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아왔다는 거였다. 6년이나 연애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아내가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던 걸 몰랐다. “왜 말을 안했냐”는 말에 아내는 이혼을 꺼내들었다. 몇 날을 싸우고 아내는 각서를 썼다. ‘과거 우울증이 있음에도 병을 속이고 결혼했는데 앞으로 성실히 치료해 완치하겠다. 가출하거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협의이혼하며, 아이도 남편에게 양보하겠다.’ 각서의 효과는 딱 한 달이었다. 아내는 한 달이 되자 보란 듯이 다시 집을 나가 술을 마셨다. 이 일을 알게 된 부모님은 놀라 아이를 데려갔다. 이혼을 하게 되자 아내는 과격해졌다. 회사를 찾아와 “죽어버리겠다”고 하거나, 직장상사에게 전활 걸어 “남편이 때렸다”고 하소연을 했다. 심지어 가짜로 진단서를 끊어 고소를 하기도 했다. # 법원 “아내, 남편에게 위자료 2000만원 지급해야” 서울가정법원은 이 부부의 불화 원인이 아내에게 있다고 봤다. 법원은 “우울증을 인지하고도 성실히 치료받지 않고 방치한 점”을 근거로 들며 “2000만원의 위자료를 남편에게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특히 아이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부부를 위해 ‘면접교섭권’을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남편의 부모가 맡아 키우는 2살짜리 어린 아이의 안정을 위해 법원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아내가 만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재판부는 “아이 양육에 조부모가 열의를 가지고 있고 현재까지 아이를 잘 돌보고 있다”며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남편에게 줘야한다”고 판단했다.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만날 때마다 소란을 피우고, 아이 만나는 것을 시댁식구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면접교섭을 막아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아이를 위해 면접교섭권을 아내가 악용하지 않는 상태로 제한해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법원은 아내가 아이를 만날 때 ‘①남편과 시부모가 입회를 하고, ②아내가 폭언을 하거나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을 것, ③소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란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김현예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
![]() 김현예 기자 부자가 되는 방법은 뭘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안 쓰면 된다”고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났다. 안 쓰는 것보다 잘 쓰고, 잘 굴리는 게 현명한 시대 아닌가. 여기, 10년을 함께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가져다 줬다. 아내는, 그 월급을 쪼개 보험을 들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내의 심상찮은 재테크를 알게 된 남편은 펄쩍 뛰었고, 결국 둘은 파국을 맞았다. 남편의 이야기 “월급 200만 원에 한 달 보험료 90만 원?”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달에 통장에 찍히는 돈이 200만 원이다. 십년 죽도록 일해서 100만 원이 올랐다. 내 월급 이야기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무탈하게 성실히 살았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들 딸 낳아서 집 한 채 가져보는 꿈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어느 날 배가 아파 난생 처음 조기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우편함이 가득했다. 아내 앞으로 날아온 것들이라 처음엔 식탁 위에 던져뒀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발신인이 죄다 보험회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무배당 건강보험, 탄생 플러스, 화재해상보험, 여성시대보험, 저축보험, 연금보험.’ 수없이 많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한 달에 내는 돈만 9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더 이상한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절반 가량의 보험은 내 이름으로 가입돼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내의 이모 이름이 아닌가. 그날 저녁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보험하는 이모가 부탁해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이고, 돈도 이모가 낸다”고 했다. “통장 가져와 봐라!” 소리를 버럭 지르니 아내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장롱에서 통장을 꺼내왔다. 아내 말이 맞는 듯도 했다. 매달 30만 원이 이모 이름으로 우리 통장에 들어왔고, 보험회사는 그 30만 원을 다달이 빼갔다. 