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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派 문화권력의 '대못'을 뽑지 못한다면

淸潭 2013. 4. 9. 11:08

左派 문화권력의 '대못'을 뽑지 못한다면

  • 류근일 언론인

     

  • 입력 : 2013.04.08 23:04 | 수정 : 2013.04.08 23:34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문화권력 핵심 거점 접수한 좌파
    MB정권 5년 지나도 기득권 여전… '시대교체' 다짐 허공에 뜰 수도
    '문화 융성' 지원 제대로 하려면 편향된 권력부터 공정 재분배해야

    류근일 언론인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는데도 그 후 5년의 사회적인 트렌드(trend)는 그전 10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청와대 주인만 바뀌었을 뿐 세상의 기조(基調)를 만드는 문화 권력은 그전 10년 그대로였다.

    청와대 주인은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과연 15년 묵은 문화 기득권의 대못을 뽑는 시작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왜 이걸 궁금해하는가? 박근혜 정부도 그것을 뽑지 않거나 못 할 경우 "정권 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로 가겠다"던 박 대통령의 다짐은 자칫 허공의 메아리로 뜰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진영은 "권력은 문화의 총구(銃口)에서 나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세력이었다. 2010년 조선일보 Why와 한 인터뷰에서 원로 영화인 김지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들이 왜 갑자기 혁명군처럼 그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구세대는 다 물러가라니. 영화 역사를 지켜온 게 누군데, 부모가 잘못하면 업어다 고려장시키나?"

    이렇게 해서 김대중-노무현 10년은 문화 권력의 핵심 거점을 착착 접수해 나갔다. '문화 쿠데타' '문화 사변(事變)'이란 말이 들렸을 정도로. 이에 비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순맹물' 그 자체였다. 촛불 광풍에 기겁한 MB는 "나는 영업부장 노릇만 할 터이니 연예부장 노릇은 그대들이 길이 하라"는 듯 그의 5년을 그전 10년에 자진 반납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문광부 산하기관들의 문화 예술 지원 예산이 지난 5년 동안 주로 어느 블랙홀에 어떻게 얼마나 흡입(吸入)됐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정권이 주눅 들고 관료가 몸 사리고 노조가 딱 버티고 있는데, 그 먹이사슬과 돈의 흐름이 가면 어디로 갔겠는가? 그들만의 배타적 문어발이 덮쳐 있는 양상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 뿌리 깊은 대못들 앞에서 어떻게 얼마나 작아졌던가는 익히 소문난 그대로다. 청와대는 예컨대 그 무렵 "우리 VIP께서 탈북 스토리 '크로싱'을 관람하는 게 괜찮을지?"를 알아본 적이 있다. "대통령이 밀어주면 좋겠다"고 해뒀지만, MB는 그걸 끝내 외면했다. 그 대신 그는 소(牛) 스토리 '워낭소리'를 관람했다. '워낭소리' 화면엔 '이명박이 한우는 박대하고 미국 소만 우대했다'는 뜻인지, 난데없이 촛불 행렬이 스쳐간다. MB의 이런 선택은 세(勢)에 대한 러브레터이자 굴신(屈伸)의 몸짓이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시범'해서였던지 정병국 문광부장관은 영화진흥위원장에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사람을 임명했다. 그들은 MB 정권에서도 여전한 권력이었다. 그의 산하 어떤 고위직은 근무 평가에서 A를 받자 직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도 한다. "내가 A를 받은 것은 여러분에게 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벌을 받겠다며 자청해서 '원산폭격'을 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생존법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선 '민중극단'이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의 산업화 성공 스토리 '한강의 기적'을 한팩(한국공연예술센터) 무대에 올리려 했다. 그런데 한 연출가가 자기 페이스북에 '사회 보편적 합의를 부정하고 있는 공연을 한팩 극장에 올리는 것은 공신력을 저해한다'고 썼다. 그러자 문화 당국은 대관(貸館)을 즉시 취소했다. 알아서 긴 것이다. 오늘의 문화 권력의 편중과 편향은 결국 이명박 정부가 그런 식으로 '그들의 10년'을 5년 더 연장해준 덕택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어떨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 융성'과 '문화 예산 2%'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문화 권력 지형(地形)이 그대로 있는 한 그 지원책은 이미 살찐 기득권을 더 살찌울 뿐이다. 게다가 류진룡 문광부장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이 이런 판세를 소신껏 뜯어고칠 인물인지는 불투명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썼다. '정권이 바뀐다지만 문화 예술계의 알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새 출발의 발목을 잡으려 들 것이다.' 이런 말이 또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 권력의 공정한 재분배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이다.