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인물초대석

"“혹독한 산고 치른 정책 뿌리째 부정돼 … 왜 후회 없겠나"

淸潭 2013. 11. 23. 13:05

 

"“혹독한 산고 치른 정책 뿌리째 부정돼 … 왜 후회 없겠나"

[중앙일보] 입력 2013.11.23 00:01 / 수정 2013.11.23 00:01

2년3개월 침묵 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다음달 13일 페루로 떠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15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수센터에서 KOICA가 제공한 점퍼와 배낭을 착용하고 자문단 발단식에 참석했다. 오 전 시장은 "계약기간 6개월 동안은 한국에 못 온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지난 15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염곡동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수센터 2층 회의실. 오세훈(53) 전 서울시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색깔이 화려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배낭 하나 들고서였다. 연수센터에서 지급한 상의에는 ‘KOICA’라는 영문글자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오 전 시장의 얼굴은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그는 “‘KOICA 월드프렌즈’라는 이름의 중장기자문단(9기, 21명)에 선발돼 지난 11일부터 1주일간 합숙교육을 받았다”며 “교육 수료 후 자문단발단식을 하고 막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12월 13일 페루로 떠나 수도인 리마에서 6개월간 머물며 도시 행정 전반에 대해 자문한다”고 설명했다.

 오 전 시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인터뷰에 응했다.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2011년 8월 중도 사퇴(재선 재임 기간 1년2개월) 이후 2년3개월 만에 처음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며 줄곧 고사해온 그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 KOICA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나와 함께 일했던 이덕수 전 부시장이 지난 6월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보내온 장문의 e메일이다. 여생을 연금 받아가며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지난해 12월 에콰도르로 떠나 정책 자문 봉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혈혈단신, 낯선 타향에서 아침밥을 15시간 걸려 지어먹은 얘기를 포함해 고생한 사연이 구구절절 들어 있었다. 하지만 보람차다는 내용이었다. 감동이었다. 그걸 보고 고민하다 7월 나도 해보기로 결심했다.”

 - 왜 페루를 선택했나.

 “전문 분야 1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고 그 나라의 수요와 맞아야 한다. 변호사 4년, 시장 5년이란 경력이 조건에 충족됐다. 지원자들이 연세가 많아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도 100명이 응시해 11명이 건강검진에서 탈락하고 21명이 선발됐다. 대개 개발도상국이나 열대지방에 가는데 파상풍·장티푸스·폐렴·독감 등 예방주사만 4개 맞는다. 아프리카 세 나라와 중남미 세 나라에 신청서를 보냈는데 아프리카에선 답이 없고 중남미의 에콰도르·페루에서 왔다. 리마 시청이 꼭 받고 싶다고 적극적이어서 결정했다. 3개월 동안 스페인어를 배웠다.”

 - 가족도 같이 가나(오 전 시장의 부인은 세종대 송현옥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연극 연출가다.)

 “단신으로 가는 게 원칙이다. 일단 6개월 기한이다. 3년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 KOICA에서 지원하는 경비는 왕복 항공료와 현지 생활비로 월 4000달러뿐이다.”

 - 리마에선 뭘 하게 되나.

“무엇을 가르치러 간다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리마는 사막도시라 식수난·주택난이 심하다. 공기의 질도 나쁘다. 대중교통도 아주 열악하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개혁과 대기질 향상 경험을 이식하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이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지한파라고 하더라.”

2011년 8월 26일 오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회견을 하는 모습.
 그는 2011년 8월 24일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가 투표함 개봉에 필요한 투표율 33.3%에 못 미친 25.7%로 끝나자 이틀 뒤 시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이후 박원순 후보가 보궐선거에서 시장으로 당선됐고 전면 무상급식 정책이 시행됐다. ‘무책임하다’ ‘시장직을 야당에 헌납했다’ 등 온갖 비난과 비판 속에 오 전 시장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상급식 문제를 둘러싸고 박 서울시장과 중앙정부의 갈등이 빚어지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위 계층 50%를 대상으로 한 오 전 시장의 선택적·단계적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고개를 들면서 그가 다시 주목받는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차기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군에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오 전 시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의 뜻을 등지고 중도 사퇴한 시장으로서 “자숙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기여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일부러 피한다는 인상을 준다.

 “아니다. 여기 있어봐야 (선거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여기 있음으로써 불편할 수도 있다. 선거야 후보자가 정해지면 후보자 중심으로 치러지는 것이다. 기간이 겹치는 건 단순한 우연이다.”

 - 그럼 지방선거 전에 들어올 수도 있나.

 “일단 파견 가면 계약기간인 6개월 동안은 그 나라를 못 벗어난다. 국내에도 못 들어온다. KOICA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하고 그런 옵션(조건)을 걸었다. 한 달에 한 번 건강 보고서, 중간 보고서와 마무리 보고서도 보내야 한다. 페루에서 6개월을 꼬박 채울 계획이다.”