어느 통장에선 보험이 해지돼 들어온 1100만 원이 이튿날 이모님 통장으로 이체되기도 했다. 이튿날 회사 일을 빼고 은행에 찾아갔다. 통장 정리를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질 않았다. 저축통장에 모아져 있던 돈은 2600만원. 하지만 얼마전 그 돈이 모두 인출되고 없었다. 집에 달려가 아내를 몰아세웠다. 아내는 울며 “생활비가 빠듯해 마이너스 통장을 썼고, 빚이 2600만원쯤 되어서 저금을 해약하고 빚을 갚았다”고 했다. 도대체 계산이 맞질 않았다. 담배도 술도 멀리하며 회사와 집만 오갔다. 월급은 꼬박꼬박 아내에게 송금했는데, 10년간 개미처럼 일한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가 재산을 딴 데 빼돌리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었다. “어디다 숨겨놨냐. 말해보라”며 밤새 드잡이를 하고 난 다음 날,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짐을 싸 친정으로 가버렸다. 아내의 이야기 “시어머니 등살, 남편의 돈 몸살” 애 둘 키우는데 한두 푼이 드나. 남편이 가져다주는 게 월 1000만 원도 아니고, 고작 200만 원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못 모았다고 빼돌렸다는 모함이 가당키나 한가. 애들 키운 공은 생각도 않고 “처가에 돈을 빼돌린 게 분명하다”고 몰아세우는 남편이 미워 친정에 간 날, 밤새 펑펑 울었다. 옷 한 벌 못 사입고, 큰아이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살아보려 애쓴 내 공은 다 어디로 갔나. 친정 부모님은 “그래도 애들 봐서 살라”며 나를 다독였다. 집으로 돌아가려 나서는 길,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냉랭했다. “오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호통치는 남편.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정으로 돌아와 하소연을 하니 이번엔 친정 아버지가 나섰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기세등등했다. “돈을 빼돌렸으니 빼돌렸다고 한 건데 뭐가 잘못됐느냐”는 거였다. 아이를 봐서라도 살아야지 싶어 집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시댁에서 나섰다. 남편이 “아내에게 살림을 맡기니 돈이 안 모인다”며 어머니를 부른 거였다. 어머니는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아이 빨래는 손으로 해야 한다, 세탁기를 쓰면 전기료 많이 나온다. 셀 수 없는 잔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울어 거실에 나갔더니 어머니가 아이를 울려두고 있었다. “울어야 목청이 커진다”는 거였다. 당황해 아이를 안아 드니, 어머니가 내려놓으라 소리를 질렀다. 화가 치밀었다. “어머니, 제가 낳은 아이에요.” 어머니가 아이를 잡아채려 손을 뻗었다. 뺏겨선 안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밀쳤고, 허리를 삐끗한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일주일 간 져야했다. 이 일로 남편과 이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어머니는 결혼 패물을 몰래 숨겨버렸다. “돈까지 빼돌렸는데, 패물마저 줄 수는 없다”는 거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짐을 싸 친정으로 가던 날, 어머니는 “이 집안 물건은 하나도 못 가져간다”며 내 가방에 쌌던 옷가지를 죄다 꺼내던졌다. 기저귀 가방이 나뒹굴고 어머니와 승강이를 하면서 어머니 스웨터가 늘어졌다. 어머니는 그 일로 “2만 원짜리 옷이 망가졌다”며 재물손괴죄로 며느리인 나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혼 책임 50대 50 두 사람의 결혼은 아내가 짐을 싸 친정으로 돌아가 버리면서 파국을 맞았다. 법원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잘못은 50대 50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믿지 못해 어머니를 집안으로 불러들였고, 아내는 과도하게 많은 돈을 보험에 투자한 데다 시어머니를 밀쳐 1주간의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잘못을 했다. 앞서 본 사례에선 이혼의 ‘피해자’인 아내에게 얼마간의 위자료가 인정됐다면, 이번 부부는 양쪽 모두 위자료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혼의 책임이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히 있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과소비를 했고, 재산을 숨겼으며, 아침식사를 대접하지 않았고 가출을 했다”며 아내의 잘못을 지적했지만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혼 소송을 하는 1년 사이 아내는 두 아이를 남편에게 돌려보냈다. 경제력이 없는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었다. 남편은 친가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작은 아이를 돌보며 회사에 다녔다. 법원은 이런 점을 인정해 양육권과 친권을 남편에게 주도록 했다. 법원은 일을 시작한 아내가 자리를 잡기 전 2년간은 두 아이의 양육비로 매달 40만 원을, 두 아이 모두 학교에 입학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김현예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
