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故事成語

鵬程萬里(붕정만리)

淸潭 2013. 6. 7. 15:58

鵬程萬里(붕정만리)

이 말은 장자(莊子) '逍遙遊篇' 첫머리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것이다.

莊子(장자)는 허무맹랑한 말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도 허풍이 세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차원이 다르다」고 일축해 버린다.

마치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나 매미에게 가을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그가 쓴 『莊子』라는 책에 보면 소요유편(逍遙游篇)이 있다. 더 넓은 우주를 아무 거리낌 없이 훨훨 날아 다닌다는 뜻이다. 거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큰 것은 그 길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화(化)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새의 등은 그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지 못한다. 성내어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의 기운으로 장차 남쪽 바다로 옮기는데, 남쪽 바다는 하늘의 연못이다.

제해(齊諧)라는 사람이 있어 다음과 같은 괴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김에, 물을 치기를 3천리나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선풍(旋風)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를 9만 리나 하며,
6개월이나 걸려서 남쪽 바다에 가서 쉰다.>

아지랑이와 티끌과 먼지를 생물들이 뿜어내건만, 하늘은 푸르고 푸르르니, 그 올바른 색깔인가? 그 멀어서 끝간 데가 없는 까닭인가?

그 내려다봄에 또한 이와같을 뿐이다. 또한 대저 물의 쌓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움에 힘이 없고, 술잔의 물을 뜰의 파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배가 되어 뜨지만, 잔을 놓으면 엎어진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텁지 못하면, 그 큰 날개를 띄움에 힘이 없다. 그러므로 9만 리면 바람이 그 아래에 있다.

그리하여 뒤에 곧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지고서,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다. 이리하여 지금 비로소 붕새는 남쪽으로 날아가려는 것이다.』

황당무계하기 그지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속세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곧 광대하기 그지 없는 붕새를 빌려 자신의 정신 세계를 아무 구속 없이 마음껏 자유롭게 소요(逍遙·노닐음)하고 싶었던 것이다. 붕새는 곧 자신인 셈이다.

<붕정만리(鵬程萬里)>는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여기에서 鵬은 곧「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라는 뜻이 되어 鵬翼(거대한 날개),鵬飛(거대한 날개짓),鵬圖(원대한 계획),鵬際(붕새가 나는 우주)등과 같은 말이 나왔다. 붕정(鵬程)이라면 붕새가 남쪽의 어두운 바다로 날아가는 길,歷程을 일컫는다. 수만리,아니 수십만리가 넘는다. 따라서 鵬程萬里는
사나이 大丈夫의 遠大한 抱負나 꿈
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소요유(逍遙遊)'란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은 권력, 신분, 도덕, 권위, 삶과 죽음 등 여러 가지 구별이 있고, 그 구별이 사람들을 구속한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뛰고 있다.


장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비웃으며, 이러한 것을 초월한 완전한 자유, 즉 대자연의 커다란 품안에서야 비로소 참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소요유의 즐거움을 무한한 허공을 힘차게 날아 올라가 미지의 북해로 날아가는 대붕에 비유한 것이다.

장자의 사상의독특한 점을 몇가지 추리자면


첫째, 유가가 인의예지 등의 적극적 교의를 부르짖고 이상적 윤리 공동체의 건설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것은 긍정의 논리에 의해 '유(有)' 즉 목적을 추구하는데 대해, 장자는 정허, 무욕, 무아, 무위 등의 부정적 사변을 철저히 함으로써 절대적인 '무(無)'의 세계를 열고, 거기에야말로 도와 일체가 된 유일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유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길을 탐구하여 결국 타인과의 윤리적 협동 생활을 주요한 문제로 삼는데 대해, 장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있까, 어찌하여 존재하는 것일까 등을 캐물어 현실 생활을 초월한 개인의 근원적 성역을 규명하려 한 것이다.

셋째, 현실 생활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다.


넷째 우언(寓言)으로 어려운 사상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붕정만리도 이 우언 중의 하나다. 북해에 곤이라는 고기가 있다. 그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몰랐다. 이 고기가 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된다. 붕새의 등은 몇 천리가 되어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 같았다. 붕이 남해바다로 갈 때는 날개짓을 3천리, 높이 오르기 9만리, 그래서 여섯달을 날고서야 비로소 날개를 쉰다.

한번에 9만리를 나는 대붕을 보고 작은 새 척안은 이를 비웃으며, "대관절 저 놈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기껏 대엿자 숲 위를 날 뿐인데 말이야. 그래도 충분히 나는 재미가 있는데"라고 조잘거렸다.

하지만 왜소한 것이 어찌 위대한 것의 마음을 알겠는가. 이것은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라고 장자는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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