 중토 사퇴 이후 오 전 시장은 많은 시간을 외국에 머물렀다. 지난해 5월 영국으로 건너가 10월까지 킹스칼리지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지냈다. 그 직후 중국 상하이로 옮겨 푸단(復旦)대에서 어학연수를 밟았다. 지난해 대선 직전 귀국한 뒤 올해 3월부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로 임용돼 석박사 통합과정인 ‘고급도시행정’ 세미나 강의를 해왔다.

 - 자숙 기간을 갖는 건가. 잦은 외국행을 도피성 외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선 시장이 4년 임기 중 1년2개월 하고 그만뒀다. 경위야 어떻든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재신임을 받고 시장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죄인이다. 도리가 아니었다. 세간에선 ‘오 전 시장이 안철수 의원- 박원순 시장을 정치권으로 불러냈다’는 얘기도 한다. 그걸 차치하고라도 시장으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못한 데 대해 고민 많이 했다.”

 - 당시 심적 고통이 심했다고 하던데.

 “생병이 날 정도였다. 대상포진, 신경성 위장병, 디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와서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힘든 과정을 거쳐 정리된 유권자들이 주신 잔여 임기(2014년 6월말)까지는 세상에 나서는 게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에 결심한 게 있다. 적어도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기로 했다.”

- 무상급식 문제에 대한 2년여 전의 소신에 변함이 없나.

“당시 주민투표를 통해 서울시장으로서 국민들께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민주당 측에서)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동일한 액수를 현금 지급성으로 집행하는 걸 복지정책이란 걸로 포장하고 ‘보편적 복지’라고 오도했다. 나는 그런 걸 보편적 복지라고 보지 않는다. ‘이게 시작이구나. 여기서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나라가 힘들어지고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과한, 능수능란하지 않은 대처를 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많이 도와야 한다. 똑같은 현금을 똑같이 도와주는 게 복지라고 보지 않는다.”

 - 그래도 약간의 후회는 있을 텐데.

“나도 사람인데. 왜 후회가 없겠나. 정책이라는 게 밤잠 못 자고 공무원들과 씨름하면서 만들어 낸다. 출생에 비유하자면 열 달 배불러 나온 아이처럼 혹독한 산고(産苦)를 치른다. 그 자부심은 엄청나다. 그 정책이 후임 시장에 의해서 뿌리째 부정되는 걸 보면서 왜 저라고 후회가 없었겠나.”

- 시장에 다시 도전해서 명예회복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오 전 시장은 묘한 미소만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박원순 시장은 현장을 중요시하는 서민적 스타일인 반면 오 전 시장은 자기 과시형 대형 프로젝트에 매달렸다는 비판이 있다.

“전체 시정 예산 중 복지 예산이 취임 초 20%에서 5년 뒤 30%까지 늘어났다. 그럼에도 나를 ‘복지시장’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복지시장으로 자부한다. 내가 ‘디자인시장’이 된 건 과거에 없던 디자인 개념을 시정에 도입하면서 붙여졌다. 세상의 평가가 언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달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오해다. 그런 걸 약점으로 부각시켜 치르는 게 선거다.”

- 한강르네상스·세빛둥둥섬 등 오 전 시장의 정책이 줄줄이 좌초됐다.

“박원순 시장이 걸어온 행보에 대해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나. 내가 한마디 하면 억울한 오해도 풀리고 금방 재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 전·현직 시장의 이전투구로 비친다.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박 시장에 대해서는 내년도 선거에서 일정 부분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인내심을 갖고 자제하겠다.”

 - 가장 가슴 아픈 정책은.

“나중에 사석에서….”

 - 외국에 머물면서 배운 게 있다면.

 “영국에서 보고 느낀 건 내각이 융통성이 있다는 거였다. 사회적 욕구가 분출하면 그걸 받아들여서 정책을 시행한다. 대학 학비도 낮추고 주거 보조비도 준다. 노인 복지에도 지출을 늘린다. 그러다가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면 확 줄인다. 아예 하루아침에 100% 없앤다. 끊임없이 항의시위를 해도,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해도 상관하지 않고 1년이고 2년이고 쭉 밀어붙인다.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갈지(之)자걸음’을 한다. ‘선거에서 표를 받아서 정책을 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거구나’ 하고 많이 느꼈다. 그걸 보면서 (2년 전) 내가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고 너무 원리주의적인 대처를 했던 건 아닌가. 덜 익었다고 할까. 정치적으로 수가 낮았다고 할까. 그런 미숙함 때문에 유권자분들께 도리가 아닌 죄를 지은 게 아닌가 반성했다.”

 -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과 대선 후보로 지지도가 결코 낮지 않다. 페루에서 돌아오면 정치활동을 재개하나.

“지난 2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도 잊지 않고 애정을 표시해주는 분들께는 감사드린다. 다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심정이 아주 괴롭다. 페루 활동이 끝나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로 다시 떠나 국제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며 사는 삶도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고대훈·조강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