![]() 김현예 기자 이번에 소개해드릴 부부는 아이 때문에 속을 적잖이 끓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아내. 그리고 ‘희소정자증’을 앓고 있는 남편. 아내는 호르몬제를 먹고, 고통스런 시술 과정을 겪어야 하는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지쳐갑니다. 결국 이 부부는 남남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가야, 이번에는 제발 다시 병원이다. 병원에서 주는 호르몬제를 꼬박꼬박 먹고 ‘과배란’이 됐는지를 확인하러 오는 길이다. 여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난소에 ‘난자’를 갖고 태어난다. 한 달에 한 번씩, 난자가 몸속에 난 길을 따라나오면 그때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기회가 원천봉쇄됐다. 남편 문제 때문이다. 나보다 10살이 많은 남편은 희소정자증이라 아기를 갖기가 어렵다. 그는 액세서리 공방을 같이하는 동업자였다. 9년 전 그와 손을 잡았을 땐, 그저 한번 결혼에 실패한 돌싱(돌아온 싱글)인줄로만 알았다. 액세서리 디자인을 하느라 함께 밤을 지새우다, 우린 점차 가까워졌고, 8년의 연애 끝에 결국 결혼을 하게 됐다. 남편이 나이가 있는지라,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다. “날을 받아 노력하면 임신이 잘 된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날 잘 받아준다’는 병원도 수소문해 찾아갔다. 하지만 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임신테스터기만도 수백 개쯤 되는 것 같다.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면서부터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호르몬제를 먹고나면 잠도 오질 않고, 배란이 될 즈음엔 극심한 통증으로 날을 지새야했다. 약을 먹고 억지로 배란이 많이 되도록 하니 배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소에서 난자를 꺼내는 시술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몸 밖에서 이뤄지는 수정. 그러고도 3~5일 뒤에 다시 병원에 찾아가 수정된 ‘아기씨’를 자궁에 다시 집어넣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온갖 주사를 맞고 돌아오면 종일 누워있어야 하니 산송장이 따로 없다. 그래도 성공이면 다행이지만, 아기는 늘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실패했단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남편도 함께 울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일 년 넘게 연달아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편은 무심해졌다.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오질 않았다. 공방에 일이 있단 이유를 댔다. 아기 갖기에 실패하면서 무기력해졌고, 남편과의 사이도 멀어졌다. 금 100돈을 갖고 사라진 아내 나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은 건 아내만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시술의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편칠 않았다. 한 달을 주기로, 기대와 실망을 번갈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공방 일을 미루고라도 아내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 외에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편. 나는 무능력한 남편이었다. 공방 일에 매달린 건 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것밖엔 없어보였다. 어느 날, 아내는 잔뜩 날 선 목소리로 “왜 병문안을 오지 않았느냐”며 화를 냈다. 맞다. 병원에 가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아내만큼 나도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아내는 모른다. 그렇게 말다툼을 한 다음날. 공방에 출근해보니, 장부가 사라졌다. 금고에 넣어둔 금 100돈도 사라졌다. 느낌이 이상해 집을 가보니 아내가 없다. 아내의 옷가지며 짐도 사라진 뒤였다. 법원 “재산 분할 아내 30%, 남편 70% 해야” 집을 나간 아내는 이혼 소송을 냈다. 남편도 되받아쳤다. 부산가정법원은 “부부관계의 파탄의 책임은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대등하게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아내가 금을 무단으로 갖고 가출을 한 것은 부부사이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남편에 대해선 “시험관 아기 시술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는 등 부부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밝혔다. 두 부부가 이뤄놓은 재산은 아내 30%, 남편이 70%씩 나눠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아내가 공장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가사를 전담하면서도 경리 업무를 보는 등 같이 업체를 운영한 점을 인정해 재산형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김현예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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